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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는 핑계

준비보다 어려운 건 용기였다

by 피터팬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그만둘 용기가 없었던 거다.”


퇴사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좀... 준비가 안 됐어.”


이 말은

회사에서 버티는 나를 설명할 때 가장 편리한 문장이었다.

무계획으로 그만두는 무모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에도 괜찮은 말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건 ‘준비 부족’이 아니라

‘겁’이었다.


두려웠다.

나오고 나서 뭐 하지?

다음 회사는 더 나을까?

혹시 이 결정이 내 커리어를 망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더 솔직히는

한 달 뒤 월세 걱정이 현실이니까

그만두고 싶다는 감정보다

‘돈’이 먼저 떠올랐다.


“준비가 안 됐어”는

그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단 네 글자로 눌러 담은 말이었다.


그 말 뒤에 숨어서,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만 집중했다.

지금도 다닐 회사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당장 관둘 수도 없고.

애매한 하루들이 쌓이고 쌓였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혼자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아무도 내 의견을 궁금해하지 않고,

내가 뭘 해도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고,

하루하루가 복사 붙여넣기처럼 지나가는데

난 왜 아직도 이 자리에 있는 걸까?


대답은 너무 뻔했다.

“준비가 안 됐으니까.”


근데 정말 그런가?

정말로, 준비만 되면

나는 다음 날 바로 사직서를 낼 수 있었을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둘 용기, 그게 없었다.


그게 다였다.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단지 불안해서, 두려워서, 나를 못 믿어서

‘준비 중인 사람’인 척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알면서도 속고 있었다.

이건 준비가 아니라

계속 머무르기 위한 자기기만이었다는 걸.


진짜 필요한 건

뭔가 대단한 계획이 아니라

"나, 이제 여기 못 다니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한 마디를 꺼낼 용기였다.


그리고 그 용기는

어느 날, 너무 늦기 전에

나를 위해 한 번은 꺼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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