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아베 히로시, 노부오카 료스케 지음. 정영희 옮김
(2022년에 쓴 글)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탈서울을 꿈꿨지만 신혼 초, 계획하지 않은 생명이 찾아왔다. 방방곡곡 유랑을 꿈꾸던 우리는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서울에 눌러 앉게 되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늘 귀농, 귀촌, 슬로라이프 같은 먼 데에 가 있었다. 그런 삶은 한 10년 뒤의 일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첫째의 가정보육과 집콕생활이 이어졌다. 동네의 모든 놀이터는 폐쇄되었고, 서울의 인구밀도를 생각했을 때 키즈카페든 백화점이든 감염의 염려가 매우 컸기에 우리는 갈 곳을 잃었다. 코로나 초반에는 아이가 마스크에 적응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잠시 내려갔던 시골 엄마아빠 집 작은 텃밭에서 자연을 누리는 아이를 보았다. 갈 곳 잃은 서울에서는 온종일 눈이 퀭~해지도록 넷플릭스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자연 속에서 아이는 참 밝고, 활기차고, 즐거워보였다.
'그래, 아무래도 서울은 아니야'
조금은 즉흥적인 결정으로 서울에서 김천으로 이주했다. 일단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고픈 생각 하나로 김천이라는, 인구소멸위기에 처한 '도시'에 왔다. 서울을 떠나 찾아온 곳이 시골이 아닌 도시라는 사실의 아이러니.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일본 도쿄의 안정된 대기업을 떠나 외딴섬 '아마'로 찾아간 청년들이다.
아마라는 작은 섬은 사람들이 자꾸만 떠나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 재정난 등을 겪고 있었다. 아베와 노부오카는 ‘지속가능한 삶’의 방점을 찍고, 개인 차원이 아닌 구성원 전체의 행복을 견인하기 위해 ‘아마’라는 이 작은 섬에 들어갔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도전과 실험을 거듭하였고, 그 곳에서 그들은 주식회사 메구리노와를 설립했다.
일자리 창출까지 해낸 저 청년들의 패기와는 달리, 나는 당장 우리 식구 밥벌이가 문제였다. 서울형 경력단절여성인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공단 중심으로 직종이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카페 알바를 전전하다 우연찮은 기회에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곳에 취업을 했다.
출퇴근길 버스에서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를 읽으면서 유난히 나의 김천 생활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지역을 살리겠다’는 굳은 의지는 내게 없었다. 그저 서울 살이가 너무 힘들고 지쳐 도피했을 뿐이다.
귀농이나 귀촌이 실패로 돌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지역 사회와 융합하지 못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도시에서 가져온 생각으로 시골을 변화시키겠다는 시도는 지역 사회 입장에서는 악몽과도 같다. p. 5
이 책에 따르면 시골에는 시골만의 언어와 법칙이 분명히 존재한다. 평생 도시에서 살다 들어온 사람이 시골의 ‘문맥’을 파악하려면 자신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까지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김천에 시골이 아닌 번화한 '시내'를 주거지로 택한 이유도 있다. 당장 귀'촌' 을 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귀촌이라는 낭만적인 꿈을 꾸고 시골에 들어갔지만 마을사람들과의 소통에서 큰 어려움을 겪어온 청년들의 사례를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베와 노부오카는 철저히 시골 초년생으로 섬 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이 섬에 정착하고 '아마'라는 섬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었던 건, 거창한 프로젝트의 성공이 아닌 원주민들을 존중하는 태도에 있다.
그들은 섬사람을 존중했고 섬의 말에 귀 기울였다. 섬의 시간을 이해했고,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겸손했다. 섬의 어른들에게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책은 도시 이주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지구의 미래를 시골, 즉 지역에서 찾고자 하는 젊은디르의 좌충우돌 성장 이야기다.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 문제를 떠안은 섬 '아마'와 인구소멸의 위기에 처한 김천은 어떤 부분에서 닮았다.
여기 김천에서도 가치있는 일들을 재미있게 꾸려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나 살기 바빠서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천천히 다가온다. 신도시 개발에 밀려나는 구도심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청년들이 있고, 예술을 매개로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위기'라는 대 인류의 문제에 심각성을 느끼고 여기, 김천에서부터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기 위해 '김천을 바꾸어쓰'라는 이름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기후위기 문제를 알리려 모이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뭘 해보려고 여기에 온 건 아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여기서 김천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사는 이곳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서울을 떠나고 싶어도 지역에 가면 당장 밥벌이 문제부터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지역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어쩌면 더 큰 비전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당연히 어렵고 고난이 따르는 이 좁은 길로 우리를 초대한다.
용기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도 더 용기를 내어보고 싶다. 일단, 극 내향인인 나는 사람 만나는 것부터 두려워하지 말아야겠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지역의 일은 무엇이 있을까?
‘이 섬에서 일어난 작은 일들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거다’라고 담담히 고백하는 아베와 노부오카처럼, 여기서 지속가능하고 대안적인 일과 삶의 새로운 방식을 이 지역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과 만들어간다면? 생각만 해도 두근거린다. 부디 실행력도 받쳐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