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돈이란(49개월)
옥수수나 콩, 팥, 완두콩, 감자, 고구마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 구황작물을 주식으로 살아온 할머니보다 더 좋아한다. 배고픈 시대를 살아온 할머니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가 할머니의 구황작물에 고사리 같은 손을 내민다.
신식 식재료보다 농산물을 더 좋아하니 토종 입맛이라 말하며 최대한 좋은 농작물을 구해서 더 많이 챙겨 먹인다. 하얀 찰 옥수수 한 자루를 거뜬히 다 먹고도 부족한지 하나 더 먹겠다고 한다. 속이 괜찮을까. 염려하면서도 하나 더 준다. 찹찹 맛있게 잘 먹는 그 입만 봐도 신난다. 마지막까지 입을 짭짭거리며 찰지게도 먹는다. 찐득한 양손을 합장하며 어쩔까 눈치를 본다.
‘일어나 손 씻고 오자.’ 달랑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원하는 만큼 먹고 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이제는 혼자 손 씻을 정도는 되니까 그냥 둬도 되지만 ‘쏴아 쏴아’ 멈출 줄 모르는 수돗물 소리가 마음에 걸린다. 할머니 마음은 벌떡 일어나지만 '끙' 소리가 먼저 새어 나온다. 몸은 두두둑 소리와 ‘아야 ‘소리를 내며 천천히 일어나 허리를 두드리며 화장실 문 앞으로 향한다.
“콸콸콸”흘러나가는 멀쩡한 물을 보며 ‘이제 그만 물 잠그자’ 그래도 듣지 않는다. 덥기도 하고 손 씻는다는 이유로 물장난 중이다. 마구마구 흘러버리는 수돗물이 가슴 저리게 아깝다. 손녀 놀이도 좋지만 할머니는 아까운 생각이 먼저 든다. 그냥 흘러가는 시냇물도 아니고 수돗물이 집안에서 흐르기까지 그 과정과 경비를 생각하면 아이에게 한소리 안 할 수가 없다.
요즘 색동지갑에 돈 모으기를 좋아하고 돈 많다고 자랑하는 아이에게 돈과 연결시켜 말을 해본다. 클로이 수돗물 그렇게 흘려보내면 너 돈 많이 내야 해. 어린아이에게 수돗물과 돈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왜 그런지 이해가 될 일인가. 물은 물이요 돈은 돈일뿐인데.
돈이란 말은 귀에 들어오는지.
“동그란 거 많이 나가?”
아니 ‘종이돈을 내야 할 걸’
“아 네모난 거 내야 하는 거야”
그래 네모난 거 많이 내야 해.
“그러면 동그란 것만 남아?.”
돈이란 동그란 것과 네모난 것이라는 정도로 아는 이이에게 돈의 가치가 무슨 소용이며 많고 적음이 뭔 상관인가. 우선 재밌는 게 더 중요하지. 애타는 건 할머니 마음뿐이다. 돈이 뭔지는 잘 몰라도 지갑과 돈을 알아가는 아이에게 돈으로 자극하는 할머니가 더 치사하다.
‘딸깍’ 잠그지 않는 아이에게 뭐라고 이해를 시켜야 할지. 넌 지금 돈을 안내지만 엄마 아빠가 돈을 많이 내고 있어. 너 그렇게 물을 틀어 놓으면 엄마 아빠가 네모난 돈을 많이 내야 하거든. 그러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겠지. 엄마 아빠가 일을 더 많이 하려면 일찍 집에 올 수가 없어. 그러면 너랑 많이 놀지도 못해.
“알았어. 엄마 아빠 빨리 보고 싶다.”
엄마 아빠 좀 있으면 올 거야.
수돗물 놀이를 멈추고 수도꼭지를 스스로 눌러 잠근다. 수건에 손을 닦으며 그래도 만족한 지 방굿 웃는다. 세상에 돈이 뭐라고 아이에게 돈으로 위협을 가하다니. 손녀를 협박하는 할머니 나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