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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Jun 14. 2024

거꾸로 죽어도 살자

추억을 생각하며


신중, 진실한 사랑, 청렴, 열정, 겸손한 마음,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동백꽃의 꽃말이다.

 

꽃은 지고 열매가 달린 동백나무를 보니 보다 더 찐한 향수를 느낀다. 때가 되어 동백 씨앗은 하나 둘 땅에 톡톡 떨어졌다. 흰 눈 속에서 더욱 붉게 빛나던 동백꽃을 떠올리며 씨앗 열개를 주웠다. 씨앗에서 나무가 되고 꽃이 피는 그 과정이 궁금하여 씨앗을 화분 흙속에 묻어 두었다. 동백씨앗 열개는 화분 속에서 한겨울을 지나고 3월 어느 날 몇 개의 싹이 쑤욱 자라 있었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서 무엇을 심었는지도 잊어먹고 있었을 때였다. 동백 새싹이 자란 걸 보니 미안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가슴이 벅차다.


어두움을 지나 볼그레한 여린 잎 두 개를 피워내고 있는 어린 새싹을 보며 기대가 크다. 먼저 싹 틔운 두 개를 다른 화분으로 옮겨 제자리를 잡아 주려했다. 줄기를 잡고 꽃삽으로 폭 떠면 될 줄 알았는데 보통 새싹과는 다른 뚝심이 있다. 어린것이 흙속에 뿌리를 얼마나 깊이 내렸는지 쉽게 따라 나올 기세가 아니다.  


흙을 최대한 많이 붙여 흔들림 없이 자리만 살짝 옮겨 주려 했는데 뿌리가 만만치 않다. 어쩌다 뽑아낸 뿌리는 싹보다 세 배나 길다. 아직 어리다고 작은 화분에 심으려 했더니 이렇게 뿌리가 길 줄은 정말 몰랐다. 뿌리대로 세우면 큰 화분이 있어야 하지만 뿌리를 동그랗게 말아서 화분에 옮겨 심었다. 한 햇살이 풀뿌리와 나무의 뿌리는 시작부터 다르다.


한날한시에 심었어도 열개가 다 같은 날 싹을 틔우지는 않았다. 시간을 두고 심심찮게 하나 둘 살아있음을 알렸다. 함께 출발한 열개의 동백씨앗은 어두운 땅속에서 석 달을 견디고 차례차례 모두 새싹으로 태어났다. 어린것들이 팔 벌리고 자랄걸 생각하며 하나씩 제자리를 잡아 준다고 한 것이 실수 연발이다.


까만 껍질을 빨리 벗어던져야 새싹이 나올 텐데. 오랫동안 그 모자를 벗지 못하고 키만 삐쭉 커가는 새싹의 그 여린 목을 잡고 모자를 벗겨주려다가 목이 잘렸다. 또 다른 것은 영양가 있으라고 준 커피찌꺼기에 취해 시름시름 앓다 죽기도 했다. 잎이 벌어지지 않은 위쪽이나 잔뿌리가 없는 뿌리 쪽은 위아래 별 차이가 없었다. 흐릿한 시력으로 구분을 잘 못하여 거꾸로 심기도 했다.


하늘을 향해 발을 뻗고 땅속에서 꽃을 피울 수는 없는 것일까. 거꾸로도 자라 주면 좋을 텐데 거꾸로 자라는 동백나무 너무 멋지다. 땅속에서 붉은 꽃이 만발한다. 세상에 이런 . 허황된 상상 속 주인의 똥손은 어린 새싹 여럿을 죽였다. 그래도 대표선수 셋은 살아남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삼십 프로는 성공이다.


싱싱하게  자라는  포기 동백이 너무 고맙다. 꽃말처럼 신중하게 바라보며 동백나무  형제에게 애틋하게 속삭인다. 대표선수 너희들을 엄청 사랑한단다. 한겨울   속에서 열정을 꽃피울 그때까지 함께 가자. 고이고이  자라 꽃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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