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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마지막 날, 나답게 마무리하기

나는 오늘, 나답게 떠났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by 피터팬


퇴사의 순간은 사직서를 낼 때가 아니라

마지막 출근일에 비로소 실감난다.


출근길 버스 창밖 풍경도,

매일 오르내리던 회사 건물도

오늘은 조금 달라 보였다.


엘리베이터 층수가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이 길을 다시는 매일 오를 일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자

익숙한 바탕화면이 떴다.


업무 파일이 가득한 폴더를 마지막으로 열어보고,

필요한 자료는 정리해

인수인계 문서에 첨부했다.


메신저 창에는

“오늘 마지막이시죠?”라는 동료들의 메시지가

하나둘 쌓였다.


짧게 답장을 보내면서도

손끝이 조금 느려졌다.


정말 끝이라는 실감이 나서였다.


책상 서랍을 열자

별것 아닌 것들이 쏟아졌다.


회의 중 급히 적어둔 포스트잇,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샀던 영수증,

지난번 프로젝트 때 썼던 메모지.


작은 것 하나에도

그때그때의 시간이 배어 있었다.


서랍을 비우며, 나는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게 아니라

내가 보낸 시간을 정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엔 인수인계를 위해

후임자와 자리를 같이 했다.


“여긴 이렇게 하는 게 편해요.”

“이건 파일 경로가 좀 복잡해서 메모를 남겨뒀어요.”


별것 아닌 말 같지만

내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하니

꼼꼼히 설명하게 됐다.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결국 내가 떠난 뒤 남는

내 이름표일 테니까.


업무를 마무리하던 중,

팀원들이 내 자리 위에 작은 케이크를 올려놓았다.


초 대신 반짝이는 토퍼 하나가 꽂혀 있었다.

“새 출발 응원해요.”


요즘은 초보다 토퍼 한 줄이

더 많은 의미를 전한다.


사진을 찍어 남겨두면

그 문구가 그날의 공기를 오래 기억하게 해준다.


누군가는 “아쉽다”는 말을 했고,

누군가는 그냥 웃으며 박수를 쳐줬다.


눈물도, 과장된 이벤트도 없었지만

작은 케이크와 토퍼 하나로 충분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진심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인사는 길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 한마디면 됐다.


누군가는 내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정말 아쉬워했을 수도 있다.


그건 이제 내 영역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뿐이었다.


퇴사의 마지막 날은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내 마지막 장면이다.


그래서 나는 내 하루를 무겁지 않게,

그러나 단정하게 닫고 싶었다.


책상 위가 텅 비어가는 걸 바라보며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정리되는 걸 느꼈다.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새로운 길을 향한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더 이상 이곳의 사람이 아니지만,

떠나는 순간까지 나다웠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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