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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Feb 27. 2024

정월 대보름에~(1)

- 찰진 찰밥 VS 고슬고슬한 찰밥

음력 달력을 보지 않으니 정월 대보름인 줄도 몰랐다. 내가 글을 발행할 때마다 바쁘신 가운데도 읽고 댓글까지 달아 주시는 '별' 작가님이 "정월 대보름, 민속 명절이네요."라고 말해 주셔서 그 때야 실감했다. 그냥 넘어가도 되겠지만 찰밥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이참에 오곡밥을 대령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걸 사러 나갈 짬이 나지 않았다.


오후 3시였다.

나는 그날 오후 3:30분까지 중증환자 아들을 돌보러 가야했다. 그래서 서둘러 재래시장으로 갔다.

시장 안 떡집에서 오곡밥을 사 올 작정이었다. 종종걸음으로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반찬 가게의 매대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오곡밥이 진열되어 있었다. 일단 하나만 샀다가 딸네 것도 하나 더 샀다.


부랴부랴 사 온 오곡밥을 식탁에 올려 두고 아들에게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에 아들을 돌보는 활보쌤은 이제 막 이 일을 시작하 분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 드려야 했다. 연세가 있어서 그런지 한 번만에 알 만한 것도 여러 차례 시범을 보여야 했다. 2월 1일부터 활동 보조의 일을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맘 놓고 맡겨둘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분이 할 일 중에서 중요한 단계를 다 확인한 후에, 저녁 6시경에야 우리 부부가 지내는 세컨 하우스로 돌아왔다.


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내가 사 온 오곡밥이 남편이 좋아하는 찰진 밥이 아니었다. 남편은 1년 365일 내내 찰밥을 먹어도 싫다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진 밥이나 찰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이 인절미를 좋아하는 데 비해 나는 백설기를 좋아한다. 우리 부부는 식성이 반대다.


저녁 밥상을 차렸다.


"에이, 이 사람아, 당신 속은 거야."

"뭐가?"

"이건 찰밥이 아니야."

"정월 대보름에 내놓고 파는 것인데 찰밥 아 걸 팔겠어요?"

"그리고 이건 오곡밥도 아니야. 당신이 속은 거야."

"밥을 찌면 고슬고슬하게 저렇게 돼요. 난 군침이 도는데..."

"이 사람아, 찰밥은 찰진 맛에 먹는 거야."

"그 밥이 싫으면 우리 집에 있는 맨밥을 데워 드릴까요?"


남편은 서너 살 아이처럼 뾰로통하여 투덜댔다.


"나물은 없네?"

"곧 푸꾸옥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 있는 반찬 먹어치우려고..."


'내가 뭐 하려고 그 바쁜 시간에 오곡밥을 사러 갔다가 이런 꼴을 당하는지...'


속으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어쩌지? 애들 것도 한 통 샀는데..."

"아마, 사위도 나 닮아서 이런 찰밥은 안 먹을 거야."

"사위는 찰진 찰밥도, 렇게 고슬고슬한 찰밥도 다 좋아할 거예요."

"딸은 찰밥 원래 안 좋아하지?"

"아닐 걸요. 딸도 나를 닮아 이런 고슬고슬한 찰밥 좋아할 걸요.


남편은 내가 시장을 다녀온 후에 아들을 돌보고 오는 동안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건 괜찮다. 일주일 내내 아침 일찍부터 아들을 챙기러 갔다가 토요일 오후가 되 긴장이 풀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찰밥을

고슬고슬하게 찔 수도 있는데 그런 걸 사 왔다며, 내가 속은 거라고 타박했다.


"모든 것은 전문점에서 사야 하는 거야. 일전에 동지 때도 내가 그 반찬가게에서 동짓죽을 샀는데 다른 사람들이 새알심에 밀가루를 섞었느냐고 묻는 걸 봤어."

"에이, 서민들 상대하는 장사인데 설마 속겠어요? 그렇게 해서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나라면 절대 그렇게 안 할 것 같은데요. 하루 이틀 보고 말 손님들이 아닌데 설마 그렇게 속이겠어요?"

"이 사람아, 그건 모르는 것이야."


남편은 계속 맛이 없느니, 찰밥이 아니라느니, 가게가 속인 거라느니,라고 하면서 말이 많았다. 먹을 것 앞에서 말이 많은 남자는 참 별로다.


'배가 불렀지, 예전에 진짜 없어서 밥 얻으러 다니는 사람을 못 봤나 보지.'


나는 속으로 화가 너무 났다. 그렇다고 내가 바락바락 우겨봤자 싸움만 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 내가 생각했던 오곡밥과 다르네? 다음에는 여러 집을 다녀보고 찰진 오곡밥을 사도록 하시오.'


하고 그냥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우리 부부의 겉만 보고 내가 내 맘대로 살고 남편이 백번 양보하는 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가 참 많다.

나는 건성건성 빨리 일처리를 다. 그러나 남편은 느릿하다. 대신에 남편이  일은 완벽하다. 다시 손 볼 일이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매우 다르다.


"엄마가 아빠에게 많이 맞추던데요?"


사람들은 남편이 백 번 나에게 맞추어 산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남편이 하도 다정하 내가 부부 관에서 아무런 불만이 없는 줄 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내가 남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딸은 아는 것 같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 너무 구석에 몰리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떡집에서 오곡밥을 사지 않은 것과 그 반찬 가게떡집도 아니면서 정월 보름에 뜬금없이 오곡밥을 내놓고 파는 것에 대해 불만이었다. 그래서 일단 내가 샀던 것이 오곡밥이 맞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쓰레기 통을 뒤졌다. 카드 영수증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 반찬가게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좀 전에 거기서 오곡밥을 사 온 고객인데요."

"아, 네~"

"궁금한 게 있어요. 그 밥이 맵쌀이에요? 찹쌀이에요? 남편이 밥이 찰지지 않다고 난리네요."

"아, 그거 시루에 쪄서 그래요. 고슬고슬한 오곡밥에요."

"팥만 보이던데요?"

"아니에요, 수수, 조, 등등 오곡이 다 들어간 거예요."


전화를 끊고 오곡밥을 젓가락으로 들춰봤다. 팥이 대부분이고 드문드문 조, 수수, 강낭콩 등이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먹어본 찰밥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찰지지 않고 고슬고슬한 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남편은 계속 부아가 돋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이튿날 떡집에 들렀다.

오곡밥이 진열되어 있었다. 역시 고슬고슬했다.

아무래도 남편 너무한 것 같다. 문제는 남편에게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추고 주방으로 나갔다. 찰밥을 하러 나간다. 까짓것, 그게 소원이라면 찰진 찰밥을 해서 대령하지 뭐.

찰밥을 압력솥에 하면 밑부분이 타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양을 조금만 하여 타지 않게 찰진 찰밥을 하여 그의 앞에 내밀어야겠다. 그러면 나는 의문의 1승이 된다.

.

.

.

짠~~~~~~~~~~~~~~!

남편의 소원대로 찰진 찰밥을 했다. 그런데 나는 축축하여 아무 맛이 없었다. 그래서 서너 숟가락만 먹었다. 밥이 찰져 금방 질렸다. 그런데 남편은,


"이게 바로 찰밥이야."


라며 맛있게 먹었다. 이해가 안 됐다.



그건 그렇고 남편의 찰밥 타령에 새삼 유년 사절이 떠올랐다. 그 유년 시절의 정월 대보름 풍경 속에는 늘 먼산이네 가족이 있다.


다음 편에는 먼산이네 이야기를 한 번 풀어 봐야겠다.


[대문사진: 고슬고슬하게 찐 오곡밥]


#찰밥  #오곡밥  #정월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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