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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Sep 10. 2024

난 까막눈인데

속이 탄다 속이 타(38개월)

오후 네 시 삼십 분이면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린다. 십 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를 항상 십오 분 전에 출발한다. 큰 도로 세 개를 건너지만 신호가 딱딱 잘 맞아떨어지니 실수한 적은 없다. 하루 이틀 해온 일이 아니기에 그 결과를 믿고 오늘도 임무 완수를 장담하며 출발한다. 그런데 두 번째 8차선 도로에서 걸음을 멈췄다. 보행자에겐 건널 기회를 주지 않고 차들만 싱싱 달린다. 신호고장인가. 금방 바뀌겠지.


1분, 2분, 3분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왜 이러는지 차츰 불안해진다. 마음은 바쁘고 차가 뜸할 때 건너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갈 수는 없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다 여유로운지 신호 무시하고 건너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른 때 같으면 분명 한두 명은 위반하고 건널 수도 있을 텐데. 오늘따라 위반이란 걸 해볼 참인데 모두 모범생들만 모였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초록 불이 켜지지 않는다. 어매 미쳐!

 

건너편 도로엔 둥둥둥 북을 치며 데모 행렬이 나타난다. 경찰이 있어도 보행자들에겐 관심도 없다. 젠장, 안달복달 불안한 건 나뿐이다. 바쁜 마음을 달래며 제발 좀 늦게 와라. 늦어져라 늦어져라. 여유롭게 기다리면 늦게 와도 이럴 땐 더 정확한 시간에 온다는 걸 모를 리 없지만 늦어지길. 아이고, 이 일을 어쩌나. 데모 행렬 뒤에 어린이집 차가 따라온다. 속으론 동동동 똥이 탄다. 신호는 바뀌지 않고 데모 행렬이 다 지나간 뒤에야 신호가 바뀐다.


시간은 이미 늦었지만 8차선 도로를 힘껏 뛰어 건너고 4차선을 한 번 더 건너 저 멀리 정차된 노란색 차를 보니 마음이 더 바쁘다. 후다닥, ‘으악' 그 와중에 엎어지기까지 한다. 벌떡 일어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픈 것도 무시하고 뛰고 걷고 부지런히 간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아픔도 뒤로한 채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바쁘다.  


차가 먼저 와서 기다리기는 처음이다. 바쁠 텐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그냥 웃지만 "할머니 왜 기다리지 않았어." 늦었다고 손녀가 야단을 친다.


평소에 신호 무시하고 건너가는 사람이나 차들을 보면 못마땅하게 여겼던 내 양심이 불법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로변이라 신호 무시하고 그냥 건널 만큼 강심장도 아니고 어쩔 수 없었다. 상황판단을 잘할 줄 알았더라면 일찍이 다른 방법을 찾았을 텐데 지혜가 부족했다. 법규를 위반하거나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려 우직하게 기다렸던 신념인지 고집인지 개똥철학인지 때문에 속이 다 탔다.

     

할머니가 늦어서 미안해. 손녀와 둘이 손잡고 걸어가며 아이에게 까진 무릎을 보이며 엄살을 부려본다.

클로이 할머니 무릎 좀 봐, 아프겠지?

"응, 그러니까 조심해야지."그런다.

할머니 아파서 울었을까 안 울었을까? 다시 물었다.

"예전에 나도 그랬어."

이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세 살짜리의 예전이란 그 말이 너무 웃긴다.

할머니도 그런 말은 안 하는데 누구에게 배운 거야.

할머니보다 더 할머니가 여기 있었네.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목요일만 예외다. 저녁밥 먹는 아이에게 할머니 내일은 못 기다리는 것 알지 누가 데리러 올까?

"아빠."

아빠가 몇 시에 데리러 가려나 그랬더니 오른손을 쫙 펴며 "다섯 시."라고 말한다. 옆에 있던 아빠가

"아니야 여섯 시에 갈 거야 손가락 여섯 개 펴 봐." 양손을 쫙 펴 보인다.

"그건 열 개지."

숫자판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지 관리비 영수증을 펴 보이며 "우리 몇 층이지 여기 6자 있지 찾아봐"

한참 들여다보면서도 반응이 없다. 지켜보던 아빠가 "잘 안 보여?" 그러니까

"난 까막눈인데" 그러는 바람에 "하하하하" 모두 폭소가 터졌다. 까막눈이라 말하는 그 자신감에 온 집안이 해피바이러스 가득이다.

까막눈 까막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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