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든 탈것을 이용하든 먼저, 일찍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가 무척 보고 싶어서일 수도 배가 고파서일 수도 다음 업무가 밀려 있을 수도 있지요.
시계 탓은 아닙니다. 처음엔 시침만, 그 뒤에 분침, 초침이 더해졌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건 자연 진화가 아니니까요. 사람이 시침 위에 분침, 분침 위에 초침을 차례로 얹은 것이지요. 사람의 시간관이 문제겠네요.
시침만 있던 때에는 1시간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분침이 더해진 때부터는 1분 단위로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초침이 더해진 이후에는 1초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인내심도 시곗바늘이 더해짐에 따라 점점 줄어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안 게임 기간 중 많은 경기에서 기록에 집착했습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으로 승패가 갈라졌습니다. 패배의 아픔이 그 짧은 시간에서 비롯하기도 했습니다만, 승리의 기쁨을 두고도 기록 경신을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날, 그 시간. 그들이 누구보다 빨리 가기 위해서 선택했던 길은 그 누구보다 느리고 지루한 길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수도 없이 생겼으리라 짐작되지만, 그 반복되고 지루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그들은 계속해서 걸어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빠를 수 있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합니다. 그마저도 그가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때에만 더욱 주목하곤 합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데뷔 20년 차 ○○입니다.”라는 소개가 소름 돋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짝 스타’라고 생각한 유명인이 사실은 멈추지 않고 묵묵히 걸어오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끼는 존경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느껴보셨을 것 같습니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사람들은 지름길을 찾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더 빨리 적응해서 누구보다 먼저 안착(安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럴 때마다 안 착한 사람이 늘어나는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시대가 점점 빨리 변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그런 변화를 견뎌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저 같은 미남(未男)에게는 그저, 내가 가는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뿐입니다.
변화를 인정하는 태도는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한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인 다양성을 먼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옛것, 오래된 것, 불편한 것, 요즘 시대에 큰 이익을 볼 수 없는 것들을 없애는 것이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변화된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일은 아닐 겁니다.
2등이나 하고도 웃을 수 없는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순위를 떠나 웃으며 즐겼다고 말하는 선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우리 시대의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기왕이면 예전의 그 누구보다도 일찍 도착했기를 바라는 그 바람이야말로 가장 먼저 없애야 할 옛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 웃음이 언젠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리라는 희망을 내포하는 다짐일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미혹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름길은 없다고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그 어떤 길보다 지름길입니다. 모두의 길이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믿으라고 강요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오늘도 자신만의 걸음으로 여러분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