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함께 사는 일이 시작됐다.
아침부터 집 안이 부산스러웠다.
평소 같으면 고양이랑 늘어져서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인데,
오늘은 시계가 도무지 안 갔다.
커피를 내리다 말고 시계를 보고,
싱크대를 닦다 말고 또 시계를 봤다.
별일도 없는데 손이 괜히 바빴다.
공항에 가서 아내를 데려온다는 생각에
‘차를 어디에 세울까, 첫 한마디는 뭐라고 할까’를
머릿속으로 수십 번 그려봤다.
공항 도착 안내 방송이 울리고,
유리문 너머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방을 끌고 나오는 얼굴들 사이에서
아내를 보자, 반사적으로 손이 올라갔다.
아내는 반소매 셔츠 차림이었다.
늦여름의 공기가 살짝 눅눅하게 달라붙은 옷자락,
그리고 긴장과 피로가 풀린 얼굴.
그 표정엔 “이제 좀 살겠다”는 마음이 그대로 비쳤다.
“진짜... 제주네.”
차에 타자마자 아내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창문으로 따뜻한 바람이 들어오고, 구름은 낮게 흘렀다.
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한적했지만,
오늘만큼은 그 길의 모든 풍경이 우리 것처럼 느껴졌다.
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에서는 오늘 제주 날씨 예보가 흘러나오고,
아내는 창밖을 보다가 내 옆모습을 슬쩍 훑더니
“머리 좀 길었네.” 하고 툭 던졌다.
나는 대답 대신 에어컨을 살짝 세게 틀었다.
3년 만에 같은 차 안에 있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쩐지 낯설었다.
집에 도착하자 현관문이 열리기도 전에
코짱이가 뛰쳐나왔다.
꼬리를 높이 세우고, 아내 쪽으로 곧장 달려가
발목에 몸을 비볐다.
“코짱아!”
아내는 웃으며 몸을 숙였다.
코짱이는 그제야 익숙한 냄새를 맡은 듯
낮게 울며 아내의 손끝을 핥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이 따뜻해졌다.
코짱이는 금세 예전처럼 느긋함을 되찻았고,
집 안 공기도 그 순간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짐을 풀면서 아내가 물었다.
“이건 왜 여기에 있어?”
“그냥 보기 편해서.”
“편하긴 한데, 좀 치워야겠다.”
퇴사 후 첫날부터 정리 감독관 모드로 진입한 아내를 보며
나는 조용히 물 한 잔을 마셨다.
3년 만에 다시 맞춰보는 생활의 리듬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나는 미루는 편이고,
아내는 끝을 봐야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그 차이가 우리 하루의 온도를 만들었다.
저녁엔 마트에서 장을 좀 보고,
캔맥주 두 개로 소박한 환영식을 했다.
아내는 잔을 들며 말했다.
“앞으로는, 오늘 같은 하루가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대답 대신 캔을 부딪혔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넘쳤다.
그게 꼭 앞으로 우리 생활의 여분 같아서,
왠지 좋았다.
잠시 후, 고양이가 아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그걸 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랜만이었고,
그 한 장면만으로도 낮의 어색함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늦은 여름의 바람이 커튼을 살짝 흔들었다.
하늘은 천천히 붉어졌다가 어둑해졌다.
맥주 캔 하나가 비워지고,
우리 사이의 공기도 조금 더 가벼워졌다.
그 평범한 순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
다시 함께 사는 시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