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몰레(Mole)
지난 1주일간 남미 사막 및 40시간 넘는 국경을 넘는 여정으로 지난주 브런치 연재 일정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타코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음식이 있다. 몰레(Mole)인데, 견과류, 말린 과일, 고추 등을 포함해 약 10~20가지 재료 및 초콜릿을 갈아서 만든 소스로, 보통 몰레를 고기류나 밥 등에 끼얹어 먹는다. 닭고기에 몰레 소스를 끼얹어 먹으면 몰레 꼰 뽀요(몰레와 닭고기)가 되고, 고기류를 넣고 돌돌 만 롤 또르띠야에 끼얹으면 엔몰라다스(enmoladas)라고 불린다.
흔히 멕시코의 '커리'로도 표현하며 상당히 리치한 소스인데 초콜릿이 들어갔다는 게 특징인데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 멕시코 편>에서 백종원이 몰레 꼰 뽀요를 한 입 먹고 "학생들에게 커리에 초콜릿 넣는 장난질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맛이 난다"며 자신은 여전히 이 오묘한 몰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음식이 다 입맛에 맞을 순 없는 노릇이라며. 개인적으론 커리보단 우리나라의 짜장 소스에 가깝다는 의견이다.
몰레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몰레의 기원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존재한다.
가장 유력한 설은 수녀원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멕시코 시티에서 그리 멀지 않은 푸에블라(Puebla)의 한 수녀원은 갑작스러운 대주교(archbishop) 방문에 패닉에 빠져 대접할 거리를 찾다가 있는 재료들을 이것저것 넣어서 즉흥적으로 소스를 만들어냈고 이를 구운 칠면조에 끼얹어 대접했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는 훨씬 먼 옛날인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시대로 건너간다. 아즈텍 왕국 제9대 수장인 모크테수마( Moctezuma)가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자인 *에르난도 코르테스(Don Hernàndo Cortés)가 좋은 사람인 줄 알고 대접한 요리가 몰레였다고 한다.
에르난도 코르테스 : 페르난도 코르테스라고도 불리며, 아즈텍 왕국을 무너뜨리며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화의 스타트를 끊었다.
두 개 모두 흥미로운 기원이지만 문서화된 기록은 없어 여전히 '설'로만 남아 있다. 최초 몰레 레시피 기록은 1810년 독립 전쟁 이후라고 한다.
푸에블라의 몰레 - 몰레 포블라노
맛있는 몰레를 먹기 위해선 두 도시를 가야 한다. 첫 도시는 위의 기원에서도 알려진 '푸에블라(Puebla)'란 도시이고 두 번째 도시는 멕시코 사람들이 먹방 여행 성지로 꼽는 와하까(Oaxaca)이다.
푸에블라의 몰레는 '몰레 포블라노(Mole Poblano)'라고 불린다. 다크 브라운 색상을 띠는 게 특징이고 초콜릿의 맛이 강하다. 내가 푸에블라에 간다고 하니, 멕시코 시티에 사는 친구가 푸에블라 몰레가 먹고 싶다며 놀러 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사람이 조금 멀리 떨어진 경기도에 밥 먹으러 가는 느낌이다)
사실 푸에블라는 몰레 말고도 여러 가지 미식으로도 상당히 유명한데, 친구는 노래를 부르던 몰레 포블라노(Mole Poblano)를 주문했고, 나는 몰레 포블라노만큼 푸에블라에서 유명한 미식 칠레 엔 노가다(Chiles en nogada)를 주문했다.
칠레 엔 노가다는 큰 고추 속을 고기 등으로 채우고 땅콩, 다양한 과일 등을 넣어 만든 크리미한 화이트 소스를 끼얹은 음식이다. 이날 친구와 내가 방문했던 식당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첫 칠레 엔 노가다는 조금 많이 달았다. 중국의 딴딴멘처럼 땅콩을 많이 쓴 소스라서 어느 정도 달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설탕을 넣어 만든 단 맛이 조금 더 강했다.
친구의 몰레 포블라노(Mole Poblano)를 살짝 뺏어 먹었는데 상당히 걸쭉하고 단 맛이 있는 소스였는데 캐러멜 소스를 잔뜩 넣은 '짜장'소스에 더 가까웠다. 닭고기를 거의 파묻다 시피할 정도로 몰레가 접시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확실히 소스 자체가 무거워서 혼자서 다 먹기엔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멕시코 사람들이 종종 몰레는 워낙 많은 재료가 들어가고 무겁기 때문에 아무 데서나 먹으면 배탈 나거나 위에 부담이 갈 수 있다고 하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와하까의 몰레 - 7가지 색상의 몰레
와하까(Oaxaca)는 멕시코의 미식 도시이다. 멕시코 사람들이 흔히 '먹으러 간다'하는 곳이 바로 와하까이며 이곳에선 멕시코 다른 지역에선 종종 보기 힘든 로컬 음식부터 곤충.. 을 포함한 다양한 재료를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와하까의 몰레는 7가지 색상으로 다채롭다는 것이 특징이다. 몰레 네그로(Mole negro : 검은 몰레) , 몰레 로호(rojo : 빨간 몰레), 베르데(verde: 그린), 아마리요(amarillo: 노란색), 콜로라도(Colorado: 오렌지 브라운 컬러), 에스토파도(Estofado), 치칠로(chichilo: 어두운 녹색)이다. 물론, 집집마다 몰레에 변형을 줘 각각 소스를 부르는 이름이 조금 다르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몰레 네그로인데 앞서 언급한 몰레 포블라노처럼 가장 짜장 소스에 가깝다.
와하까(Oaxaca)에선 식당마다 몰레 네그로나 몰레 베르데 등 인기가 많은 소스 위주로 음식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왕이면 이 7가지 몰레를 다 먹고 싶어 정보를 찾다가 와하까 구도심 외곽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7가지 몰레 소스 모두 시식해 보고 마음에 드는 몰레를 골라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소스 시식하는 데는 별도 비용이 부과되지 않는다.
흔히 마트 시식 코너처럼 정말 눈곱만큼 줄 거라 생각했는데 주먹만 한 소스 그릇에 7가지 소스를 가득 채워준다. 여기에 또르띠야까지 함께 나오는데 또르띠야를 조금씩 찢어 소스를 찍어 먹으며 취향에 맞는 맛을 찾는다. 검은 색상, 갈색을 띠는 몰레들과 달리 녹색과 노란색을 띠는 몰레는 어두운 색상보단 소스가 살짝 가벼워서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맛으로 우리가 익숙한 카레 맛에 가깝다.
7가지 소스를 계속 맛보면서 마음에 드는 맛 1개를 고르는 것은 항상 힘들다. 사실 너무 춘장 맛이 나서 취향에 안 맞았던 소스 1개 빼곤 다 마음에 들었는데 고민하다가 그래도 가장 클래식한 몰레 네그로(Mole negro)를 끼얹은 엔몰라다(Enmolada)를 제대로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엔몰라다를 주문했다.
또르띠야에 치즈와 고기류를 넣고 돌돌 말아 여기에 몰레 네그로 소스를 가득 끼얹고 그 위에 와하까 치즈를 아낌없이 뿌려져서 나왔다. 와하까는 치즈 또한 유명한데, 부드럽고 모짜렐라 치즈와 식감이 비슷하다. 흔히 또르띠야에 와하까 치즈만 잔뜩 얹어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먹기도 한다.
엔몰라다는 맛있었다. 소스 시식할 땐 리치함이 강해 살짝 목을 긁는 느낌이 있었는데, 음식과 결합하니 부드럽게 넘어갔다. 초콜릿의 아주 미묘한 달콤함과 치즈의 짠맛, 치즈와 고기로 속을 채운 롤 또르띠야는 의외로 밸런스가 잘 맞았고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한국의 단짠 조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백종원은 세 번 먹어도 이해 못 할 맛이라고 했지만, 와하까에서 7 몰레 소스를 다양하게 맛본다면 그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