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국 Jun 11. 2024

작은 두 손으로

어린이집으로 등원하는 (29개월)

클로이는 어린이집에 다닌 지 6 개월째다. 아침마다 부스스한 모습을 보면 애처롭지만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기저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아이가 규칙이 있는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당연히 힘들겠지. 시간 맞춰 일어나야 하니 어른이나 아이나 아침시간은 늘 분주하다. 집에 있으면 푹 자고 늦게 일어나도 되겠지만 재미있게 보낼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또래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훨씬 더 재미있을 테니까 힘든 아침을 깨우며 일어나야지.


아침 정해진 시간 안에 다 챙기려니 밥 먹자. 양치하자, 세수하자. 옷 입자. 머리 빗자. 하자는 것도 많다. 바쁘게 우당탕탕 챙겨 보내고 나면 하원시간은 금방 다가온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휙휙 지나가 버린다.

  

하원해서 둘이 세면대에 서서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두 얼굴을 바라본다. 야리야리한 새싹과 물끼 말라 바스락거리는 가을 낙엽의 차이라고 할까. 오랜 세월 비바람 맞으며 마을 뒷산을 지킨 노송과 아기 소나무의 모습이랄까. 하늘과 땅 차이 그보다 더 먼 거리 먼 세월을 느낀다.


‘아이고 덥다. 세수나 좀 해야지.’ 했더니 기어코 꼬꼬마 양손으로 할머니를 세수시켜 준다고 온 힘을 다해 얼굴을 만지고 물을 묻혀 나른다. 작은 손가락으로 코를 잡으며 "흥"하는 소리에 빵 터졌다. 코보다 웃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할미가 하던 그대로 따라 한다. 거친 손이 작은 얼굴을 씻길 때 얼마나 귀찮았을까. 그 느낌을 살려 할머니 세수를 시키고 코를 풀라고 흥흥하는 것이다.


아이는 본 대로 느낀 대로 금방 따라 하니까. 거울 같은 아이 앞에서는 무슨 행동이든 말이든 조심스럽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좋은 이미지만 심어 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아 시원하다. 다 씻었네 고마워’ 그러자 쌩긋 웃으며 토닥토닥. 엉덩이는 젖었지만 토닥이는 그 마음은 따뜻하다. 보조 계단에서 내려서며 양눈을 깜박하며 윙크까지. 뭐 요런 게 있나 싶다. 아이 키높이에 맞추기 위해 몸을 낮추고 세수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다.


둘이 물장난을 치며 놀다 보면 옷은 젖어도 마음은 즐겁다. 이럴 때는 아이가 주는 즐거움에 더위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마신 것보다 더 시원하게 넘길 수 있다. 따스함과 시원함을 함께 나눠준 고사리 같은 너의 두 손을 보며 할머니는 생각한다. 꾸밈없는 너의 마음과 손놀림은 휘어진 노송에게 송홧가루 날리는 새봄을 선물한 것이라고 상큼한 하루다.

 


이전 08화 아 매워 고마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