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쉬 쿠키
지인 부부가 튀르키예 일대 여행을 다녀왔다며 선물을 챙겨 왔다. 딜라이트 터키쉬 쿠키였다. 튀르키예 간식 로쿰 젤리도 있었다. 그 젤리는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하는 것이라며 먹는 법도 설명했다. 그 쿠키를 보니 오래전에 큰 은혜를 입었던 얼굴 못 본 천사 생각이 났다.
2016년, 이맘때쯤이었다. 아들과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군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잠시 병문안 가도 될까요?"
2012년, 아들은 학교 캠퍼스에서 자전거 사고로 크게 다쳤다.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도 그 일을 다 알고 있을 정도의 큰 사고였다. 모두가 내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연일 학우들이 찾아오곤 했다. 물론 교수님들도 오셨다. 김군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김군은 가방을 멘 채 슬픈 표정으로 병실에 들어왔다. 그는 가방 속에서 뭔가 꺼냈다.
바로 터키쉬 쿠키였다. 그때까지 그런 걸 본 적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주로 밑반찬, 김치, 커피, 건강식품 등을 챙겨 왔었다. 환자도 환자지만 간호하는 부모가 힘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맘이 담긴 것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잃었던 입맛을 되찾을 수 있었다. 때로는 영양제, 화장품 등을 챙겨 오는 분도 있었다.
"부모님이 여행 다녀오시면서 OO학우 부모님께 전해드리려고 별도로 챙겨 오셨대요."
"아, 그래요. 감사해요."
"사실, 저희 부모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대요. 그래서 지금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학우만 하겠느냐고 하시면서 이걸 잘 전달해 달라고 하셨어요."
김군은 가방 안에서 뭔가 다른 걸 하나 더 주섬주섬 꺼내어 우리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 참, 그리고 이건, 댁에 돌아가셔서 풀어보라고 하셨어요."
신문지로 둘둘 말려있는 것이었다. 스킨과 로션인 듯했다. 딱 그 정도 부피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피곤이 몰려왔다. 병원에서 집으로 나서는 순간마다, 슬슬 긴장이 풀리곤 했다. 김군이 전해 준 쿠키와 신문지에 감싼 것을 내 가방 속에 넣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들의 의식과 인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최중증 환자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지출됐다. 사는 것인지 버티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다가 길바닥에 내 앉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때론 몰려오기도 했다.
무심코 켠 TV에서는 '판타스틱 듀오'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정신이 멍한 상태로 TV를 봤다. 이문세와 '원일중 코스모스'라는 닉네임으로 불린 여중생이 '그녀의 웃음소리뿐'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루를 너의 생각하면서
걷다가 바라본 하늘엔
흰 구름 말이 없이 흐르고
푸르름 변함이 없건만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걸 ('그녀의 웃음소리뿐' 중에서)
우리 부부는 약속이나 한 듯이 볼 위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듯한 나날이었다. 울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었건만 우린 참으며 견뎠다. 그래도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은 속절없이 눈 밖으로 새 나왔다.
매주 70만 원씩 현금으로 주급 간병비를 대는 일은 자식 일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간병비는 물론 병원비까지 합치면 한 사람 월급보다 더 됐다. 물론 수술할 때는 더 큰돈이 들어가기도 했다. 앞으로 삶은 어떻게 될 것이며 아들은 언제쯤 차도가 있을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격이었다. 모든 것이 막막했다.
눈물 닦은 손으로 김군이 전달해 준 신문지 꾸러미를 풀었다. 당연히 스킨, 로션이나 영양제 같은 것이 들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5만 원 권 지폐 뭉치였다. 우리 부부는 할 말을 잃었다. 꿈인 줄 알았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여는 기분이었다. 그만 억눌러 두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가 뭔데? 그분을 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 후원하는 분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김군에게 부모님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감사 인사를 꼭 하고 싶었다. 그런데 답장이 왔다.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그것은 OO 학우에게 'flow' 한 것뿐이랍니다. 소중하게 사용하세요."
김군 부모님이 자신에게 흘러온 것을 그냥 우리 아들에게 흘려보냈을 뿐이라는 말이었다. 'flow(흐르다)'라는 단어가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김군이 전해 준 것으로 두 달 치 병원비와 간병비가 해결됐다. 결국 그분은 자신을 밝히지 않았다. 그냥 얼굴 못 본 천사로 남았다.
우리는 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따뜻한 마음도, 희망도, 사랑도, 돈도... 움켜쥐고 썩힐 게 아니라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그런 걸 배우게 해 준 인생 스승이었다.
아들은 이제 바야흐로 병상 생활 14년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끊임없는 흐름(flow)이 우리에게 방문객처럼 당도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쓰러지지 않고
아들과 함께 살아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81729
https://www.youtube.com/watch?v=Lx61vBPj_iY(요즘 브런치에 탑재하는 유튜브 영상이 모바일에서는 재생되지 않아요 ㅠㅠPC에서는 가능합니다.) 우리가 시청하면서 눈물 흘렸던 환상적인 듀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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