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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r 20. 2024

 아침의  뜰

새벽에 눈을 떴다. 전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면  시간만큼 일찍 일어나게  된다.  수면총량의 법칙이랄, 다음날 사용 할 에너지가 어느 정도 충전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창밖에서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이른 아침 그들의 부지런함은  잠을 깨고도 침대에서 오래 뭉기적 거리는 나의 모습을 게으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은은한 향기가 거실에  가득하다. 요즘 꽃망울을 터뜨린 긴기아늄 화분을 식탁에 올려두었더니 밤새 뿜어낸 향기가 이처럼  매혹적이다.


영상의 날씨이기는 하나 아직도 새벽  공기는 싸하다. 두꺼운 숄로 목을 감싸고 뜰로 나왔다.


 계절이면 나는 새해 첫날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촉촉한 땅을 뚫고 탄생하는 여린  새싹이나 죽은듯한 가지에서 돋는 어린잎들을 바라볼 때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시작됨을 느낀다. 


머위와 앵초의 싹이 돋아나고 작년에 동생이 캐어 준 산제비꽃도 싹을 틔웠다. 물이 오른  벚나무 가지에 새눈이 텄다. 새들은  이 눈들을 쪼아 먹기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봄날 꽃이 피기 전까지  우리 집 벚나무는 새들의 맛집이 된다.


수선화 뿌리를 심어둔 곳에 초록이 군락을 이루었다. 작년보다 더 넓게 터를 잡은 것 같다.   노란 꽃몽우리가 맺히고 수선화 꽃이 활짝 피  뜰 한 귀퉁이 음지에는 등불을 켜둔 것처럼 환해질 것이다.


 단 곳곳에 새로 움트는 싹들이 눈에 띈다. 에  꽃을 피웠던 그 자리에서 싹이 움트기도 하지만  전혀 낯선 싹이  돋아나기도 한다. 작년가을 눈에 띄는 대로 꽃씨를 뿌려 두었기에 새로 움튼 싹 들은 꽃을 보고 나서야 이름을 알 수 있는  식구들이다. 


새싹들은 벌거벗은 아이와 같다. 어린싹에게 곁에 있는 낙엽을 긁어모아 이불을 덮어준다. 과잉보호, 아님 괜한 오지랖일까? 삼월의  바람은 매서움이 아직 남아 있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작년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꽃들이 냉해를 입은 걸 생각하면 그저 어떤 환경에도 잘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다


작년에  나와 남편은 직접 장미 아치를 만들었다. 목재상에서 방부목을 사서 싣고 와 눈금을 재고 톱질을 하여 만들어놓은 아치에 장미넝쿨을 올려놓고 잘 자라주기를 바랐다. 오늘 아침 장미줄기에 돋은 잎을 보며 완성된 작품을 보는 듯 뿌듯하였다. 이제 오월이면 아치를 타고 오른 장미줄기에 꽃들이 열리게 될 것이다.


여린 새싹들이 땅을 뚫고 올라온 모습을 바라보면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보다  또는 아름다운 시를 읽었을 때보다도 더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른 아침  뜰에서 나의 사색은 점점 깊어져 간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온다.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나는 더 이상 뜰의 꽃들과 지금처럼 오래 안부를 나눌 수가 없게 된다.


딱 지금이 좋다. 어리고 순한 잎들 하나하나에게 눈인사를 하며 올 한 해도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이 시간,  삼월의 아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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