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날

아침 과 저녁

by 민감성





9월이 되고 아침저녁으로 그림자가 길어졌다. 오늘은 드디어 싱그러운 아침을 맞이했다. 여름 내내 무더워 다른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을 욕할지더라도, “더우니 여름이지 안 더우면 그게 여름이냐"라며 나름 더웠던 여름을 대변했는데 오늘이 되어서야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모습에 이제 안녕을 고할 때라고 느껴졌다.


시원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니 들뜬 잠이 깨고, 저녁 내내 무거웠던 머리가 말끔해지는 아침의 공기였다. 아이들은 들뜬 모습으로 등교를 하고, 어른들은 서둘러 직장으로 가기 전 차와 차사이 좁은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세상의 짐을 짊어진 듯 어두운 모습의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항상 밝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학교에 간다.


아침의 개산책은 서둘기 마찬가지 제 갈 길만 간다. 그것도 급하게 간다. 그도 그럴 것이 밤새 참아온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 좋은 곳을 찾는 것 같다. 좋은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서 한 바퀴 돈 뒤 시원하고 깔끔하게 볼 일을 본다. 볼 일을 보고 난 녀석들은 기분이 좋은 듯 아까와는 다른 상쾌한 발걸음으로 산책을 이어간다.


그러고 보니 매일 아침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오늘도 아플까 하는 것이다. 다리의 통증이 제법 나았는지 걷는데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이 정도라면 이번 달 안으로 완전히 회복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쉬는 것도 있지만 발과 발바닥 그리고 종아리를 지속적으로 마사지해주니 통증이 많이 줄었다. 아마 그동안 많이 뭉친 근육들이 경직된 것이 축적되어 부상을 일으킨 건 아닌지 생각된다.


우습게도 이미 머릿속에선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온몸에 땀으로 가득하고, 거친 긴호흡을 하며 스톱워치를 누르며 마무리한다. 그와 동시에 “오늘도 무사히 잘 달렸구나” 하는 내 모습에 만족한다. 곧 그리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름에서 슬슬 가을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 내 마음은 이미 가을에 와닿았다. 가을은 달리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마라톤에 나가 보겠다고 사놓은 신발이 계속 쌓여만 간다. 저 신발을 다 소비하고 마무리해야 하는데 아무튼 내 속도대로 살아가련다.


휴식과 재활운동을 병행으로 점점 늘어만 가는 몸과는 달리, 마음만은 가벼워지는 하루이다. 저녁이면 영어도 공부하러 간다. 같은 레벨의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니 두렵지도 않고 부끄럽지도 않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듣고 각자 달리 살아온 인생만큼 다르다. 생각지 못한 답들은 내 글의 주요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싱그러운 아침은 미래의 것을 생각나게 하고, 싱그런 저녁은 옛날의 것을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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