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치료 6개월, 중간 점검
병원을 옮긴 후 6개월 되는 날, 처음 병원에 방문했을 때 했던 3가지 검사를 다시 했다. 우울과 불안 척도를 보기 위한 검사다. 의사는 불안척도는 아주 조금 줄었지만 우울척도는 그대로라고 했다. 사실 지금 상태라면 약을 더 늘려도 되는 상황인데 항우울제만 다시 조금 늘리고 한달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사실 항우울제를 반으로 줄인 후 나는 감정을 느낄만한 상황에서 그에 합당한 감정을 느끼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짜증이나 분노도 이전보다 줄었다. 물론 처지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기분때문이라기보다는 체력이 달려서 그런 것 같았다.
그 사이 둘째를 낳고 처음으로 온 가족이 여름 휴가를 다녀왔었다. 묵었던 곳이 복층 펜션이어서 계단에서 아이가 다칠까봐 2박 3일 내내 노심초사하며 계단 입구를 막아놓았다. 조금은 병적으로. 또 당시 전국적인 폭우로 침수된 지역들, 피해자들의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철컹 내려앉고 심계항진이 잦았다. 퇴근길에는 멀더라도 밝은 조명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습관도 여전했다.
악몽의 횟수는 많이 줄어서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꿨다. 기억나는 꿈은 내가 일곱살 때부터 20년간 엄마가 운영해왔던 꽃집이 꿈에 나왔는데, 불꺼진 꽃집에 반려견 장군이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불쌍한 마음에 자물쇠를 풀고 들어가려는데 문이 이미 스르륵 열렸고 그 순간 검은 옷을 입은 남성에게 끌려들어가다가 놀라서 깼다. 불륜을 목격하거나 저지르는 꿈도 꾸고, 예전 남자친구가 등장하는 꿈도 꿨다. 주로 과거의 사건들이 꿈으로 자주 등장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꿈들이 대부분이었다.
의사는 내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낮시간 동안에 다 처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이 밤에 '꿈'이라는 소화공장에서 소화가 되어야 하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아 공장이 계속 가동되어 과부화된 상태라는 것. 자기 전에 밥을 많이 먹으면 자는 동안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되서 깨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너무 많이 축적되어 잘 처리되지 않은 상태로 있으면 꿈 공장에서 소화불량 상태가 되어 깨게 된다고 설명했다.
의사는 내가 육아부담과 기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이 동시에 큰 시기이기 때문에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예기불안에 자꾸 해결행동을 반복하다보면 불안은 더 커지고 처리되지 않는 생각들도 많아진다며, '위험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보다는 '위험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위험이라면 그 위험에 대해서는 미리 예방하는 행동을 멈추고 지켜보라고. 어렵겠지만 이번 한달 동안 시도해보라고.
약 한달치를 처방받고 나왔다. 동그란 항우울제가 증량이 되어 길쭉한 모양의 약으로 바뀌었다. 제자리 걸음인 것 같지만 그래도 나아가는 길이겠지. 아직은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