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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May 24. 2022

마라톤을 꼭 뛰어야 맛이 아니다 - 급수대 자원봉사후기

뉴욕마라톤으로 가는길 <자원봉사> RBC 브루클린 하프

뉴욕시티 마라톤 참가권을 얻기 위해 9번의 대회참여와 1번의 자원봉사를 수행하는 9+1 챌린지.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브루클린 하프 마라톤 후기입니다


9+1 챌린지는 9번의 대회참여도 물론 간단치않지만 이 1번의 자원봉사가 결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외로 자원봉사 참가신청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이 짧은 10K 대회 같은 경우에는 서로들 하려고 난리라서 거의 뭐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한다. 


게다가 시간맞춰 가서 달리기만 하고 오면 되는 경기참가와 달리 자원봉사는 다른 봉사자들과 의사소통도 해야하고, 내가 말을 못알아들어서 제대로 자원봉사를 하고 올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여러모로 걱정아닌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런클럽에서 전체메일이 왔다. 이번에 NYRR이 주최하는 브루클린 하프 마라톤에서 우리 런클럽에 급수대를 할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급수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 9+1의 봉사활동 점수 1점을 받는것은 물론, 자원봉사자 20명당 1장씩 2023 뉴욕시티 마라톤 티켓이 우리 클럽에 할당된다고. 

평소 알던 사람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데다, 위치도 우리집에서 가깝고, 자원봉사 점수도 받는데다가 런클럽에 기여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바로 참가신청을 넣었다.



7Km를 지난 지점에 있는 3번 급수대. 프로스펙트 파크 트랙클럽(PPTC)가 전담한 급수대였다. 새벽 4시 반에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한가지 아쉬운점(?) 이 있었다면 자원봉사시간이 다른 대회에 비해 길고 시작시간이 엄청 일렀다는 점. 8시쯤에 시작해 2~3시간이면 끝나는 10K 대회와 달리 하프마라톤은 7시에 시작하고 전체 진행시간도 길어서 자원봉사자는 4시 45분까지 정해진 위치에 집합해야했다. 위치는 가까웠지만 시간이 너무 이르고 조금 무서운 감도 있어서 씨티바이크를 타고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인적이 하나도 없는 길을 자전거로 달리니 뭔가 다른 세상으로 빨려들어갈것만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공원 안에 들어가니 수십명의 경찰관이 대기중이라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NYRR에서 나온 직원 두명과 자원봉사 팀장, 그리고 봉사자들이 한 팀으로 구성된다. 팀장이 이름을 확인하고 체크인 처리를 해주는데 이걸 기준으로 9+1 기록이 들어가니 자기 이름이 맞는지 정확히 확인해야한다. 체크인을 하면 자원봉사자 이름표, 브루클린 하프 마라톤 기념 모자, 그리고 안전을 위해 형광조끼를 나눠준다. 현장에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커피와 에너지바가 그득그득 준비되어 있었고, 직원이 자꾸만 우리에게 먹으라고 권했는데 나중에 주자들이 뛰기 시작하니 우리는 물 마실 시간도 없어서 왜 그렇게 권했는지 이해가 되더라...



보급팀 트럭이 와서 테이블과 물탱크, 컵, 그리고 텐트를 주고간다. 그러면 자원봉사자들은 테이블을 펴고 그 위에 컵을 5cm 간격을 두고 세운 다음 물을 1/3만 채우고 골판지로 덮는다. 다시 컵을 놓고 그것을 3단으로 만든다. 준비가 끝나면 여분의 종이컵과 물탱크를 일정간격으로 배치한 후 한명씩 자원봉사자가 전담으로 붙는다.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7시에 첫 주자가 출발해 우리 급수대를 15분 후에 통과할것이고, 그때부터 컵이 나가는만큼 뒤에서 새로 물을 떠서 채워주라고 했다. 8시 15분이 되면 더이상 컵을 채워넣지 않고 3단을 걷어내고 2단과 1단을 쓰면 된다는 설명을 듣고 준비를 마무리했다. NYRR은 큰 대회를 주최하는 단체인만큼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도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자들이 집기 쉽도록 5cm 간격을 띄워 배치한 컵. 물은 일부러 1/3만 담는다. 



참고로 이 브루클린 하프 마라톤은 NYRR이 주최하는 5보로우 시리즈 중 하나로 꽤 중요한 대회이고 참가자도 많았다. 이날은 3만명이 달렸다고 한다. 뉴욕시를 구성하는 5개의 구에서 각각 열리는 5보로우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것은 뭐니뭐니해도 NYC하프 (브루클린에서 출발해서 맨하탄에서 피니시), 그리고 프로스펙트 파크에서 출발해 코니아일랜드 비치에서 피니시하는 이 브루클린하프가 쌍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스테튼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하프마라톤이 있고, 퀸즈는 10K, 브롱스는 10마일 대회가 열려서 한 해에 이 다섯 경기를 모두 완주하면 NYRR에서 기념품을 보내준다고 하니 NYRR은 정말 덕잘알이다 ㅠ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NYRR이 주최하는 경기의 꽃 중의 꽃! NYC 마라톤(풀코스만 있는 대회)은 이 5개의 보로우를 모두 다 통과하도록 코스가 짜여져있으니 이 가슴이 웅장해지는 서사 무엇!!!!!



7시가 지나고 급수대 자원봉사자들이 피쳐를 고쳐쥐고 긴장하며 기다리니 가장 먼저 핸드싸이클 주자가 왔다. 다리로 달릴 수 없는 주자들이 손으로 돌리는 자전거를 타고 참가하는데 사실 나는 핸드싸이클 참가자들을 이날 처음으로 봤다. 왜냐하면 핸드싸이클이 가장 먼저 출발하고 속도도 빠른데 나는 속도가 느린 주자라서 늘 뒷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내가 주자로 참가할때는 내 주변에서 뛰는 사람들밖에 못 봤지만, 이렇게 자원봉사를 해보니 맨 앞에서 달리는 주자부터 맨 마지막까지 모든 사람을 다 볼 수 있다는 점 역시 이번 자원봉사를 더욱 의미깊게 했다. 남녀노소가 다 있었고, 흑인 백인 아시아인 할것없이 다 있었고, 눈이 불편하신 주자분들과 함께 뛰는 가이드 러너들, 각 페이스별 페이스메이커들.... 그 중에서도 작년에 처음으로 뉴욕시티 마라톤을 완주한 60대 여자분(우리 런클럽 멤버)이 페이스 메이커로 참가해 다른 주자들을 격려하며 달리는 모습, 속도가 느리다고 주눅 들 필요 없이 누구나 경기를 즐기고 너나할것없이 응원하는 모습. 어느 하나 가슴 뭉클하지 않은것이 없었다.

결과는 한순간이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가 너무나도 길고 험한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바뀐 나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NYRR직원이 말한대로 7시 15분이 지나니 자욱한 안개 사이로 경찰 오토바이 두대가 쌍라이트를 켜고 달려왔다. 그 뒤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고, 커다란 디지털 시계가 달린 특수차가 지나간 다음, 형광조끼를 입은 바이크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첫번째 주자가 안개를 뚫고 나타났다! 그 모습은 마치 드라마 도깨비의 공유 달리기 버전이었다. 그렇게 소름돋는 등장을 한 브루클린 하프 도깨비는 이날 최종 우승을 한 멕시코 주자였다. 키가 작고 체구가 아담했는데 달려오는 모습만 봐도 보는사람까지 온몸에 힘이 솟아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첫번째 주자가 지나가고 잠시 후 선두그룹이 오고 그때부터 정말 전쟁이 시작되었다. 속도가 빠른 주자들이라 컵을 많이 쓰러트리기도 했고, 급수대에서 물을 받아서 단순히 마시기만 하는 저렙 러너인 나같은사람과는 다르게 고렙들은 TV에서 보던것처럼 머리에도 뿌리고 몸에도 뿌리고 아주 다양하게 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컵이 줄어들었다. 



 쓰러진 컵에서 흘러나온 물이 테이블을 따라 쏟아지면서 바지와 신발이 다 젖었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물을 채워 주자들이 집기 쉽도록 테이블 앞쪽으로 놓아주었다. 어지간히 허둥지둥 하느라 아는사람이 지나가도 응원도 못해줄 정도였지만 이것도 하다보니 금방 요령이 붙었다. 몇개의 선두그룹이 지나간 후 자원봉사자들이 컵을 손에 손에 들기 시작했다. 그냥 테이블에 두고 주자들이 쓰러트리게 하는것보다 손으로 건네주는게 효율적이라는걸 우리가 터득한 것이다 ㅋㅋ



그리고 이날 물을 '주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역으로 내가 달릴때 물을 잘 '받는' 방법도 터득했다. 물을 들고 급수대에 서있으면 저쪽에서 달려오는 주자 중에 누군가가 나랑 아이컨택을 한다. 손을 번쩍 드는 사람도 있고 개중에는 손가락으로 2개를 표시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얼른 나머지 손도 컵을 들어 2컵을 준비해줘야한다. 그리고 그 주자가 나에게 가까이 오면 그 사람이 달리는 속도에 맞춰 살짝 손도 움직여주면 더 성공적으로 전달할수 있다. 그 짧은 와중에 고맙다는 말까지 하고 지나가는 주자들이 있어서 나도 지지않고 화이팅을 외쳤다.



목이 쉬도록 응원을 하고 어깨가 뻐근하도록 물컵을 건네주고, 주자들도 봉사자들도 흥분의 도가니였다. 나는 딱히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없어서 응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몰랐는데 이날 나는 긍정적인 훌리건(;;)이 따로 없었다. 내 테이블에서 물을 집는 모든 주자들에게 큰소리로 응원을 건넸고, 내가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이름도 외쳤다. 지난달에 내가 하프마라톤을 완주할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큰 응원을 보냈고, 신기하게도 응원을 하면 할수록 내가 힘이 났다. 



목이 칼칼하게 쉴때 쯤  맨 마지막 주자가 지나갔다. 맨 마지막 주자 뒤에는 바이크 가이드가 따라오고, 엠뷸런스와 스쿨버스 2대가 천천히 뒤따랐다. 그 다음 보급팀 트럭이 오기 때문에 우리는 물탱크와 테이블을 접어 트럭에 실려 보내고 바닥 청소도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오는 청소차에 쓰레기를 실어 보내고 자원봉사자 해산. 자욱한 안개를 뚫고 깜깜한 밤을 달려와 3만명의 러너들에게 물컵을 들려보낸 일이며 목청이 터져라 응원했던 일이 잠시 꿈이었나 싶을 만큼, 무지하게 맑게 갠 엄청나게 더운 아침 10시였다.

 



경기를 완주하면 받는 메달. 만큼이나 값졌던 나의 첫 자원봉사자 명찰


9+1 챌린지의 +1 자원봉사는 이걸로 완료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또 자원봉사를 하고싶을만큼 값지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마라톤 대회를 뛸때는 뛰는것 나름의 매력이, 그리고 이렇게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 참여하는 나름의 매력이 철철 넘쳤다. 뛰는것만 재미있는줄 알았더니 자원봉사 마저도 재미있는 마라톤.


달리기의 매력에서 헤어나올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9+1의 +1에 초록불이 켜지고, 6개의 대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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