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보다 어려운 건 용기였다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그만둘 용기가 없었던 거다.”
퇴사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좀... 준비가 안 됐어.”
이 말은
회사에서 버티는 나를 설명할 때 가장 편리한 문장이었다.
무계획으로 그만두는 무모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에도 괜찮은 말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건 ‘준비 부족’이 아니라
‘겁’이었다.
두려웠다.
나오고 나서 뭐 하지?
다음 회사는 더 나을까?
혹시 이 결정이 내 커리어를 망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더 솔직히는
한 달 뒤 월세 걱정이 현실이니까
그만두고 싶다는 감정보다
‘돈’이 먼저 떠올랐다.
“준비가 안 됐어”는
그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단 네 글자로 눌러 담은 말이었다.
그 말 뒤에 숨어서,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만 집중했다.
지금도 다닐 회사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당장 관둘 수도 없고.
애매한 하루들이 쌓이고 쌓였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혼자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아무도 내 의견을 궁금해하지 않고,
내가 뭘 해도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고,
하루하루가 복사 붙여넣기처럼 지나가는데
난 왜 아직도 이 자리에 있는 걸까?
대답은 너무 뻔했다.
“준비가 안 됐으니까.”
근데 정말 그런가?
정말로, 준비만 되면
나는 다음 날 바로 사직서를 낼 수 있었을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둘 용기, 그게 없었다.
그게 다였다.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단지 불안해서, 두려워서, 나를 못 믿어서
‘준비 중인 사람’인 척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알면서도 속고 있었다.
이건 준비가 아니라
계속 머무르기 위한 자기기만이었다는 걸.
진짜 필요한 건
뭔가 대단한 계획이 아니라
"나, 이제 여기 못 다니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한 마디를 꺼낼 용기였다.
그리고 그 용기는
어느 날, 너무 늦기 전에
나를 위해 한 번은 꺼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