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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붙잡는 실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붙잡지 않을 뿐이야

by 피터팬


사람들은 모두

작은 실 하나를 손목에 감고 태어나요.


처음엔 다들 그걸 참 아껴요.

목욕할 때도 풀지 않고,

잘 때도 꼭 쥐고 자고,

기분이 안 좋을 땐

가만히 실을 만지며 마음을 달래요.


왜냐하면 그 실 끝에는

‘소중한 기억 하나’가 매달려 있거든요.


누군가 처음 불러준 내 이름,

처음 손을 잡아 준 그날,

정말 많이 웃었던 어느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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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은 아주 멀리 있지만

실이 이어져 있어서

눈을 감으면 마음속에

살랑살랑 닿는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커지고 바빠질수록

그 실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려요.


“이게 뭐야, 좀 풀자.”

“이젠 없어도 되겠지.”

“기억은, 그냥 흐릿해지는 거야.”


툭!

하나,

툭!

또 하나...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실을 하나씩 끊어버려요.


그 실들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흘러가다가

작은 숲속 언덕 위에

모이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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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아직도 실을 손에 쥐고

혼자 걷는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의 이름은 루였어요.


루는 손목에

작고 낡은 실 하나를

꼬옥 감고 있었어요.


누군가 말했어요.

“그거... 아직도 가지고 다니는 거야?”


루는 말했어요.

“응. 이 실 끝엔

내가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


어느 흐린 날,

루는 그 실을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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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을 지나고,

작은 강을 건너고,

바람 많은 언덕을 넘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실 끝에 도착했을 때,

조용한 숨소리 하나가 들려왔어요.


“루야, 왔구나.”

“난 여기 있었어.

네가 날 잊지 않아서... 너무 고마워.”



그곳엔

어릴 적 루를 꼭 안아주던

그 품이 있었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곳.


루는 말했어요.

“나는... 네가 잊힐까 봐,

실을 놓을 수 없었어.”


그러자 그 품은

살짝 웃으며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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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란다.

사람들이 그냥,

붙잡지 않을 뿐이지.”


루는 실을 살며시 감고

다시 돌아왔어요.


예전보다 실이 더 부드럽고

손에 꼭 맞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날 이후,

루는 자주 손목의 실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이 실 끝엔,

내가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살고 있어.”



혹시 당신도,
작은 실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나요?
잊지 마세요.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잠시 손을 놓았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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