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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Oct 12. 2023

지금 가는 길이 지름길이죠

걷든 탈것을 이용하든 먼저, 일찍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가 무척 보고 싶어서일 수도 배가 고파서일 수도 다음 업무가 밀려 있을 수도 있지요.     


시계 탓은 아닙니다. 처음엔 시침만, 그 뒤에 분침, 초침이 더해졌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건 자연 진화가 아니니까요. 사람이 시침 위에 분침, 분침 위에 초침을 차례로 얹은 것이지요. 사람의 시간관이 문제겠네요.     


시침만 있던 때에는 1시간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분침이 더해진 때부터는 1분 단위로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초침이 더해진 이후에는 1초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인내심도 시곗바늘이 더해짐에 따라 점점 줄어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안 게임 기간 중 많은 경기에서 기록에 집착했습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으로 승패가 갈라졌습니다. 패배의 아픔이 그 짧은 시간에서 비롯하기도 했습니다만, 승리의 기쁨을 두고도 기록 경신을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날, 그 시간. 그들이 누구보다 빨리 가기 위해서 선택했던 길은 그 누구보다 느리고 지루한 길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수도 없이 생겼으리라 짐작되지만, 그 반복되고 지루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그들은 계속해서 걸어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빠를 수 있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합니다. 그마저도 그가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때에만 더욱 주목하곤 합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데뷔 20년 차 ○○입니다.”라는 소개가 소름 돋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짝 스타’라고 생각한 유명인이 사실은 멈추지 않고 묵묵히 걸어오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끼는 존경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느껴보셨을 것 같습니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사람들은 지름길을 찾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더 빨리 적응해서 누구보다 먼저 안착(安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럴 때마다 안 착한 사람이 늘어나는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시대가 점점 빨리 변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그런 변화를 견뎌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저 같은 미남(未男)에게는 그저, 내가 가는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뿐입니다.     


변화를 인정하는 태도는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한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인 다양성을 먼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옛것, 오래된 것, 불편한 것, 요즘 시대에 큰 이익을 볼 수 없는 것들을 없애는 것이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변화된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일은 아닐 겁니다.     


2등이나 하고도 웃을 수 없는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순위를 떠나 웃으며 즐겼다고 말하는 선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우리 시대의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기왕이면 예전의 그 누구보다도 일찍 도착했기를 바라는 그 바람이야말로 가장 먼저 없애야 할 옛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 웃음이 언젠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리라는 희망을 내포하는 다짐일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미혹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름길은 없다고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그 어떤 길보다 지름길입니다. 모두의 길이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믿으라고 강요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오늘도 자신만의 걸음으로 여러분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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