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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Aug 21. 2017

쉽게 설렐 수 있었던 그 순간들

어리숙했던 과거가 애달프고 그리워지는 거다. 

지금보다도 더 어렸을 그 시절에 나는 작은 많은 것들에 쉽게 설레곤 했다. 떨어진 지우개를 주워주는 작은 손길에도, 머리에 붙은 작은 꽃잎을 떼어주는 친절에도 너무나 쉽게 설레고 흔들렸다. 설레는 것에서 그쳤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법했던 것들에 흔들렸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스쳐가는 작은 것들에 설레이다가 그 설렘이 커지다 보면 오해를 하고 착각을 하기 부지기수였다. 혼자서 오해하고 상처 받고 끅끅대며 울기도 하다가 스스로 너무나 수치스러워하다가. 그리고는 얼마 못가 또 이런 실수를 반복하며 나 자신을 힘들게 했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리도 쉽게 설레고 흔들리던 그때 그 순간들이 애틋해지는 까닭은 뭘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알게 되는 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무게로 다가왔었는데, 이제는 중요하고 전보다 훨씬 소중해지긴 했지만, 내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다가온달까. 몇 번 실수로 밟아 깨진 유리들에 다친 발바닥의 상처가 두툼해지고 또 두툼해지다 보니 어느 정도의 작은 유리조각들은 견딜 수 있게 되기도 하였고, 어느 정도의 유리조각들은 스스로 피해 가는 방법을 알게 되기도 하였다. 상처를 줄 것 같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아직 잘 모를지 모르나, 이미 끝이난 관계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칼 같은 부분이 생겼고 무작정 느껴지는 충동적인 설렘이나 감정들에 흔들리지 않은 채 '그것'들을 흘려보내는 방법도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나름의 노하우 비슷한 게 생긴 거다. 그런 요즘, 애달프게 설레었던 그 순간들이 문득 생각난다.


나의 엄마는 종종 나이 든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를 보고 있노라면, ‘저 나이 때에도 저렇게 좋을까?’하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그때마다 ‘그럼~ 그럴 수 있지 당연히~’라며 나이 든 오지 않은 때를 경험이라도 해봤다는 듯이 장담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엄마의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비슷한 것들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무뎌지는 어떤 부분들의 어리숙했던 과거가 애달프고 애틋하게 그리워지는 거다. 나도 안다. 막상 그때로 돌아가면 또다시 후회하고 상처 받고 힘들어할 것을. 뭐든 지나가고 나면 애틋해지고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어쩌다 저질러버렸을지 모르는 한 순간의 후회와 잘못과 실수를 조금이나마 위로하려는 무언의 일일까?  


어찌 돼었건 요즘따라 작은 것들에 설레었던 내가 보고 싶어 진다. 어깨를 움츠리며 수줍게 얼굴에 올리던 애틋한 미소와. 별 것 아닌 것에도 어쩔 줄 몰라하는 미소로 가득 채웠던 그 순간들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그리고 여전히 쉽게 설렐 수 있던 그 순간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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