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예쁘다(48개월)
화장 안 하면 밖에 나가기가 민망했는데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민낯으로 살기도 적응되니 편해졌다. 계속 얼굴반을 가리고 다니면 화장할 필요가 없을 텐데 그렇다고 얄궂은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건 안되지. 민낯으로 사는 게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민낯으로 나갈 수가 없다. 매끈한 애호박도 아니고 울퉁불퉁 골진 늙은 호박이라도 첫인상이 중요하니 씻고 닦고 바르고 그리기라도 해야 한다. 참 오랜만에 화장을 하려니 어색하다.
얼굴전체 배경색은 내추럴 베이지로 살짝 덧칠을 하고 늘 하던 대로 눈썹을 그린다. 흐리멍덩한 눈엔 아이라인으로 힘을 주고 입술에도 핑크빛으로 생기를 더한다. 거울을 외면하고 살다가 거울과 가까워지니 골진부분들이 눈에 거슬린다. 거울 속 그녀를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주름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고 숨은 이야기가 있을 테니 보듬고 사랑하며 살아가야지.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추어 제자리로 돌아와 손녀 마중을 나간다. 차에서 내린 손녀와 둘이 손잡고 작은 도로를 건너왔을 때 손녀가 한마디 툭 던진다.
“할머니 눈썹 그리니까 예쁘다.”
앵, 무슨 말이지. 할머니가 띵해진다.
할머니 눈썹정도는 날마다 그렸는데
이 아이가 새삼스럽게 왜 그래.
오늘 재미있었어?
“응 오늘은 물놀이했어”.
“어린이 집에서 옷도 갈아입었어.”
차에서 내리자 금방 가방을 벗으며 “가방이 무거워” 그랬을 땐 무슨 소린지 몰랐다.
물놀이한 옷을 가방에 넣었으니 다른 날보다 묵직했다.
집에 들어와 물놀이해서 시원했겠네.
“진짜 시원했어.”
낮잠도 잘 잤어?
“밥 먹고 바로 잤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묻고 대답하며 이야기한다. 한참을 쫑알거리더니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다가 벌떡 일어난다. “할머니 이게 뭐야? ”할머니 눈을 가리킨다. 아 할머니 눈썹 그리니 예쁘다고 했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았다.
안 하던 아이라인을 그렸더니 손녀가 단번에 알아봤다. 다른 때보다 할머니 눈이 좀 또렷해 보였나 보다 어린아이의 눈썰미가 놀랍다.
손녀에게 받은 기분 좋은 여운에서 벗어나기 전
집으로 돌아와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냐며 얼굴을 내밀었다.
“좀 하얗네” 할아버지의 감성은 그걸로 끝.
눈썰미는 어린 손녀를 따라가지 못한다.
할머니에게 관심 많은 손녀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