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조개 고추 조림
친정 엄마는 전사처럼 일처리를 잘하셨지만 뒷정리는 꽝이었다. 엄마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다니며 치워야 했다. 나물을 다듬은 후에도, 물건을 팔고 나서도, 그 모양 그대로 두고 또 다른 일을 하시려고, 어머니는 후다닥 그 자리를 뜨곤 했다.
우리 집 대청마루는 잡동사니 물건이 늘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 꼴을 보는 게 힘들었다. 개울가에서 소꿉놀이 할 때, 소꿉을 잘 정돈해 놓은 다음에 자꾸만 바위에 물을 끼얹곤 했다. 그렇게 하면 맘이 개운해졌다. 시멘트로 된 마당 바닥에 물을 뿌려 씻어내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걸레를 삶아서 백옥 같이 새하얗게 해 놓아야 맘이 편했다. 치아 사이에 고춧가루가 낄까 봐 몇 년간 김치를 먹지 않았다. 반찬은 멸치나 오뎅 볶음 같은 것만 먹었다. 그러잖아도 친정 밥상에는 탕이나 국이란 게 거의 없었다. 죄다 마른반찬 일색이었다.
한 번은, 마루 청소를 깔끔하게 해 놓고 소를 먹이러 산에 갔다. 산에서 돌아오니 마루 위가 어지럽혀져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마루에 있는 모든 것을 마당에 집어던지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아무튼 결혼 전까지는 집안이 깔끔하지 못한 것 때문에 늘 짜증이 났다. 깔끔하게 집을 정돈하고 사는 이를 보면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정도로 정리 정돈하는 것에 집착했다.
그런데, 아뿔싸, 결혼해 보니 시어머니도 깔끔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시어머니의 깔끔하지 않은 것에 대해 투덜거리면 남편은 시어머니 편을 들었다. 남편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시댁에 가면, 그릇을 일일이 다시 씻은 후에 일해야 하니 시간이 두 배나 걸렸다. 찬장도 그렇고, 냉장고 안도 그렇고, 모든 게 꺼림칙하여 닦고 정리해야만 했다. 그러니 시댁에서는 과일이나 떡 같은 것은 먹었지만 식사는 밥알을 세 듯하며 겨우 몇 숟가락 먹을 정도였다. 발을 넣어 씻었던 세숫대야에 세수를 하다니. 게다가 세숫대야에 나물이나 돼지고기를 담가 두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비위가 상하고 온갖 신경이 다 쓰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때때로 파김치나 열무 어린지를 담그실 때면 곁에서 간을 보며 집어먹기는 했다.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신혼 때부터 명절마다 시댁에 가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7남매 맏며느리였으니 내 자리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시동생이 세 명이나 있었지만, 우리가 결혼한 지 10년을 지난 후에야 한 사람씩 결혼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은 주방일 할 사람은 나 혼자였다. 명절 독박이었다. 물론 시어머니가 대부분 준비를 해놓으시지만 전을 부치거나 생선을 굽는 것은 내 몫이었다. 식사 준비를 하거나 설거지도 내 차지였다. 다른 식구들이 식사 후에 하하 호호 웃으며 놀고 있을 때 나는 어두 컴컴한 시골 수돗가에서 모기에 물려가며 설거지하느라 허리가 휠 것 같았다. 그런 일을 혼자 감당하기 버거웠는지 명절마다 배탈이 나곤 했다. 일도 일이었지만 맘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결혼 이후 거의 20년 간 명절이라고 해도 친정에 간 적이 없다. 그런데 시부모님은 시누이가 친정에 오는 것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셨다. 귀한 음식은 사위들이 당도해야 내놓곤 하셨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너도 친정에 가 봐야 할 텐데,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건 지금도 섭섭하다. 사실 친정에 가라고 등 떠밀었더라도 일정에 쫓겨서 친정에 들를 여유가 없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추석엔 친정, 설엔 시댁, 이런 식으로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눈앞에 있는 일만 하느라 그런 궁리를 해보지 못했다. 융통성이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면 마다할 시부모님은 아니었는데... 알고 보면 내 발등을 내가 찍은 것이다.
아무튼, 명절에 시댁 가는 일은 거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인천에서 오후쯤 출발하면 밤새 정체 속에 갇혀 있다가 이튿날 오후에야 시댁에 도착하기 일쑤였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때였고 교통 방송을 주로 들었다. 이 길, 저 길 모두 막히지 않는 곳이 없었다. 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네댓 시간 갇혀 있기도 했다. 정체된 길에서 더러는 차 속에서 나와 스트레칭을 하거나 용변을 보기도 했다. 휴게소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간이 화장실도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 하니 이용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엔 시댁에 가야만 하는 줄 알았다. 요즘은 명절에 콘도에 가거나 해외에 나가는 게 국룰처럼 되어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시댁에서는 명절 내내 쉼 없이 일만 했다. 돌밥돌밥이었다. 남자들은 차려주는 밥상을 척척 받아먹으며 낄낄거리며 놀았다. 그게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집에서는 다정하기만 하던 남편이 시댁에만 가면 노느라 바빠 와이프를 챙겨볼 생각도 안 했다. 그냥 좋아서 내내 웃고 즐겼다. 시댁에만 가면 남편은 기가 넘쳤다. 남편은 명절 한 달 전부터 기분이 업되어 있곤 했다. 그냥 맥없이 실실 웃기도 하며 약간 취한 사람처럼 굴었다. 왜 그러지 않았겠는가? 맛있는 것을 양껏 먹으며 밤새 놀아도 되는 명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누구는 명절 증후군에 걸릴 판에 누구는 명절 휴가를 즐기는 아이러니였다.
한 번은 새벽 한두 시경에 출발하여 늦은 밤에야 시댁에 도착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주무시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셨다. 우리가 도착하면,
"오느라 고생 많았다."
딱 한마디만 하셨다. 어머니는 말수가 적은 분이었다. 어머니는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셨다. 휴게소에 들어갈 수도 없었으니 그 밥상이 반가울 만도 했다. 남편은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맛있게 밥을 먹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온 집안에 풍기는 홍어 냄새가 고역이었다. 하여간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에서 유일하게 젓가락이 가는 반찬은 바로 '맛조개 고추 조림'이었다.
"어머님, 이거 맛있네요. 어떻게 만들어요?"라고 내가 여쭈었더니 어머니의 대답은 간단했다.
- 맛 넣고, (맛조개 넣고)
- 장 잔(조금) 넣고, (집 간장 조금 넣고)
- 마늘씨 잔 넣고, (마늘 간 것 좀 넣고)
- 깨 잔 치고 (볶은 깨 좀 뿌리고)
세상 쉬운 요리법이었다. 그런데 맛조개라는 것은 결혼 이후에 처음 들었고 처음으로 봤다. 시어머니가 요리해 놓으신 맛조개 고추 조림은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어머니가 만드셨던 맛조개 고추 조림을 먹어본 지 20년도 지났다. 새삼스럽게 그 반찬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참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어머니가 해주셨던 그 요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레시피도 당연히 없었다. "못 찾겠다, 꾀꼬리!"가 아니라 "못 찾겠다, 레시피!"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말해 주셨던 네 마디를 근거로 하여 스스로 '맛조개 고추 조림'을 해보기로 했다.
요즘은 청양고추 아니면 아삭이 고추뿐이다. 중간 정도로 매운 일반 고추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대신에 꽈리고추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 조림에 넣을 고추는 칼질하지 않고 손으로 반으로 분지른다. 그래야 더 맛있다.
맛조개를 사러 시장에 나가는 대신에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요즘은 특수 포장지가 있어서 택배로 배송받아도 생물이 살아있었다. 바로 '산소 싱싱팩'이란 것이었다. 그 팩에는 "살아있네"라고 적혀있다. 어머니는 "맛조개 좀 넣고"라고 쉬운 듯 말씀하셨지만 맛조개 손질하는 단계가 장난이 아니었다. 인터넷에 맛조개 해감하는 법이 나와 있었다.
맛조개를 제대로 해감하는 일이 관건이다. 쉽게 해감하는 법을 찾고 또 찾아봤다. 일반적으로는 굵은소금으로 문질러 주고 서너 번 씻은 후에 검은 봉지로 씌워 하룻밤 정도 냉장고에 두어야 한단다. 다행히 쉽게 해감하는 법을 알아냈다.
맛조개 해감하는 법이다.
- 볼에 물을 붓고, 굵은소금과 식초를 넣어 잘 섞어 바닷물과 비슷한 농도를 만든다.
- 씻은 맛조개를 물에 잠기도록 넣는다.
- 검은 비닐봉지로 완전히 덮어 빛을 차단한다.
- 약 30분 ~ 1시간 정도 두면 조개가 뻘이나 이물질을 배출한다.
- 스테인리스 숟가락을 함께 담가 두면 해감이 더 잘된다고 한다.
- 해감이 끝난 후에 깨끗한 물에 여러 번 헹궈 남아있는 이물질을 제거한다.
- 45도 물에 식초를 넣어 해감하면 5분 만에 해감된다고 하여 따라 했더니 99.9% 정도 해감됐다.
해감한 조개를 냉동하여 판다면 일이 쉬울 것 같았다. 해감하는 일이 요리하기보다 더 번거로웠다. 그러나 냉동 맛조갯살을 구입한다면 맛조개를 삶았던 진국 육수를 이용하지 못하니 깊은 맛은 없을 터였다.
내가 만들었던 '맛조개 고추 조림' 레시피다. (세상에 하나뿐인 레시피!)
- 물을 자박하게 붓고 뚜껑을 닫는다.
- 센 불에 끓이되 거품이 생기며 넘치려고 할 때 뚜껑을 열고 잘 저어 준다.
- 껍질과 살이 잘 분리될 정도이면 한 솎음 끓인 후에 불을 끈다.
- 맛조개를 까서 알맹이를 꼼꼼하게 여러 번 씻는다.
- 맛조개 삶은 물은 가라앉아 있는 이물질이 올라 오지 않도록 조심해서 따른다.
- 맛조개 삶은 물에 맛조개, 고추 분질러 둔 것, 마늘, 집간장을 넣고 섞는다.
- 자박자박 끓인 후에 참기름을 두르고 볶은깨도 뿌린다.
맛조개 고추 조림을 하룻밤 냉장고에서 숙성하니 더 맛있었다. 그날 다른 반찬을 하나도 꺼내지 않고 그것 하나로만 밥을 먹었다.
야호, 어머니가 해주신 그 맛이었다. 이 정도 맛이라면 남편이 어머님 생각이 나서 훌쩍거릴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그때 그 맛이 나네."라고만 했다. 맛있다, 맛있다, 라며 밥만 맛있게 먹었다. 남편과 어머니 사이에 끈끈했던 정을 알고 있는데 소울 푸드 같은 반찬을 대하면서도 무덤덤한 남편이었다.
시댁은 농번기 때 일을 하다가 한낮에는 모두 아무 데서나 누워 한숨 잔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바로 깨신 어머니는 자식들이 깰까 봐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들로 나가시려 하고, 큰 아들(나의 남편)은 그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곧바로 일어나 어머니를 따라나섰다고 한다. 어머니와 사래 긴 밭을 함께 매며 조곤조곤 얘기했단다. 남편이 초등학교 때 일이라고 하니 참 착한 아들이다. 모자간에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했다.
그런데 환갑, 진갑 다 지나니,
아들(내 남편)은
오래전에 세상 떠난
어머니가 그립지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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