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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Nov 18. 2017

전업주부의 월요병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아이는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학교는 그대로이고 집만 이사를 하게 되자 등교시간이 앞당겨져야 했다. 분당에서 서울로 출근하던 남편의 출근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버스를 타려면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아랫동네까지 걸어가야 했으므로 아이는 남편의 차를 함께 타고 집을 나설 때가 많았다. 남편과 아이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면 하루가 온전히 내 차지였다. 물놀이를 하듯 마당에 물을 뿌렸고 해바라기를 하면서 빨래를 널었다. 이웃들은 아직 이사를 오기 전이어서 동네는 고즈넉했고 나는 강아지 세 마리와 마당으로 날아드는 새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낮시간은 조용하고 느리게 흘렀지만 금요일은 주말 준비로 부산스러웠다. 종일 마당에서 놀고 싶었으므로 미리 장을 봐서 주말에 먹을 음식들을 미리 만들거나 완성 직전의 단계까지 준비해두었다. 물론 주말에 세탁이나 청소는 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소풍을 가듯 즐거웠지만 일요일 오후가 되면 모두들 조금씩 우울해졌다. 회사도 학교도 가기 싫다는 것이다. 엄마는 좋겠다고, 당신이 부럽다고 하는 말들에 나는 행복한 듯 한편으론 미안한 듯 웃었던 것 같다. 비록 주말 동안 미루어둔 빨랫감이 바구니에 넘치고 청소와 정리해야 할 부엌살림이 남아있었더라도 말이다.




 

평일 아침에는 바삐 나가야 하는 식구들에게 주스나 커피를 건네고 샌드위치와 주먹밥을 쥐어주면 그만이지만 주말은 달랐다. 토마토와 계란을 함께 볶아내고 토스트를 하거나 핫케이크를 구웠다. 과일을 내고 수프를 곁들이기도 해서 아침 준비만으로도 땀이 날 지경이었다.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과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의논했다. 주말의 끼니는 모두 여섯 번 돌아온다. 외출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틀 내내 주방에서 벗어날 짬이 없는 셈이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시험기간일 경우에는 주말에도 마냥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런 주말에는 몸도 마음도 지칠 수밖에 없어서 사는 게 롤러코스터 같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한없이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바닥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려 꽂히는 듯한 느낌에 아찔했다. 월요일 아침에 두 사람이 탄 차의 뒷모습이 사라지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감사했다. 청소기와 빨랫감과 정리해야 할 부엌과 마당이 버티고 있어도 아무 문제가 안되었다. 이 정도쯤이야 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시어머니께서 오셨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수건이며 셔츠, 양말 등을 유심히 보시더니 빨래는 언제 하느냐고 물으셨다. 특별히 정해 놓은 게 아니고 그때그때 빨랫감이 모일 때마다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저녁이나 주말에 할 때도 있느냐고 물으셨다. 간혹 그러기도 한다는 내 대답에 잠시 다른 곳을 보시더니 하신 말씀은 저녁이나 주말에는 빨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오래전이라 요즘처럼 층간소음에 민감하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워낙 정확하고 반듯한 분이시라 나는 당연히 밤이나 주말에 세탁기를 사용하는 것이 같은 아파트의 아랫집, 윗집에 폐를 끼치는 게 될 거라는 말씀이거니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ㅇㅇ가 밖에서 종일 일을 하고 들어왔는데 네가 빨래나 하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편안히 쉴 수가 없을 거야."


 집은 쉬는 곳이고 쉬는 곳은 편안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말도 마찬가지라고. 주말에는 빨래와 청소는 물론이고 가능하면 부엌에서도 애써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그저 둘이 재미나게 놀기만 하라 하셨다. 남자가 밖에서 일을 하는 시간에 여자도 집에서 해야 할 일을 앞당겨 해놓으면 굳이 저녁이나 주말에 집안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말씀에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동안 퇴근한 남편이 현관의 벨을 누를 때마다 빨랫감을 싸안고 문을 열고 싶은 기이한 충동에 시달린 것은 시어머니께서 다녀가신 날부터였을 거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기가 막히게도 나는 그 후로 한동안 주말이나 저녁에는 빨래를 하지 않았다. 두 식구였어도 빨래는 많았다. 지금처럼 세탁기 성능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손빨래를 해야 하는 것들이 제법 있었다. 특히 와이셔츠를 빨고 다림질을 하는 일은 서툴게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어려웠다. 저녁때가 되어 남편이 돌아올 즈음이면 종일 허둥대다가 지쳐있기 일쑤였는데 남편은 그런 나를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낮에 뭘 하는데 그렇게 힘들어?"

 

 시어머니 말씀대로 남편은 일터에서 아내는 집안에서 각자의 일을 한 것이라면 남편이 직장에서 피곤해져 돌아온 것과 아내가 저녁때쯤 지쳐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신혼의 월요일은 주말 동안 쌓인 빨랫감과 보이지 않게 숨겨둔 자잘한 일들을 끌어안고 보냈다. 월요일이 반가울 리 없었다. 평일을 담보로 한 주말의 평화도 오래가지 않았다. 살림 전체를 혼자 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던 아내와 살림을 함께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던 남편은 공을 들여 싸웠고 종종 우울했다. 나는 더 이상 주말에는 붙잡고 있을 집안일 따위는 없다는 듯이 한가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연기하는 새댁이 아니었다. 일요일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와이셔츠를 빨면서 나의 첫 번째 월요병은 사라졌다.




  직장인과 학생의 월요병은 세상의 지지와 이해를 받는다. 애써서 공감해주는 것이다. 월요병은 주말을 전제로 하고 주말이란 일주일을 한 묶음으로 살아내는 직장인과 학생들의 전유물로 느껴진다. 전업주부에 관해서라면 매일 집에 있으면서 월요일이면 어떻고 토요일이면 어떤가 하는 식이다.



 주말이 일터와 학교를 뒤로 하고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라면 엄마와 아내인 나에게 주말은 평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는 날이다. 남편과 아이가 직장과 학교로 돌아가서 그날의 일과 공부를 마주할 때 나는 주말 동안 식구들의 시중을 드느라 미뤄둔 일들과 새로 시작하는 월요일의 일 사이에서 허덕인다. 주말의 휴식은 주부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에게 맞춰져 있다. 실제 전업주부들에게는 월요일이 휴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적어도 시간 맞춰 식탁을 차리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므로. 식구들이 월요병이라는 꼬리표를 길게 늘어뜨리고 집에서 나갈 때 주부는 빨래와 청소기와 함께 집에 남겨진다. 어처구니없이 그렇게 홀로 남겨진 것을 기뻐하기도 한다. 마음대로 중얼거리고 분통을 터뜨리다가 여차하면 울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 연휴가 끝나는 날은 휴가를 앞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한다.


 전업주부가 월요일을 단순히 달가워한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누군가는 쉼 없이 하루를 닦아내야 한다. 어깨의 짐을 덜어낼 틈도 없이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은 긴장감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이들에게 내 몫의 무게까지 얹고 싶지 않은 것일 뿐이다. 주부는 월요병도 혼자서 조용히 숨죽이며 앓는다. 그 옛날 아들이 편히 쉬지 못할까 봐 며느리에게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 하셨던 시어머니의 마음과 다를 게 없다. 나도 어느새 옳고 그른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이해가 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는 것만 서로 잊지 않으면 된다. 천천히 움직이다가 맹렬하게 달렸다가 스르르 멈추는 그것 말이다. 내가 올라갈 때 누군가는 내려가고 내가 떨어질 때 누군가는 안도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그리고 함께 내려서 나란히 걸어갈 수 있다면, 롤러코스터를 탔던 순간의 두려움과 안도감에 대해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월요병쯤이야 물리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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