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Mar 27. 2024

나이가 들수록 친정이 좋다

친정에 간다. 봄날에 친정을 간다. 시집간 딸이 있는 나도 친정엄마가 된 지 오래지만 나이가 들수록 친정이 좋다. 친정... 참 따뜻한 곳이다.


이번엔 남편과 함께가 아닌 서울에 사는 여동생과 동행했다. 자매끼리 재미있게 다녀오라며 남편은  흔쾌히 배웅을 해 주었다.


기차를 탈까? 고속버스를 탈까? 하다가 아무래도 집에서 가까운 용산역에서 KTX를 타기로 했다. 대합실 가득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 틈에서  오랜만에 느껴보 외로운 자유, 여행자의 기쁨이다.


아직 동생은 만나기로 한 역에 도착하지 않았다. 기차여행의 즐거움 중에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간식을 먹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코시즌 중에 잠시 금지되었지만 지금은 허용이 되었다. 나는 커피와 함께 금방 구워놓은 호두과자를 샀다. 노란 종이봉지 안에서 호두과자의 구수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온다.


토요일 아침 전라선 KTX  열차 안은 빈자리가 없이 승객으로 가득 차 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봄빛짙어진다. 넓은 들판이 초록으로 펼쳐져 있다. 동생은 마늘밭이라 하고 나는 보리밭일 거라고 지만 보리밭이든 마늘밭이든 상관이 없다. 우린 이미 싱그러운 봄의

정취를 느끼고 있으니까.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안내멘트가 방송되었다. 13호차에 긴급을 요하는 환자가 발생했으니 열차 내에 의사나 간호원이 계시면 도와달라는 멘트였다. 우리가 탄 7호차에서 한 사람이 달려 나간다. 뒤이어 다른 객실에 있던 사람들 몇 명도 우리 곁을 지나 13호 객실로 가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이다, 왠지 환자가 무사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와 올케가  반겨준다. 부모님이 안 계신  친정 허전하다고 하지만  두 분의 다정하고 온화함은  편안하고 아늑한 친정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우리 쑥 캐러 갈까?


점심을 먹은 후, 올케와  집 근처 과수원으로 쑥을 캐러 나왔다. 동생은 쑥보다 갓 피기 시작한 봄꽃들을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저마다 봄을 맞는 방법이 다르다. 냉이는 벌써 꽃을 활짝 피웠고 이제 갓 돋아난 쑥은 연하고 부드럽다. 저녁엔 도다리 쑥국이 좋겠다.


사진을 찍고 있던 동생이 보이지 않는다. 동생들은 언제나 언니를 애 먹인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와서 연락을 취할 수도 없다. 한참을  걱정을 시킨 뒤에야 슬그머니 나타났다. 들판의 야생화가 너무 예뻐서 시간을 잊었다고 한다. 나이를 먹어도 막내는 막내다.


여덟 명이나 되는 형제들과 자라면서 어머니는 힘들었겠지만 우리들은 즐거운 추억밖에 없다. 그래선지 지금도 친정 식구들은 정이 깊다.


팔등분은 우리 친정식구들의 몸에 밴 베풀기의 공식이다. 집에서 기르던 꽃이 새끼를 쳤다며  여덟 개의 화분에 담아 들고 와서 나눠주기도 하고 열대어를 기르는 동생은 작은 관상어인 구피를 똑같이 분양해 주기도 했다. 


 친정에 왔다가 돌아갈 때면 뭐든 양손 가득이다.  무거워서  가져가기 싫다고 앙탈을 부리면 그래도 너희는 다 사 먹지 않느냐며 굳이 싸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오빠에게서 본다.


쫄깃한 가래떡 만으로도 여행가방은 넘쳐나는데 싹을 틔운 상추모종과 다육이 그리고 키우던 구피를 분양해 주셨다. 전에 동생이 준 구피를 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말을 새겨 들었던 것 같다. 거절하기엔 이미 늦었다. 올케까지 가세하여 구피를 담은 물통에 꼼꼼하게 비닐을 두른다.


" 구피야 나랑 서울로 가자"


갈 때는 동생과 단 둘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엔 열 마리 구피도 함께 왔다.


친정에서 느끼는 봄은 더욱 따뜻하고 그래서 더욱 행복하였다.  


남녘의 들판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이전 14화 아침의 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