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함께 사는 일이 시작됐다.
누군가의 ‘퇴사’와
누군가의 ‘기다림’에서 시작된다.
아내는 회사를 떠났고,
나는 제주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직장을 내려놓았고,
누군가는 익숙한 고요 속에서 자리를 지켰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버텨온 두 사람이
이제 다시 한 집의 시간을 맞추려 한다.
이건 대단한 성공담도,
감동적인 재회도 아니다.
다만 서로의 속도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함께 사는 법을 다시 배우는 기록이다.
아내가 서울에서 퇴사하던 날,
나는 제주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고 있었다
영상통화 화면 속 아내는
평소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마치 오래 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은 아이처럼.
3년 동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보며 살았다.
그사이, 서로의 일상은 사진과 메신저로만 이어졌다.
나는 제주에서,
아내는 서울에서,
각자의 시간을 견디듯 보냈다.
그러다 문득,
아내의 퇴사는 나에게도 ‘퇴사’였다.
외로움에서의 퇴사,
혼자 먹던 저녁 식사에서의 퇴사,
의미 없는 TV 소음에서의 퇴사.
요즘 집에는 느긋하게 끓는 국물 냄새가 자주 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서로의 출근 대신 커피를 내리고,
점심엔 바닷가를 걷고,
저녁엔 시장을 돈다.
시간표가 바뀌었다는 건
단순히 생활 패턴의 변화가 아니라,
‘함께’라는 단어가
다시 우리 일상 속으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나는 여전히 고양이와 낮잠을 자고,
빨래를 돌려놓고 건조기를 깜빡하기도 하고,
커피잔을 식탁 위에 올려둔 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웃는다.
그 웃음 하나로 하루가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우리의 생활은
서로의 단점마저 배경으로 두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그 배경 위에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은 단단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