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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가람 Aug 24. 2018

펭귄 섬이 던진 질문

일시불로 질러버린 세계여행 @칠레

카지노에서 돈을 땄다. 초심자의 행운이 따랐다. 한화로 치면 이만 원을 들고 입장했는데 오만 원이 되어 있었다. 이 돈으로 일명 ‘펭귄 섬’에 가기로 했다. 푼타아레나스에서 두 시간 배를 타고 들어 가면 막달레나섬(isla Magdalena)이 나온다. 이 섬에 펭귄들이 살고 있다. 수십만 마리 마젤란 펭귄이 구월부터 육 개월간 짝짓기를 위해 이 섬을 찾는다고 한다. 암컷들이 먼저 와서 땅굴을 파고 보금자리를 만들어 떠난다. 


섬에는 약 십사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섬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객에게는 한 시간 정도의 짧은 방문만 허용된다. 막달레나섬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펭귄 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쾌속정이 도착하면 
펭귄들이 마중을 나오듯이 사람을 반긴다. 





펭귄이 먹이를 구하러 다이빙하는 모습, 짝짓기를 하는 모습, 새끼들의 모습 모두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펭귄들이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펭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은 펭귄의 부성, 모성에 깜짝 놀란다. 새끼를 기르는 데 전력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실제로 펭귄 섬의 펭귄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쉼도 없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 모습이 마치 힘겹게 자녀를 기르는 부부를 보는 듯하다. 나도 저 펭귄들처럼 기꺼이 몸을 던지는 부모가 되는 날이 올까? 미숙함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욕심으로 아이에게 버거운 짐을 지워줄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방임하다가는 아이를 잘못된 길로 이끌 수도 있다. 나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우리의 관계는 그대로일 수 있을까. 꼬리를 무는 이런 저런 걱정들을 뒤로하고 아이를 가지는 날이 정말 오기는 할까? 결혼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가족계획을 물어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 험난한 세상에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자라서 이렇게 물어볼까봐.


 “엄마, 왜 나를 낳았어?”


또 그 물음에 대답을 못할까봐 겁이 난다. 아는 선배는 아이를 낳고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또 어떤 선배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제 삶을 긍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이들도 아이는 삶의 행복, 원동력 등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그런 대답들은 나의 근원적인 물음에 해답을 주진 못한다. 그런 식으로 대답을 해도 아이가 “그러니까, 그건 엄마가 나를 낳고 나서 느낀 거고. 내가 궁금한 건 왜 나를 낳았냐니까?” 하고 따질 것 같았다.
 


 




법륜 스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삶의 낙이 없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법륜 스님의 대답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산 위의 다람쥐가 오늘 하루 도토리를 구하러 나가면서 왜 살까 생각할까요? 우리는 모두 다람쥐 같은 존재들이에요. 다람쥐처럼 삶을 사세요.”


펭귄들을 보며 그 대답이 떠올랐다. 펭귄에게 너 왜 알을 낳았니? 왜 차가운 물에 몸을 던지니? 물어보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들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도 못한 채 기꺼이 생을 바친다. 펭귄들이 그 섬에서 살아가는 거대한 흐름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저런 의문을 품는 자체가 바보같이 보였다. 그냥 낳았고, 낳았으니까 키우고 희생하고 있던 것이다. 아이를 낳은 사람들 역시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내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냐고? 모르겠다 여전히.











다음 주 금요일에 또 만나요. : ) 


[8/31 예고편] 

#09 다 이루었도다, 우유니에서 @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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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도 괜찮을까? by 황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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