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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이두씨 Jun 06. 2022

#6. 한 걸음씩, 천천히

2021년 7월 2일~7월 말

7월이었지만 새벽은 그래도 선선했다.


동생의 이른 출근 소리에 거실에서 선잠에 들었던 내가 슬며시 눈을 떴다. 눈은 떴지만 일어나기가 귀찮아서, 가만히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도 그 시간쯤에 잠에서 깨신 것 같았다.


아침이 되어도 어머니의 전화는 여전히 조용했다. 오늘 연락이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이라는 곳이 이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추측컨대 아버지께서는 장시간 수술 후에 중환자실에 계시니까, 아마도 일반병동으 옮기려면 며칠은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5분 대기조'처럼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오전 9시경, 어머니는 마음을 가다듬고 머리라도 감아야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머리 좀 감고 나올게."

"예. 그러셔요."


어머니가 화장실에 들어가셔서 머리에 물을 히자마자, 어딘가에서 '징~'하는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진동은 울리는데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 잠시 헤매었다. 구석 어딘가에서 어머니 핸드폰을 찾았다. '010'으로 시작하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전화 왔나 보다! 내가 받을게요."


화장실에 계시는 어머니를 대신해 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000 씨 보호자 되시죠?

"예! 아들입니다!"

"아. 여기 B병원 중환자실인데요. 000 씨, 오늘 오후 2시에 일반병동으로 옮기실 거예요. 상주 보호자 오실 거죠? 보호자께서는 1시 30분까지 중환자실 앞으로 오세요."


따다다다, 간호사의 통보와 같은 멘트가 이어졌다.


"예? 오늘 2시요? 아버지는 일어나셨어요?"


화장실에 게시는 어머니에게 까지 들릴 정도로 일부러 크게 말했다. 어머니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비스듬히 들고 화장실 안에서 나를 보시면서 서 계셨다.


"예. 1시 30분까지 오세요. PCR 검사하시고요."


아차! PCR! 상주 보호자 역할로 어머니께서 병동에 들어가실 예정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입원하셨던 6월 하순에 PCR 검사를 받으셨고 어제 집에 오셨기 때문에, PCR의 유효기간이 지나 있었다. 마치 무제한 이용권 팔찌를 풀어버리면 다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PCR이요? 어제저녁에 집에 왔는데, 그걸 저희가 언제 다시 받아요? 그리고 오늘 PCR 검사하면, 결과는 다음날 나오잖아요?"


나는 마치 랩이라도 하는 양 대꾸했다.


"아... 그래도 일단 받으셔야 되는데..."


간호사도 생각지 못 한 듯 잠시 망설이더니, 한 가지 중재책을 내놓았다.


"그러면, 저희 병원 1층에서 일단 받으시고, 검사를 받았다는 증명서를 하나 가져오세요. 그러면 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일단 알겠습니다."


거참 병원 들어가기 어렵네... 나는 두루뭉술하게 전화를 끊고는 어머니께 상황을 설명했다.


"PCR을 받아야 된다는데?"

"아 그래? 보건소를 가야 하나?"

"그냥 병원 1층에서 받고, 받았다는 증명서를 하나 달라고 하래요."


갑자기 정신이 분주해졌다. 무언가 기어를 새롭게 갈아 끼운 느낌이 들었다.

 

나와 어머니는 아침 겸 점심을 집에 있던 밥과 반찬으로 대충 때우고 병원 갈 '군장'을 다시 챙겼다. 또 이불, , 슬리퍼, 옷, 간식 등을 천으로 만들어진 에코백에 때려 넣었다.


1시쯤이 되어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고, 에누리 없이 1시 30분에 병원 정문에 도착했다.


병원 앞 코로나 검사장소에 가보니, 줄이 썩 길었다. 족히 몇십 분은 걸릴 것 같았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어머니는 코로나 검사를 위해 검사 줄에 서셨고, 아직 PCR 검사 유효기간이 남은 나는 1층을 통과해 5층 중환자실로 먼저 올라갔다.


나는 5층에 도착하자마자, 중환자실 초인종을 누르고 이야기했다.


"000 씨 보호자인데요. 도착했습니다."

"예. 잠시 뒤에 나가실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2시가 점점 다가왔다. 어머니는 생각보다 길어진 코로나 검사로 인해 2시가 다 되어서야 중환자실 앞에 합류하셨다. 무언가 긴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중환자실 앞에서 10여분이 더 흐르자, 이윽고 중환자실 문이 열렸다. 병실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침대에 아버지가 누워 나타나셨다. 나와 어머니는 침대 양옆에 붙어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며 서로 질문을 쏘아댔다.


"아빠! 괜찮으셔? 나 알아보시겠어?"

"여보. 괜찮아요? 고생했어요..."


아버지의 몸에는 어림잡아 6~7개의 선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링거를 꽂은 왼손과 얼굴이 다소 부어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우리를 알아보시고는 목소리 대신 오른손을 들어 좌우로 '안녕'하듯이 흔드셨다. 예상과는 달리 그래도 밝은 모습이셨다. 그나마 씩씩하게 힘을 내신 것 일게다.


---(중략)...


아버지의 몸은 더디지만 천천히 회복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이 병세가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나름의 희망을 품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이 흐른 뒤에, 지금에서야 이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립니다.

https://bookk.co.kr/bookStore/66332918fc0d5301c78a2e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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