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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가람 Aug 17. 2018

아타카마 사막에서 영어 사용기

일시불로 질러버린 세계여행 @칠레

밤이 찾아오면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는 더욱 아름답다. 거리 곳곳에서 공연이 열렸다. 여행자 대부분은 우유니에서 자신이 원하는 장관을 보고 감격하여 아타카마로 내려왔을 테다. 나는 기타를 치며 놀고 있는젊은이들을 먼발치에서 구경했다. 최악의 경우 그들이 걸어와서 함께 춤추길 권할 수 있으니, 절대 그럴 일이 없도록 숨어서 말이다. 관객 사이에서 검은 머리가 눈에 띄었다. 아무리 보아도 한국인이다. 


모두가 따라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모르는지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외국인들의 흥에 겨운 춤이 격해질수록 그가 홀로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그 외로워 보이는 모습에 감정 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그를 부를 뻔했다. 그러나 그만두었다. 나 역시 저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아는 척 하기를 원치 않았다. 세종대왕께서 세계를 정복했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사하라가 내게 마냥 가장 큰 사막이었다면 아타카마는 가장 아름다운 사막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라는 명성답게 사방은 황갈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황색을 이토록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이 또 있을까. 사막을 설명하던 가이드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한국 가수가 여기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고 흥분한다. 나도 함께 흥분하여 누구냐고 물어보니 G……. G만 반복하는 것이다. 


“혹시 g.o.d?” 


새로 변하는 문화예술에 젬병인 내가 유일하게 떠오른 건 중학교 시절 우상의 이름이었다. 가이드도 손뼉을 치며 “맞아, 그들이었어!” 대꾸했지만 서울에 돌아가서 검색해보니 서태지였다. 물론 그 잘못된 정보가 감상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정작 감상을 방해한 것은 노르웨이에서 온 아저씨와의 대화였다. 달의 표면에 임시 착륙한 것처럼 느껴지는 계곡의 풍경에 그도 감격하는 듯했다.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아시아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나에게 던진 질문들은 다음과 같았다.


“너희는 보통 집 몇 채를 소유하고 있지?”


“고속도로 제한속도는 몇이지?”


“한국의 GDP는 얼마지? 유럽과 비교했을 때.”


“내가 일본 주식을 샀는데 말이야, 전망을 어떻게 생각해?”


.

.

.

.

.

.




저 질문들은 한 치의 과장을 보태지 않고 모두 그가 던진 질문들이었다. 함구하자니 마치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것 같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대답을 하기 시작하는데 십 년 넘게 공교육과 사교육의 도움을 받으며 영어를 공부한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것인지……. 수준 낮은 단어 사용에 스스로가 한심했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에서 나 홀로 진땀을 흘리는 꼴이라니. 




사막 한복판에서 영어 면접을 보는 듯한
이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면접관이 점점 실망하는 것 같아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일몰 시간이 되어 우리 모두 사막의 꼭대기로 향했다. 해가 지며 황토색 대지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붉은 땅을 비추면서 달이 뜨는데 지금까지 봤던 달 중에서 가장 또렷하고 맑았다. 달빛이 비추는 모래의 색은 또 달라져 있었다. 감동도 잠시, 멀리서 나의 면접관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막의 모래가 고왔다. 샌들로 들어온 모래를 발가락으로 비비적거리며 다음 질문은 반드시 잘 대답해보겠다고 다짐한다. 한국 문화의 특수성과 세계 문화의 보편성을 아우르며 그가 만족할 수 있는 답을 하리라. 그의 질문이 이어졌다.


“북한이 핵 실험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너희 나라가 북한에게 하는 원조를 어떻게 생각하니?”

















다음 주 금요일에 또 만나요. : ) 


[8/24 예고편] 

#08 펭귄 섬이 던진 질문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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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도 괜찮을까? by 황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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