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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r 12. 2024

영수증을 보고 놀란 이유는 바로?(쪽파)

- 전업주부 1일 차는 완전 망함!

3. 11.(월), 학교는 최고로 바쁜 한 주간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월요일이었다. 그 달달함을 어떻게 표현하랴? 

사실 1월,  2월이 방학이었기 때문에 쉬는 연습이 되어 있긴 했다. 그래도 방학 때 맞이하던 월요일과는 달랐다. 바야흐로 쉼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전업 주부가 되었다.




교사에게 3월은 가장 긴장되는 달이다. 새 얼굴, 새 업무에 허둥지둥하게 된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세상의 일이란 일을 다하는 느낌이었다. 3월에는 교사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직업이란 생각이 들곤 했었다. 숨 쉴틈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콩을 볶듯 했다. 3월은 그랬다.


지난 3월 1일부터 4박 6일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래서 진정한 쉼은 이번 월요일(3.11.)부터였다. 그날이 바로 내게는 전업 주부 1일 차였다. 그동안 재래시장의 반찬 가게에서 밑반찬을 샀다. 이제는 그 일을 접기로 했다. 틈나는 대로 요리를 해볼 참이다.


중증 환자 아들을 돌보는 일이 나의 주된 루틴이 됐다. 아들을 보살피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 거긴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 원하는 만큼 카트에 담아 계산하면 끝이다. 게다가 이 마트는 내가 사는 세컨 하우스 맞은편 있으니 그 편리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카레 재료를 살펴봤다. 남편은 카레를 참 좋아한다. 다행이다. 그것 하나만 있어도 식사를 맛있게 하니... 감자, 양파, 당근 그리고 카레용 고기를 샀다. 구정에 남편이 맛있어 했던 홍어 회도 챙겨 넣었다. 군것질거리도 몇 개 샀다.

그런데 야채 매대에 깐 쪽파가 눈에 띄었다. 그러잖아도 지난 주일 오후에 딸내미에게 쪽파 김치를 사 줬다. 반찬 가게에 있는 쪽파 김치는 한 줌 정도에 10,000원이었다.


까짓것, 이제 전업주부니까 쪽파 김치 정도야 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깐 쪽파 한 단을 카트에 실었다. 쪽파 한 단에 1,690원이었다. 일전에 깐 쪽파를 샀던 기억이 났다. 물가가 비싸다고 뉴스에서는 난리였던 것에 비하면 쪽파 가격이 괜찮은 것 같았다.


https://brunch.co.kr/@mrschas/261

딱 1년 전, 이 마트에서 나는 깐 쪽파 한 단에 3,980원을 주고 샀다. 쪽파 한 단의 무게가 그때와 같은 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봤자 그 무게야 개긴도긴이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계산을 하니 영수증에 찍힌 합계가 무려 75,000원이었다. 그 순간, 살짝 놀랐다. 이것저것 좀 집어넣었는데 가격이 이 정도라고? 아, 서민들이 어떻게 먹고사나? 하는 걱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집에 와서 장거리를 펼쳐 놓으며,

 

"무슨 물가가 이렇게 비싸?"


라며 혼자 투덜댔다. 아무래도 영수증의 합계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영수증을 훑어봤다.

영수증의 가격 무게가 너무 무거운 듯했다. 자세히, 꼼꼼하게 영수증을 훑어봤다.

'헉, 이럴 수가?'


내가, 쪽파 가격을 잘못 본 것이었다.


깐 쪽파는 1,690원이 아니라 16,900원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10배나 더 비쌌다. 도대체 나는 세상을 알기나 하는 사람인지?


가격이 그 정도인 줄 알았더라면 내는 깐 쪽파를 사지 않았을 것이다. 카트에 담았더라도 도로 제 자리에 가져다 두었을 것이다. 어리바리, 전업주부 1일 차가 확 망한 기분이었다.


나의 덜렁거리는 성격 때문에 이와 비슷한 해프닝을 겪은 적이 있다.


강화도 여행 중이었다. '강화도 하면 장어'라고 지인이 말했다. 강화도에 가면 꼭 장어구이를 먹어 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남편과 둘이서 장어구이 집에 들어갔다. 갯벌 장어구이를 그때까지 먹어본 적이 없었다.


장어구이 1kg에 10,000원이라는 메뉴판을 보고 2kg을 시켰다.

한참 있다가 메뉴판을 자세히 보니 '0'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그래서 급히 1kg만 달라고 주문을 정정했다.


앞으로 물건을 사거나 메뉴판을 볼 때 동그라미 개수를 잘 세어 봐야 할 것 같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동그라미 수 세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너무 비싸게 샀다고 생각되는 깐 쪽파를 한 참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파김치를 맛있게 담아 그 씁쓸한 맘을 다독거리기로 했다. 저녁에 정성껏 쪽파를 씻어 밤새 물기를 빼두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파김치부터 담갔다. 레시피는 언제나 '만개의 레시피'만 검색하면 그만이다.

양념을 잘 갠 후에 씻어둔 파를 넣어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세상 간편한 것이 쪽파 김치 담그기다.


쪽파 김치 맛은 끝내줬다. 액젓, 올리고당, 고춧가루, 통깨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내게는 야심의 팁이 있었다.


[출처: 한국민속 대백과 사전: 확독]

시어머니가 '쪽파지' 담그는 것을 간간이 본 적이 있다. 시어머니는 항상 확독에 마른 고추를 갈아 파김치를 담그셨다. 확독에 고추를 갈 때 밥을 한 덩이 넣는 것을 봤다.


내게 확독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대신에 찬밥 한 덩이에 물을 붓고 찹쌀죽처럼 끓였다. 마치 김장 때 찹쌀풀을 쑤듯이...


그 밥을 끓인 죽을 넣으면 파김치의 감칠맛이 더할 것 같았다. 거기에 당근과 양파를 채 썰어 보탰다. 만개의 레시피를 읽은 후에 내가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파김치를 담갔다.


파김치 담그기에 한 가지 추가할 팁은?

파김치를 버무린 후에 한 5분 정도 있다가 찬통에 옮겨 담으면 쪽파가 숨이 죽어 나긋나긋해진다. 찬통에 덜어 담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비싼 쪽파를 샀지만 그래도 맛있는 쪽파 김치를 담갔다. 반분은 풀렸다.




전업 주부 1일 차는 망했지만 제 2일 차는 대 성공이었다.


#쪽파  #장어  #확독  #쪽파김치 #영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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