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은 낭비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였다
퇴사를 하면
바로 이직 준비에 뛰어들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떠나보니
그 사이에 ‘숨 고르기’가 꼭 필요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몸과 마음은
어느 순간 멈춰 서야만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 며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눈만 뜨면 불안감이 올라왔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자꾸만 눕고 싶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 시간마저도 내 몸에는 꼭 필요했다는 걸.
쉬어야 다시 시작할 힘이 생겼다.
책상 서랍에 쌓아둔 메모,
빼곡히 적힌 노트,
미뤄뒀던 행정 처리.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아, 이제 진짜 끝났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비워낸 만큼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퇴사하면 한 달 살기,
유럽 여행을 다녀와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가까운 바닷가 마을에서 이틀 묵는 걸로도 충분했다.
낯선 풍경 속에 앉아 있으면
내 일상이 새롭게 보였다.
중요한 건 ‘거리’가 아니라 ‘호흡’이었다.
직장을 그만두면
하루가 길게 늘어진다.
나도 처음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간단한 루틴을 만들었다.
아침엔 산책,
낮엔 책 읽기나 글쓰기,
저녁엔 운동.
별것 아니었는데도
삶이 금방 안정됐다.
이때 아니면 못 해볼 것들을 가볍게 해봤다.
요리 클래스, 짧은 여행, 동네 스터디.
오래 이어가진 못했지만,
“그때 그거 해봤지”라는 기억이 남았다.
그 기억 하나가 내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쉬는 동안에도 돈은 계속 나간다.
그래서 미리 한 달 예산을 세웠다.
월세, 생활비, 여유자금.
숫자로 정리하고 나니
막연한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쓸 수 있는 선을 정해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짧게라도 일기를 썼다.
오늘 뭘 했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기록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괜히 보낸 시간이 아니었구나.”
퇴사와 이직 사이의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숨을 고르느냐에 따라
다시 시작하는 힘이 달라진다.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괜찮다.
잠깐 멈추고,
정리하고,
나를 다시 세워보는 그 시간.
그게 앞으로의 걸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