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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소리가 BGM이었어요

- 잡채

by Cha향기


[잡채 ⓒAI]


원촌 할매와 나대실 할매는 동서지간이다. 두 분이 멀고 먼 부산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나대실 할매네 딸내미가 자신의 어머니와 숙모를 부산에 초대했다. 부산의 명소를 딱 하루 구경했는데 나대실 할매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원촌 할배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나대실 할매 딸내미가 받은 것이다.


OOO님 별세. 급 귀가 요망


나대실 할매 딸내미는 어머니께만 그 사실을 알린다. 나대실 할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나대실 할매네 딸내미도 맘이 맘이 아니었다. 작은 아버지를 잃은 상주이기 때문이다. 미망인이 된 당사자가 한시바삐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니 얼렁뚱땅 말을 만들었다.


"작은 어머니, 제가 급한 일이 좀 생겨서 그러는데, 지금 어머니랑 집으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아요."

"아이고야. 재미나고 좋았는데 우짜다가 그런 일이 생겨 버렸노? 나쁜 일은 아니제? 아쉽다. 담에 또 오마."

"그래, 그래, 동서야. 우리, 어서 돌아가자." 나대실 할매는 원촌댁을 족쳤다.


부산에서 집까지 가려면 하루가 족히 걸렸다. 원촌 할매는 내내 아쉬운 마음이 큰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에 도시에 나갔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원촌 할매는 원촌 할배에게 후살이로 들어왔다. 대구에서 살던 도시 여성이었다. 원촌 할매는 파마를 하여 웨이브가 있는 머리를 빗어 넘겨 비녀를 꽂았다. 그래서 원촌 할매의 머리 매무새는 남달랐다. 원촌 할머니는 시골에서 볼 수 없는 옷을 입으니 간지 나 보였다. 그런 분이 깡시골로 들어와 샌님 같은 원촌 할배와 살았는데 드디어 코에 도시 바람을 쐤던 것이다.


일찍이 전처와 사별했던 원촌 할배는 전답이 많은 알부자였다. 그런데도 돈을 더 벌겠다고 장터에 나가 장사를 했다. 장판지, 도배지 등을 파는 지물포를 운영했다. 새마을운동으로 사람들이 집수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때라 장사가 꽤 잘됐다. 원촌 할매가 재가해 와서 미자 아지매와 원길이 아재를 낳았다. 미자 아지매는 나보다 나이가 네댓 살이나 적지만 항렬상 아지매라는 말을 꼭 붙여야 했다. 미자 아지매는 배 다른 언니, 춘자 아지매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부산에서 출발했던 원촌 할매와 나대실 할매는 어둑할 즈음에 유판마을에 당도했다. 동구 밖에는 마치 원촌 할매와 나대실 할매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몇몇이 서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대실 할매는 부산에서 받았던 전보에 관하여 일언반구 말을 하지 않았다.


팔 남매 종갓집 맏며느리인 나대실 할매가 젊잖은 것은 온 동네가 다 안다. 설 자리, 앉을자리를 알았고 아랫 동서들에게 위엄 있지만 자상하고 정 많은 맏동서였다. 그런 나대실 할매는 청상과부였다. 그러나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집안 대소사를 헤쳐나갔다. 남편을 앞세웠지만 시부모님을 잘 모셨고 문중 어른으로서의 체통을 지켰다. 사람들은 기나긴 겨울밤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나대실 할매 방으로 모여들었다. 거기서 홍시를 먹거나 무를 깎아 먹었다. 또한 민화투를 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귀신을 봤네, 꿈을 꾸었네, 사랑을 했었네, 별의별 얘기를 하며 동지섣달 밤을 보냈다. 나대실 할매네 청마루는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들거렸고 통시나 뒤란도 먼지 한 톨 없었다. 우물가에도 축축한 이끼 따윈 없었다. 고슬고슬하게 우물을 간수했다. 나대실 할매는 눈만 뜨면 손에 걸레를 들고 다니며 온 집안을 정리 정돈했다.


남편처럼 의지하던 큰 시동생이 황망히 세상을 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대실 할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타관 객지에서 비보를 전해 들으면 놀라 자빠질 손아랫동서가 걱정되어 나대실 할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성님, 동네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심더, 으슬으슬 춥고 음산한 기운이 도네예."

그때까지도 나대실 할매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원촌 할매네 대문 앞에 당도하니 집안에 훤하게 불이 켜져 있고 대문 처마 밑에는 근조(謹弔)라고 적힌 조등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마침내 나대실 할매는 목놓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어이구, 어이구, 이게 무슨 일이고? 데럼, 데럼(도련님) 우리 왔다 아입니꺼? 눈 좀 떠 보이소.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고? 동서야, 이제 우예 살래?"

그때야 원촌 할매는 사태를 알아챘고 그 자리에서 뒤로 훌러덩 넘어갔다. 손아랫동서들이 원촌 할매를 부둥켜안고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로 원촌 할매가 곡을 하기 시작했다. 원촌 할매 곡소리에 여기 저기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몬 산데이, 이녀러 팔자를 우야믄 좋노? 저 어린 것 놔두고 영감이 먼저 가믄 난 우짜능교? 아이고, 아이고."

원촌 할매와 나대실 할매가 화음을 넣듯이 구슬프게 밤이 새도록 곡을 했다. 이따금 춘자 아지매가 높은 목소리로 곡했다.


"아부지, 아부지, 엄마도 일찍 가셨는데 아부지마저 이렇게 가믄, 우리는 우예 사노? 아부지, 가지 마, 나도 갈 거야."

그런가 싶으면 중간중간에 남자들은 "어이고, 어이고" 라며 굵고 낮은 소리로 곡을 했다.


원촌 할매 댁은 우리 뒤란에서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둔 뒷집이다. 더군다나 사랑채는 우리 집 바로 뒤에 있어서 곡소리가 곁에서 나는 듯했다. 밤은 깊어가고 원촌 할매와 나대실 할매 곡소리에 춘자 아지매, 미자 아지매 울음소리가 섞여 정지 버튼이 없는 유성기처럼 끊어지질 않았다.

[곡하는 상주 ⓒ AI]


이튿날, 대문을 빼꼼히 들여다보니 사랑채 기둥을 짚과 새끼로 둘둘 말아 두었고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사랑채 마루에 가득했다.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마당에는 음식을 장만하는 손길이 바빴다. 한쪽에서는 농담해 대며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엄마도 장례 음식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엄마 곁으로 다가가니 웃터 아지매가,


"너거들 왔나? 여기 앉아라. 한 상 받아라. 원래 초상집에서는 애, 어른 할 것 없이 한 상씩 받는 법이다. 원촌 할매네는 잘 사는 집이라 초상 음식상이 걸다."

우리는 각자 한 오봉씩 받아 들었다. 접시마다 떡, 묵, 부침개, 잡채, 고기가 있었다. 잔치 집에 갔을 때 받아먹던 음식과 비슷했다. 그런데 잡채는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세상에, 세상에 원촌 할매가 다르긴 다르데이. 이런 것도 초상 음식으로 올린다 아이가. 이게 잡채라는 기다. 잡채. 그 맛이 기가 막힌데이.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제?"

음식을 전달해 주는 웃터 아지매가 잡채에 대해 한껏 설명했다. 우리는 젓가락을 들고 잡채를 난생처음으로 먹어봤다. 잡채 맛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맛이었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그런 맛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맛보지 않았던 오묘한 맛이었다. 우리는 떡과 고기는 뒤로 하고 우선 잡채부터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맛있게 잡채를 먹고 있을 때, 이따금씩 곡소리가 났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곡을 해야 할 때가 꽤 여러 번 있는 모양이었다. 그 타이밍이 아니어도 춘자 아지매는 목이 꺽꺽 쉬도록 울었다. 잡채를 먹고 있는 내내 맘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요즘도 잡채를 먹을 때면 그때 일이 떠오르곤 한다.



잡채라는 게 라면 끓이듯이 간단한 요리가 아니잖은가? 그래도 잡채를 간단하게 만들어 보려고 레시피를 여러 개 살펴봤다. 어떤 영상에서는 잡채를 그냥 5분 만에 후루룩 뚝딱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그 레시피대로 잡채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 영상에서는 부추, 양파, 당근만 넣고 불려 놓은 당면과 함께 잘 볶으면 끝이었다. 그런데 부추는 잡채를 익히는 중에 숨이 죽어 버려 흔적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잡채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요리사는 시금치가 쉽게 쉬어 버리니 그 대신에 부추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부추 대신에 청 피망을 채 썰어 넣기로 했다. 그게 모양새가 나을 것 같았다.


내가 5분 만에 뚝딱 만든 잡채 레시피다. 이 방법은 보글보글 끓이는 잡채다.


- 당면은 미리 불려둔다. 찬물에는 1시간, 미지근한 물에는 30분, 뜨거운 물(끓는 물이 아닌)에는 5~10분 정도 불리면 된다.

- 양파, 청 피망, 당근은 채 썰어 둔다.

- 물, 간장, 식용유, 설탕 등을 넣고 끓인다.

- 불려둔 당면을 넣고 끓이다가 채 썰어둔 야채를 넣는다.

- 잘 조려주면 잡채가 완성된다.

- 잡채엔 고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훈제 오리도 넣었다.


비주얼은 다소 생경스러워도 잡채밥으로 비벼 먹으면 그저 그만이다. 그런데 남편이, "나 잡채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라고 했다. 어릴 때 못 살았기 때문에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남편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고 했다.


'배가 불렀네 잡채가 얼마나 맛있는데, 뷔페에 가더라도 나는 잡채는 꼭 챙겨서 먹는데...' 속으로 뾰로통해졌다. 혹시 정통 방식대로 만든 잡채가 아니어서 남편의 젓가락질 속도가 느렸나? 그렇다면 이다음에 원래 방식대로 잡채를 만들어 볼까? 그러면 남편이 후루룩 쩝쩝 잡채를 잘 먹을까?



잡채를 먹을 때마다
원촌 할배 장례가 생각나곤 한다.
원천 할매, 나대실 할매는
세상을 떠나고 없을 그 고향,

지금도 하늘엔
흰구름이 두둥실 떠나니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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