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사무실의 프린터기가 오랜만에
나는 사정상 집을 하나 다시 마련하기 위해 빌라 2개를 처분하기로 했다. '조정지역 해제'라는 주택법 개정에 편승하여 세컨하우스로 아파트를 구하기 위하여 주택 시장의 문을 열었다.
부동산 사무실에 전화를 하거나 직접 방문하여 집을 내놓았다. 수없이 여러 군데 매물을 내놓았다. 어떤 공인중개사는 우리 매물을 네이버 부동산에 올려주었다. 내가 직접 부동산 앱에 올리기도 했다. 내가 업로드한 매물을 보고 일부 부동산이 다시 자신의 명의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물론 나의 허락을 받았다.
"내놓으신 시세보다 약간 더 올려도 되죠? 저희는 수수료와 광고비가 있어서..."라고 '부동산 앱'과 연계된 공인 중개사가 연락을 해왔다.
'물론 되고 말고 죠. 팔리기만 한다면야.' 나는 속으로 반가워했다.
그렇게까지 다방면으로 노력을 했지만 집을 보겠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가랑 개미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듯이 연락이 없었다. 조금씩 매물의 가격을 다운하여 내놓아 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가격이 높고 낮은 것은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우선 급한 대로 한 개라도 팔리면 자금 회전이 수월할 텐데..." 빌라 2개를 다 처분하면 좋겠지만 하나라도 팔고 싶었다.
우리는 주택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쫄았다. 왜냐하면 공인중개사들이 집 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절망적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잖아도 연일,
대출 이자의 가파른 상승
매물이 쌓인다
반토막이 난 아파트 가격
영끌족의 한숨
이라는 제목으로 부동산 관련 뉴스가 들려왔다.
우리는 월세를 주고 있는 S빌과 지금 살고 있는 'ㅅㅇ예가'를 팔아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마침 원하는 조건의 매물이 나왔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덜컥 매매 계약을 했다. 그때까지 여전히 내놓은 집이 미처 팔리지 않아 주택담보대출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S빌은 칭얼대는 아이처럼 우리 발목을 잡고 있었다. 몇 번인가 팔겠다고 내놨지만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잘 수리하여 월세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세입자가 만족하며 잘 살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팔기가 머쓱하여 있는 듯 없는 듯 S빌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드시 팔아야 했다.
S빌에 살고 있는 지금의 세입자는 그 집을 무척 좋아했다.
"이런 집 처음이에요. 주방도 기역자로 넓게 빠졌네요. 리모델링을 너무 잘해놓으셨어요. 마치 아파트 같아요."
그 세입자는 S빌을 보는 순간부터 좋아했다. 마치 연인을 만난 듯했다. 집도 사람과 인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분은 월세를 항상 보름이나 미리 입금시켰다.
"어차피 나갈 돈이니까 저희 월급일에 맞춰 입금해 드리는 것입니다." 세입자는 언제나 상냥하게 말했다. 그리고 늘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아이들을 넷이나 데리고 월세집에 살면서 그렇게 감사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무한 긍정 에너지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저희는 선생님이 사시는 동안에는 절대로 월세를 올리지 않을 겁니다. 아무쪼록 평안하게 잘 지내시면 좋겠어요."
그 세입자와 우리는 케미가 참 좋았다.
그리고 은행 이자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때는 차라리 그 월세가 은행에 돈 몇 억을 예금해 놓은 것처럼 쏠쏠했다. 굳이 팔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영부영 S빌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용감하게 S빌 매매 가격을 'KB가'중에 상한가로 내놓았다. 그런데 한 달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일반가로 수정하여 내놓았다. 그래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결국 하한가보다 더 낮은 전세가로 내놓았다. 부동산 사무실에 매물과 관련된 사진을 첨부하여 보내고 평면도를 그려 캡처하여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가격을 낮게 조정하거나 유의미한 사진 등을 제공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네이버 지식인을 통하여 '집 잘 파는 법', '집 팔리 파는 법'을 검색해 봤다. 알고 봤더니 내가 그 방법대로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네이버 부동산에는 랭킹순/최신순/가격순/면적순으로 필터가 세팅되어 있었다. 네이버 부동산에서 그 지역 빌라 매물 랭킹순 5위까지가 다 우리의 S빌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거의 3개월 만에 부동산에서 S빌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전세 가격으로 내놓은 가격을 더 깎아 달라고 했다. 이왕 팔기로 마음먹었으니 몇 백만 원 정도 깎아 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공인 중개사는 마치 두세 사람이 집을 살 것처럼 계속 가격을 깎아 내려갔다. 그 장단에 끌려가면 안 될 것 같아 우리가 그 쯤에서 흥정을 멈추었다.
"아, 다 좋은데 그 위층에 사는 분이 너무 시끄럽다고 하네요?"라고 중개사가 말했다.
에구, 이제 집을 팔 수 있는 상황까지 왔는데 별 게 다 문제였다.
우리는 부랴부랴 그 위층 소유주에게 연락을 했다.
"올 3월이 계약 만료입니다." 위층 소유주가 문자를 보내왔다. 다행이었다.
얏호, 그분이 곧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중개사가 소개한 그분이 이제 더 이상 집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제 계약서만 쓰면 될 줄 알았다.
"아, 그런데 매수인이 그 집을 갭투자로 구매하는 것이라 집을 산 후에 전세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 양해를 좀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중개사가 말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면 특약에 1~2개월 정도 양해한다고 적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남편과 의논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 게요."라고 중개사에게 말했다.
남편에게 의논했더니,
"세입자가 월세 잘 내고 살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집을 팔아햐 하나?"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중개사가 전세 세입자를 구해보는 부담을 오롯이 안고 매매하기로 결정을 했다. 전세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집을 팔기로 했다.
"신분증과 도장 챙겨서 저희 부동산으로 오세요." 중개사의 멘트가 반갑게 들렸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집 팔기'를 해냈다.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돌아온 남편이 말했다.
"부동산 사무실의 프린터기를 너무 오랜만에 사용하여 계약서를 출력하는데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몰라. 그리고 한낱 빌라 매매 계약서 하나 작성했는데도 중개사는 감동하더라고."
나는 지금 풍 맞은 주택 시장에 서있다. 그런 와중에 집 파는 일을 해냈다.
부동산 사무실의 프린터기가 오랜만에 일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