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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퇴사하던 날

함께 산다는 건, 결국 서로의 속도를 다시 맞추는 일이다.

by 피터팬


아내가 전화로 사직서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잠깐 멈춘 듯 했다.


그동안 수없이 상상했던 순간이었다.
‘퇴사했다’는 한마디가 이렇게 묵직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한쪽에서는 “이제 좀 쉬어야지”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제 정말 같이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비로소 실감났다.


3년 동안 아내는 서울에서, 나는 제주에서 살았다.

처음엔 금방 익숙해질 줄 알았다.
서로 일에 집중하고, 한 달에 한 번쯤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대화의 길이가 짧아지고,
하루가 길어질수록 서로의 하루는 점점 멀어졌다.


나는 바다를 보며 하루를 보내고,
아내는 회의실 불빛 아래서 밤을 보냈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리듬으로 살고 있었다.


퇴사 소식을 들은 그날 밤,

나는 주방 식탁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제 진짜 끝이구나.’


아내가 버텨왔던 시간,
회사라는 이름 아래 삼켜야 했던 말들,
그 모든 게 이제는 과거가 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아내는 늘 밝았다.
밤늦게 전화해서 “오늘은 진짜 힘들었다”라고 말하면서도,
마지막엔 꼭 “근데 이제 괜찮아”라고 웃었다.


나는 그 ‘괜찮아’라는 말을 믿고 안심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괜찮지 않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아내는 서울의 빽빽한 시간표를 내려놓고,
제주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말만으로도 집 안 공기가 달라진다.


싱크대 옆에 놓인 커피잔 하나,
고양이 털이 붙은 소파 쿠션 하나까지
갑자기 ‘함께 쓰게 될 물건들’로 바뀌어 보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이 된다.
3년 동안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왔던 우리가
다시 한 집 안에서 하루를 맞추려면,
분명 어딘가에서 부딪히겠지.


나는 느긋하고, 아내는 계획적이다.
나는 “내일 해도 되잖아” 쪽이고,
아내는 “지금 해야지” 쪽이다.
그 차이가 그동안의 거리만큼이나 커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투닥거림도,
같은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다행이다.


제주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
하늘은 낮고, 구름은 천천히 흐른다.


그 안에서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느낀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우리의 두 번째 계절,
이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려 한다.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불안하지만
적어도 이번엔,

같은 페이지 안에 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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