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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n 19. 2017

텃밭 샐러드 -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식이라면 2

생강

손바닥 허브텃밭

마당에서 흙이 묻은 채소들을 뽑을 때의 기분은 마치 사노 요코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간호사가 놓아준 주사약이 불러일으킨  '지금까지 느낀 적이 없는 평화롭고 편안한 기분'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불손하게도 내 인생이 완벽했다'라고 느낄 만큼. 물론 상추를 뜯고 파를 뽑을 때마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주사약 한 방에 완벽한 인생을 경험한 사노는 그 '부자연스럽고도 완벽한 기쁨이' 자신의 인생을 모독했다고 여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사노는 '어떤 순간이든 어떤 사소한 것이든 내가 내 힘으로 느끼는 것을 감사히 여기게 되었다'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마당에서 고추를 따고 허브를 뜯는 사소한 순간들을 내가 내 힘으로 느끼는 평화롭고 편안해서 완벽한 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파슬리, 타임, 바질, 로즈마리


그렇게 따온 파슬리와 타임, 바질과 로즈마리 줄기들을 잘게 자른 이유는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식이라면 2'에서 만난 여름 옥수수 허브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서다.


여름 옥수수 허브 샐러드


렌틸콩을 삶고, 단 옥수수와 다진 허브, 다진 자주 양파를 섞고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 만으로도 '이렇게 맛있고 멋진' 샐러드가 만들어진다. 생강의 음식들은 정말 쉽다. 재료만 준비해서 간단하게 섞고 가끔 굽고 끓이면 완성이다. 가끔 음식을 만들면서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리곤 하는데 그녀의 요리책은 때로 들춰보고 있기만 해도 그런 효과를 줄 때가 있다. 화려한 색감에 이 정도는 나도 쉽게 할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 책장을 계속 넘기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만들어보고 싶은 의욕이 절로 생겨나 언제 기분이 꿀꿀했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자신을 만나게 되니 내게는 비타민 같은 요리책이다.



민트가 10 그램 필요한 샐러드를 하나 발견했다. 10그램은 과연 얼마만큼일까 궁금해하면서 민트 줄기 4개를 꺾었다. 정확하게 5 그램이었다. 저울에 작은 종지를 올려놓고 민트 잎을 따서 넣으며 무게를 재는데 몇 장을 넣어도 저울의 숫자는 계속 0에 머물러 있는 거다. 민트 잎을 찻종에 담을 때마다 참 가볍다고 여겨 오다가 실제 저울의 눈금으로 확인하니 감탄스럽다. 요즘 몸무게가 들쑥날쑥이라 신경 쓰이는데 부럽기도 하고. 저울 눈금이 줄어들면 기쁘고 늘어나면 우울해지는 게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파프리카와 단 옥수수는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내고 파인애플은 노릇하게 구워서 다진 민트와 섞은 후에 라임 즙을 뿌리고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맞추면 완성되는 하와이안 샐러드다. 소금보다 후춧가루를 많이 넣어 문득 느껴지는 매콤함이 여름날 오후의 뜨거운 공기를 연상하게 하는 이 샐러드는 만들고 나서 파인애플 즙과 라임즙이 다른 재료에 약간 스며든 후에 먹으면 더 맛있어요.


브런치


샐러드를 좋아해서 샐러드 두어 가지만 있으면 만족한 식사를 하는 남편과 함께 사는 이유로 이런저런 샐러드를 많이 만드는 편이다. 샐러드를 다룬 요리책들을 제법 가지고 있고 요리책을 사더라도 샐러드를 다룬 부분들을  먼저 살펴보는 내게 생강의 채식요리책들은 정말 좋은 지침서다. '다이어트가 내 안으로'라는 부제를 가진 그녀의 두 번째 책도 아마 곧 표지가 너덜너덜해지겠다.


수레국화


잘 닦아서 번쩍번쩍 빛이 나는 놋쇠 대야를 닮은 해가 떴습니다. 하늘은 조금 뿌옇지만 오늘 햇빛도 대단하겠지요. 수레국화와 장미가 한창인 마당, 주목 아래 갖가지 식물들이 비좁게 모여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곳을 어떻게 정리할까 궁리하는 아침입니다. 안부를 묻고 싶은 이들에게 한 줄기 바람을 불어 보냅니다. 그대, 오늘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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