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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Feb 22. 2021

여보 나 왔어, 나 안 보고 싶었어.

부도수표가 되어버린 노후


 “준비된 노후는 축복입니다.”

그럴듯한 보험회사의 광고 문구가 눈길을 멈추게 한다. 어떻게 준비된 노후를 맞을까. 한때는 예쁘고 귀여운 때도 있었고 건강미 넘치는 젊음을 자랑하며 오늘보다는  좋은 내일이 기다릴 거라고 꿈꾸며 열심히 . 젊은 남녀가 한날한시에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아끼고 사랑하며 아들  낳아  아들이 아비 되고 예쁜 딸이 어미 되도록 정성 들여 키워주고 돌봐주며 부모로서 책임을 한다. 이제 평안히  쉬어도 되겠지 살짝 쉼을 얻어내자 어느새 일흔 고개를 넘어 노부부가 .


노부부란 이름 아래 인생 후반기 이제부터 시작이다.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여유를 즐기려는 그때 소리 없이 찾아온 불행의 씨앗! 남편만 졸졸졸 따라다니는 아내의 이상행동. 너무나 사랑하기에 좋아서 집착하는 줄로 고마워하며 웃어넘겼지만 화장실까지도 따라다니는 아내의 강도 높은 집착. 이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닫는. 대화는 불통되고 인지기능과 기억력은 떨어지고 행동반경은 좁아지는 이해할  없는 야릇한 병이 노부부의 앞을 가릴 줄은 예측도 못한 일이다.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2~3년을 보듬으며 돌봐왔지만  차도가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지만 남편도  이상은 지치고 힘들어서 감당을 못한다.  단계에 이르자 아들 며느리의 힘을 빌리고자 함께 살아보지만 치매로부터 해방될 방법과  길을 찾지 못한다. 며느리도   들고 결국은 요양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것이다.


늘씬하고 젊은 할머니가 치매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외모는 멀쩡. 병동에 모셔두고 아들 며느리가 돌아간  노신사 한분이 오늘 입원한 정연이 할머님이  계시는지? 안부를 상세히 묻고는 돌아서려 한다.  그냥 가세요? “나를 보면 따라가려고 할지 모른다.”라고  적응할 때까지  보는  좋을  같다는 결론이다.


중절모를  노신사의 뒷모습은 어깨가 살짝 구부러지긴 했어도 그렇게 고생스럽게 살아오신  같지는 않다. 노신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담담해하실지 모르지만 소리 없는 울음을 속으로 꾹꾹 누르며 홀로 외로워것이다.  분이 어떻게 사셨는지 지난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제삼자의 마음이 이렇게 ~하게 아파오는데 일평생 함께한 노부부의 마음이야 어떻겠는가 치매 때문에 생이별이라니.

 

할머니는  사람  사람 찾아다니며 혼자 중얼거리며  적응. 남편이란 울타리는 이미 허물어지고 없는  같다 “ 보면 간다고 따라나설라할아버지의 염려일 뿐.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할아버지는 출근하듯 왔지만 문밖에서 돌아섰다.


3주가 지나고 침대 곁에서 모자를 벗고 높으신 어른 앞에 예의라도 차려야 하는 것처럼 정중히

“여보 나 왔어 잘 지냈어?”

“나 안 보고 싶었어?”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마주 보며

“나 안 보고 싶었어? 말해봐”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다 사다 줄게”

“나 안 보고 싶었어?” 반복해서 물어봐도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는 투로 무반응이다


옛정을 기억해 보라는 듯

남편을 알아 달라는 듯

예전처럼 잔소리라도 해보라는 듯

차라리 바가지라도 박박 긁어줬으면 좋겠다는 듯

바짝 다가앉으며 할아버지는 인정받으려 애썼다.

젊을 때 못해주었던 모든 것도 지금은 다 해주고 싶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할머니는 그냥 의미 없이 피식 웃기만 할 뿐. 좋은 것도 싫은 것도 감정의 변화가 없다. 물어도 초점 없는 눈과 혼자 중얼거릴 뿐이다. 몇 날 며칠을 애태우며 기다리다 용기 내어 다가오신 할아버지 마음은 허공의 먼지처럼 흩날렸다. 쌓은 공 없이 기대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할아버지의 애타는 마음만 안타깝다.


가끔 방문하는 아들 며느리 바쁘다는 핑계로 어쩌다 들리는 딸은 대화도 되지 않고 망가져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에 눈물만 . 할머니는 남편, 아들, , 며느리가 오던지 가던   관심 없다. 눈만 뜨면 함께하는 어르신들과 이웃하며  사람이 '하하' 웃으면  같이 웃기도 하면서 각자 멋대로 중얼거리며 그런 날들을 .


한평생 사랑하고 아끼며 때로는 친구같이 늙어서는 서로 등 긁어주며 행복하게 살자고 백년해로하자고 꼭꼭 약속했지만 내일의 행복이란 믿을 수 없는 부도수표가 되었다. 노후의 행복은 치매라는 병에게 빼앗기고 노부부의 인생은 여기서 미완성된 채로 끝나는 것인가. 더 좋은 날이 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준비된 노후는 축복입니다.”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축복된 노후를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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