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등단 1주년을 맞이하여 조촐한 이벤트를 했다. 나 혼자서... 작가명을 성형수술하듯 손을 좀 봤다.
나의 작가명을'Cha향기와찬양'에서 'Cha향기와찬양Lim'으로 바꿨다.
지난해 2월, 이맘때쯤에 나는'브런치 작가'로 등단했다.
조카가, "이모,브런치 한 번 도전해 봐요."라고 무심코 했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브런치라는 것을 몰랐다. 그냥 아침 겸 점심을 먹는 것이 브런치라고 알고 있었다. 나름 시사에 빠르고 IT에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여기고 살았다. 그런데 브런치는 내게 사각지대에 있던 플랫폼이었다.
"그거 괜찮은데..." 나는 조카의 말에 솔깃해졌다. '바로 이거다.'싶었다. 구미가 당겼다. 유튜브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브런치 작가는 일종의 '글' 유튜버가 되는 것이었다. "'구독', '좋아요' 꾸~욱 눌러주세요."라고 유튜버들이 두 손을 브이 자로 하고 너스레를 떠는 걸 봤다. 브런치는 글을 읽은 사람들이 그 작가의 '구독자'가 되고 그 글에 '라이킷'을 누르는 플랫폼이다. 종이로 출간된 책이나 오디오 북 등으로 독서한다고 알고 살았던 내게 그 방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블로그'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선발 과정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고(그래서 블로그의 퀄리티가 천차만별인 듯) 대체적으로 광고성이 다분했다.
나는 곧바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브런치가 어떤 작가를 원하는지, 어떻게 투고를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프로세스에 따라글을 작성하여 제출했다. 어라,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내가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것 같다.
첫 번째 도전은, 일상을 소재로 한 글을 썼다. 주제도 흐릿하고 일관성은 더욱 없는 글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글은 저명한 사람들이 '나는 이런 사람 입네.'하고 내놓는다면 그나마 읽힐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토리텔러처럼 입담이 좋거나 글 솜씨가 뛰어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의 첫 번째 도전은 탈락도 싸다.
두 번째 글은, 사고로 누워 있는 아들에 관한 글을 썼다. 이런 기막힌 글이 어디 있을까 하며 자신만만하게 제출했으나 역시 탈락이었다. 브런치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의 사연을 찾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은 매스컴에 수두룩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고유한 보컬로 도전하는 사람들이 결국 우승한다.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잘 담아낼 때 브런치는 미소를 짓는 듯하다. 즉 글로써 마음을 그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육하원칙에 맞는 논리적인 글을 원하는 것은 더욱 아닌 듯했다. 그래서 아마 두 번째도 탈락했을 것이다.
그다음은, 영어 교사에 임용된 이야기로 도전했다. 그 글을 제출한 후에 오기가 생겼다. 합격될 때까지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버킷 리스트처럼 붙잡고 매달릴 계획이었다. 헉, 그런데합격이었다.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여겨 미숙한 점이 다소 있더라도 등단시켜 준 듯했다.
브런치 작가 등단은 대단한 관문은 아니나 결코 만만한 것도 아니었다. 매일 브런치에 수두룩하게 올라오는 글을 보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참 많다. 나는 그 끄트머리 어디쯤에서 내 자리를 찾느라 여념이 없는 어리바리한 작가인 듯하다. 그래도 그 반열에 서 있는 내가 참 기특하다.
나는 지난 1년 간, 170여 편의 글을 발행했다. 조회수는 약 57,000회 정도, 구독자는 93명이다. 그야말로 "so-so", "not bad", "not too bad" 다. 나는 이 정도에 만족한다. 시간이 나면 글을 쓰고 바쁘면 못 쓰고... 내가 나 자신의 브런치를 주무른다. 그 누구도 나를 좌지우지하지않는다. 그래서 나는 쫓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브런치를 내팽개쳐 두지도 않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브런치가 좋다.
내로라하는 구독자도 생겼고 글을 발행하는 순간마다 라이킷 소리가 띠리링 울리곤 한다. 어떤 글은 메인에 올려져서 조회수가 폭발한 적도 있다. 더 바랄 게 뭐 있겠나?
나는 사람들이 혹하는 작가는 아닌 듯하다. 글 솜씨도 창피를 면할 정도다. 주제 또한 신박한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모든 글을 진솔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내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썼다. 내 속도대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될 것 같다. 이 모습 이대로,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예정이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서 잔잔한 힐링을 체험하고 있다. 마음속에, 머릿속에 헝클어져 있던 생각들이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많이 넓어졌다. 한약방에 간 것처럼, 정신과에 다녀온 것처럼 내 마음속이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뜨개질을 하듯 글을 엮어 작품이 되면 창작의 기쁨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내가 발행한 글을 나 스스로 읽으며 감동하기도 한다. 브런치 작가로 지내는 것은 매력 있는 나의 취미 활동이다.
무엇보다도, 숨기고 있었던 것을 글을 통하여 드러낼 수 있을 만큼 나의 자존감이 상승했다. 사실 창피하여 감추고 싶었던 것도 글로 발행된 적이 많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보다 더한 사연들도 글이 되어 브런치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분들을 향해 내가 험담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통하고 싶었고 어떤 분은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다. 내 부끄러움도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내 상처를 보듬어 줄 것이고 감싸줄 것 같았다. 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길을 트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브런치 빌리지에 사는 많은 글 동무들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들을 추앙하게 되었다.
이제 이 글을 쓰는 본론을 얘기하련다.
내 글 170여 편에 남편의 눈길이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없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살살, 남편은 내 글을 다듬어 주었다. 남편은 내 글의 초고를 읽을 때면 돋보기를 든 과학 수사관처럼 오탈자 발견은 물론이거니와 어색한 표현 등을 기차게 발견해 냈다. 남편은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었다.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특유의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 나는 긴장했다. 때로는 나를 째려보기도 했다. 브런치 작가 노릇 하다가 나는 남편 앞에서 부진아가 되곤 했다. 그러나 첫 독자인 남편의 정독이 없었더라면 내 글은 지금보다 엉성한 채로 발행되곤 했을 것이다. 독자가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읽기를 멈추기도 했을 것이다.
"오늘부터 당신도 브런치 작가여. 우린 샴쌍둥이여, 내 '작가명'에 당신도 포함되어 있어요.앞으로 브런치를 통하여 생기는 모든 기쁨과 명예, 그리고 행복의 10%는 당신 지분이야."
나는 남편에게 이런 선언을 했다.
"마치 우리는 '알고 보니 혼수상태'라는 작곡가처럼 이제 듀오팀이 되는 거라고!!!"
내 작가명에 그의 성(Lim)을 덧붙여주는 선심을 썼다. 나의 성은 차(Cha) 남편은 임(Lim)이다. 처음에 나의 브런치 작가명을 우리 부부의 성 씨를 따서 '차림'이라고 할까? 아니면 '차림표'라고 할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내 성에다가 딸과 아들의 이름을 이어 붙여 'Cha향기와찬양'으로 1년간 활동했다. 오늘부터 남편의 성(Lim)을 끝에 넣어우리 가족 모두 완전체로 된 '작가명'으로 살짝 고쳤다. 마치 남편과 내가 우리 자식을 가운데 품고 있는 듯한 작가명이다. 의미도 형태도 멋진 작가명이다. 나의 브런치 작가명은 '꾸안꾸' 미인처럼 살짝 바꾸기만 했으나 의미나 모양새가 마음에 든다. 나의 작가명이 성형수술을 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