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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Nov 25. 2017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올해 김장을 언제 할 건지 묻기 위해서다. 올해는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 하신다. 하긴 해마다 그랬다. 엄마의 김장날이면 집에 가긴 갔지만 내가 한 일이란 고작 잔심부름에 그쳤다는 걸 안다. 빈 김치통을 나르고, 모자라는 양념들을 보충하며, 간을 보고, 배추를 뜯어먹으며 엄마와 엄마 친구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전부였다. 종류별로 김치통에 담은 김치들을 가져와서 김치 냉장고에 들여 놓는 것이 나의 김장이었거늘 그나마 올해는 제대로 묻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신다. 


 

  엄마의 김장은 특별하다. 오랜 친구와 이모들, 가까운 이웃끼리 품앗이처럼 나누는 김장이다. 김장철이면 집집마다 김장하는 날이 서로 겹치지 않게 세심하게 조정해서 오늘은 순이네, 내일은 꼭지네서 모인다. 어디 날짜뿐인가, 양도 그렇고 맛도 그렇다. 어느 한 집의 김장만 특별히 맛있어도 안 된다. 비슷비슷하게 맛있고 비슷비슷하게 정성을 들인 김장을 집집마다 순서에 따라 한 집 한 집 해 나가는 것이다. 엄마들의 김장은 일 년 내내 현재 진행형이어서 햇볕이 따끈하게 느껴질 정도로 봄이 무르익으면 마늘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고추를 말리는 계절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젓갈을 들이고 배추와 무를 살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 해 동안 차근차근 준비하고 갈무리했던 재료들이 모여 겨울의 맛을 만든다.



 

  김장을 하던 날은 추웠다. 마당의 수돗가 옆에는 전날 소금을 뿌려 절인 배추 무더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당시 김장은 양도 많고 담그는 김치의 종류도 많았다. 종아리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빨간 고무장갑을 낀 엄마와 이웃 아주머니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배추를 씻어내는 물줄기는 시냇물처럼 쉬지 않고 흘렀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노란 배추 잎이 둥둥 떠다니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마늘과 생강과 고춧가루, 젓갈 등이 동네 아줌마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버무려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배추와 무, 갓과 파가 쑥쑥 줄어들면서 장독대 바로 아래 반지하창고에 들어있는 항아리가 하나 둘 채워지면 부엌에서는 점심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였다.


  김장하는 날 점심은 갓 버무린 김칫속과 노란 배추쌈, 수육과 생굴, 동태찌개가 항상 올랐다. 밥상은 푸짐하고 부엌은 훈김으로 뿌옇게 흐려져서 동굴 같았다. 어른들 사이에 끼어 앉았지만 고기도 해물도 입에 대지 않았던 나는 수육은 물론 굴을 넣은 생채에도 젓가락을 갖다 댈 수가 없었다. 생굴이 닿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배추 속을 배춧이파리로 돌돌 말아서 입에 넣는 게 고작이었다. 동태를 넣고 끓인 찌개에서 푹 무른 무 조각을 건져 먹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던, 참으로 빈약한 식성의 어린이였던 것이다. 


   참 신기했다. 그로부터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엄마가 알아서 김장을 하신다는 말씀이 전화기 저 끝에서 들려오자 어린 날의 김장하던 날, 그 동태찌개에서 건져 먹었던 무의 매콤하고 달큼했던 맛이 방금 전에 먹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못 견디게 그립고 사무쳤다. 그 순간에 뜨거운 동태찌개가 한 사발 옆에 있었으면, 그 옛날에는 먹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을 떠서 내 헛헛한 속에 흘려 넣었으면, 투명하게 물러서 부드러운 무를 한 입 베어 먹었으면 했다.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매콤하고 시원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동태찌개 한 숟가락. 




  새로 지은 밥을 강된장과 함께
부드럽게 찐 호박잎에 싸 먹으면
밥이 마냥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움의 끝에 도달한 것처럼
흐뭇하고 나른해진다.
그까짓 맛이라는 것,
고작 혀끝에 불과한 것이
이리도 집요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박완서 님의 수필집 ‘호미’를 읽으면 허기가 진다. 메밀 칼싹두기를 기억하는 부분을 읽다가 수제비를 끓이거나 호박잎과 강된장 이야기를 읽은 후 곧바로 장에 간 적이 여러 번이다. 작가가 기억하는 칼싹두기는 거칠게 간 메밀가루를 대충 반죽해서 방망이로 밀어 칼로 썬 후에 맹물에 끓여낸 음식이라고 했다. 양념장을 곁들이지도 않고 꾸미를 얹지도 않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럽고 무던하고 구수한 메밀의 순수를 간직한 맛이라는 문장에 솔깃했다. 봉평에 갔을 때 사 왔던 메밀가루를 기억해냈다. 적당량의 물을 넣어 반죽을 한 후에 밀대로 밀었다. 국수 모양이 나게 썰어서 소금 간을 한 맹물에 넣고 끓였다. 책에는 약간 걸쭉해진 국물과 함께 퍼담으면 그만이라고 했으니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끓인 국수는 힘이 없어서 뚝뚝 끊어지고 소금을 약간 넣었을 뿐인 맹물은 걸쭉한 만큼 텁텁했다. 비 오는 날, 벽촌의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서 어린 날의 작가가 느꼈던 적막감의 기억 없이는 메밀 칼싹두기의 맛이 완성될 수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칼싹두기의 순정한 맛은 내 몫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맛의 풍경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공부하기가 너무 싫어서 조퇴하고 집에 갔던 날, 그날따라 일찍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와 함께 툇마루에서 마주 앉아 먹었던 밥상의 알감자 조림이나 겨울밤 외할머니가 이불속에서 꺼내 주셨던 뜨거웠던 스테인리스 밥그릇, 엄마가 별채에 살던 영미 엄마와 함께 설날 전에 빚었던 찹쌀떡들이다. 기억이란 홀로 오지 않아서 어떤 맛을 기억해내면 그 맛을 가진 음식을 먹었을 때의 풍정도 함께 되살아난다. 잊은 줄로만 알았던 장소가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었던 이들이 기억 속에서 걸어 나온다. 


   외할머니께서 당신이 덮은 이불을 끌어당겨 교복 밖으로 나온 종아리를 덮어주시던 일, 내 손을 맞잡고 비벼서 열이 나게 하시던 일, 밥은 먹었느냐, 잘 먹지 않는 게로구나, 밥을 안 먹으니 힘이 없어 공부는 어찌하겠느냐고 혀를 끌끌 차시곤 했던 모습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무릇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슬그머니 건네진 보통날의 평범한 음식들이었다.  도통 특별할 것이 없는 감자조림과 더운밥 한 공기가 가진 힘은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남아서 여전히 내 몸을 데운다. 그제야 그때 그 음식들이 내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었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



     

 

  매일 밥을 한다. 종종 귀찮고 버겁다. 매일 먹는 밥, 한두 번 건너뛴다고 대수냐 싶어서 저녁 시간이 다되도록 식사준비를 안하고 버티기도 한다. 오늘 내가 차린 밥상이 훗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절절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무장을 해보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남편에게 어떤 음식이 맛있느냐 물으면 내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단다. 그럴 리가 있겠나 싶어서 자꾸만 물어본다. 당신이 해 주는 거면 다 맛있어! 그러니까 내가 해 주는 거 어떤 거냐고? 아무거나, 하기 쉬운 거, 해주고 싶은 거, 어느 날 집에 온 동생에게 물어봤다. 역시나 남이 해주는 밥!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 어떤 것일지 머릿속을 뒤집어본다. 결국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호미’에서 작가가 이야기한 그리움의 끝에 있는 밥, 외로움을 타는 식구들을 하나로 어우르고 위로하는 신기한 힘이 있는 밥, 화해와 위안의 맛일 것이지만 매일 밥하는 여자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역시 남이 해 주는 밥이 아닐까 한다.



  김장철이다. 절인 배추가 담긴 종이상자들을 나르느라 택배기사들의 어깨가 휘고 동네 슈퍼 앞에도 배추와 무가 산처럼 쌓여 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상에 올라갈 김치가 될지도 모른다. 밤사이 눈이 소복하게 내렸으니 동태찌개도 입에 단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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