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면 계륵(鷄肋)일까?
풍 맞은 주택 시장에서 우리의 세컨 하우스를 (빌라에서 아파트로)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일종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고공 행진하며 주택 시장이 풍 맞은 것처럼 되자 정부는 보완책을 내놓았다. 우리에게는 세컨 하우스가 반드시 필요한데 여러 가지 규제 때문에 아파트를 구입할 수 없었다. 주택법의 테두리 내에서 'ㅅㅇ예가'라는 신축빌라를 매입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몇 가지 규제가 해제되어 세컨 하우스로 아파트를 구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지금 우리가 지내고 있는 'ㅅㅇ예가'는 나쁘지 않다. 문을 열면 바로 앞에 공원이 있다. 밤이면 단잠을 잘 수 있게 주변이 고요하다. 하지만 온종일 이곳에서 생활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매주마다 딸 내외가 우리 집에 방문하는데 그럴 때는 아무래도 협소하다. 'ㅅㅇ예가'는 <방 3/화 2> 구조이긴 하지만 다양한 살림살이를 다 갖추어 놓기에는 좁은 편이다. 그중 가장 아쉬운 점은 뷰가 별로라는 것이다. 남향이 아닌 데다가 거실이나 안방, 어느 한 곳도 탁 트인 곳이 없다. 심지어 거실 문을 활짝 열면 바로 앞동과 눈이 바신다.
이제 한 학기만 보내면 나는 정년 퇴임을 한다. 그 이후에는 지금보다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 거실에서 주로 차를 마시거나 글을 쓸 것이다. 지인을 불러서 식사도 하게 될 텐데 그럴 만한 공간으로 'ㅅㅇ예가'는 옹색하다.
그래서 법 규제가 느슨해진 이때를 기회로 삼아서 'ㅅㅇ예가'를 처분하고 좀 더 활용도가 좋은 아파트를 장만하기로 했다.
주택 시장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뉴스 이면에, 우리에게는 희망적인 것도 있었다. 'ㅅㅇ예가'를 처분하려는 우리에게는 솔깃한 뉴스다. 그러나 뉴스와 현실은 현장에서 체감해 보니 꽤 달랐다.
* 빌라 매매가 아파트 매매를 넘어섰다
* 반토막 난 아파트 가격에 비해 빌라 값은 오름세
* 서울을 떠나 인천으로
https://www.hankyung.com/realestate/article/2022101100841
아파트 값이 반토막이라는데 부동산 앱을 통하여 'ㅅㅇ예가'의 KB가격을 확인하고 내심 놀랐다. 빌라는 사는 날부터 값이 내려간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 'ㅅㅇ예가'는 KB가격의 상한가 기준으로, 약 2년 만에 6,500만 원이나 올라 있었다. 마치 아이가 좋은 성적표를 들고 왔을 때의 기분 같았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교통이 편리한 이곳으로 유입해 오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파트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낮고 관리비 등이 저렴하여 빌라는 찾는 사람이 늘고 있어서 그런가?
우리는 부동산에 KB 상한가보다 1,500만 원 정도 낮추어 매물을 내놓았다. 나름 '급매물'이라는 제스처였다.
그런데 공인 중개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
"KB가격을 참고하여 나름 싸게 내놓는 건데요?"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 하면 이게 시세로 되어서 곤란... 가격을 이렇게 하면..." 그는 얼버무리면서 상당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공인중개사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가격으로 매매가 성사되면 그것이 시세가 된다는 투로 들렸다. 그게 도대체 어떻다는 뜻인지?
"그래도 일단 이렇게 내놔 주세요." 내 딴에는 싸게 낸다는 맘으로 그렇게 말하고 부동산 문을 닫고 나왔다.
그런데 내가 직접 매물을 등록해 놓은 부동산 앱에서 연락이 왔다.
" 'ㅅㅇ예가' 그거~. 가격을 공시지가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그 가격으로 내놓으면 안 돼요. 공시지가의 120%로 환산하여 시세를 정하는 겁니다." 생각지 못했던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부동산 가격을 매도인이나 매수인과는 상관없이 누군가 조정하는 손이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요? 저는 엄연히 KB가격을 참고하여 나름 싸게 낸 건데요? 아파트는 다 KB가격을 기준으로 거래되고 있고 주택담보대출도 KB시세를 기준으로 한다는데..." 나는 말끝을 흐렸다.
"섭섭하시겠지만 지금 내놓으신 가격에서 1억은 다운시켜야 합니다. 요즘 다 팍팍 내려서 내놓는 추세입니다." 부동산 앱에서 온 전화는 우리의 기분을 잡치게 했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공인 중개사가 했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부동산 앱 관련자가 하는 말은 한 술 더 뜨는 격이었다. 매도인이 내놓은 가격에 매수인이 오케이 하면 그만 아닌가? 뭔가 그 세계에 나름 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려놓듯이 내가 허튼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그냥 월세로 내. 이 집은 앞으로 10년 이상 말썽 하나도 부리지 않을 텐데..." 남편이 말했다.
"나는 살고 있는 집 외에 더 가지는 게 딱 싫은데, 귀찮고."
우리는 이 부분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었다. 남편은 어처구니없는 가격으로 파느니 차라리 월세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나는 집을 사겠다는 작자만 나타나면 제 값을 못 받더라도 팔아 치우고 싶었다.
"그냥 월세 받아서 은행 대출 이자 내면 되잖아."
"그렇게 되면 내 눈에 월세는 안 보이고 대출 이자만 매월 선명하게 보일 것만 같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빚이에요. 그다음으로 싫어하는 게 할부고. 은행 대출 이자는 그 두 가지를 갖춘 최악이야." 나는 큰 소리로 'ㅅㅇ예가'를 월세로 내자는 남편의 말에 저항했다.
아무튼 공인중개사와 부동산 앱 담당자의 말을 듣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4,000만 원을 다운시켰다.
그래서일까?
부동산 앱을 통하여 한 사람이 집을 보러 왔다. 보아하니 집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날 7군데의 집을 봤지만 우리 집이 제일 맘에 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부동산 앱에서는 우리가 내놓은 가격보다 1,500만 원을 올려서 등록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보러 온 사람은 비싸다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고 당장에 계약을 하고 싶어 했다. 잠시 나갔다가 밑에서 기다리던 남편과 시어머니가 올라와서 재차 보기까지 했다.
"좋네. 계약해."시어머니가 말했다.
"오늘 우리 집의 진가를 알았네. 그 앱에서 KB가격보다 2,000만 원 정도만 다운되었는데도(부동산 앱에서는 거기서 1억 정도를 다운하라고 윽박질렀음) 비싸다는 말을 하지 않고 저렇게 좋아하잖아. 이 집이 꽤 똘똘하네."
그러나 그분은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원래 우리가 내놓은 가격을 눈치챘던 것 같다. 그래서 가격을 좀 낮추자고 했던 것 같다. 그분들끼리 의견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아쉽게도 그날의 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사 날짜는 다가오고 그때까지 집이 팔리지 않는다면 집을 공실로 둬야 할 판이다. 그래서 월세로라도 내놓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ㅅㅇ예가'를 '뜨거운 감자'라고 할까? 아니면 '계륵'이라고 할까?
가지고 있자니 뭣하고 팔기는 쉽지 않고...
"그거 월세로 내신다면 하겠다는 분이 있어요. 월세는 금방 나갈 거예요." 부동산에서 월세 손님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아, 우리는 월세로 내는 것보다는 팔고 싶은데...'
"월세로는 내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손님과 함께 일단 집이나 한 번 볼게요." 중개사는 내 속맘을 읽었는지 그렇게 말을 했다.
이 시국의 주택 시장에서 집을 판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감나무 아래 누워서 홍시가 내 입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꼴과 같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집이 정녕 팔리지 않는다면 매매를 포기하고 월세로 내봐야 할 것 같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30106_0002150580
개학일 이전에 구해야 해서 다른 집을 보신답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가려면 길을 건너야 해서 포기한답니다.
아직 집을 보지도 않았고 가격을 흥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저런 이유로 결국 집을 보러 오지 않았다. 그 시간에 맞추어서 나는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집안 청소를 하고 다른 일정까지 미루고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이 두 번이나 파투 났다. 주택시장에서 세입 예정자의 노쇼 바람을 맞았다. 집 팔기 참 어렵다.
그리고 또 한 분(월세 찾는 자)이 집을 보러 온다고 한다.
"일단 집을 보여드리자고. 이 참에 중개사도 우리 집을 미리 봐 두면 좋지." 아무래도 남편은 매매가 안 되면 월세라도 불사하겠다는 맘을 먹은 것 같다.
그분이 집을 본 후에 맘에 든다고 하면 한 주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할 참이다. 그때까지 매매가 안 되면 그때는 월세로 계약을 하겠다고 말할 예정이다.
"팔기는 아까운 집이야."
남편은 이 집이 참 좋은 모양이다. 헐값으로 팔아치울 집이 아니라고 했다.
"이 집은 우리가 아쉬워하며 중고차 시장에 팔았던 당신 차(경차) 같아. 그 경차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잖아. 편리하고 앙증맞고..."
"당신은 편리하고 앙증맞은 것을 좋아하네요." 내가 눈을 흘기며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도 앙증맞아서 좋아." 남편의 실없는 말에 나는 웃고 말았다.
"이렇게라도 한 번 웃네요."
월세로 집을 보겠다는 분과 중개사가 곧 도착한다고 방금 연락이 왔다. 그분들이 도착하기 30분 전이다. 그런데 나는 뚝심이 없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월세로 회까닥 계약을 할 것만 같다.
이 집이 뜨거운 감자인가? 계륵인가? 참 난감하다.
P. S. 그럴 줄 알았다. 결국 월세로 계약을 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3개월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집 팔기와 집사는 일이 마무리 지어졌다.
[커버 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