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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Dec 16. 2017

몰래 하는 선물

장보기의 즐거움


  그런 비누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유리처럼 아니 투명한 얼음조각처럼 맑았다. 동그란 형태의 투명한 젤리에 작은 꽃들을 콕콕 박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사실 처음 봤을 때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백화점 일층에 있는 화장품 매장이었다. 직사각형의 상자에 나란히 세 개가 들어있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일 뿐이었는데 나는 홀린 듯이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직원이 다가왔다.

“이게 뭐예요?”

“화장비누예요.”

“아!”


  냄새를 맡아볼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세 개의 비누 중 하나를 꺼내어 내 손에 건네주었다. 나는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향기였을 것이다. 꽃냄새도 아니고 과일 냄새도 아니었지만 그 둘을 합한 것을 훌쩍 뛰어넘은 높이에 있는 향기였다. 아련하고 서늘한, 향기에도 색이 있다면 아마도 하늘색이나 눈 속에 핀 매화의 꽃잎 같은, 투명하지만 힘 있는 향기였다. 그즈음에 사용하고 있던 오이비누나 아이보리 비누의 향기와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는 향기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유리처럼 매끄럽고 공기처럼 맑은 형태에 놀랐는데 그 너머에 향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비누였다. 가격을 물었다. 비쌌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그 비누 한 개의 값은 오이비누를 몇십 개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투명한 비누는 아니지만 역시 한 눈에 반해버린 비누 한 장


  집에 돌아왔다. 투명하고 매끄러운 것, 별처럼 박힌 꽃들, 그리고 그 향기에서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비누에 홀리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나날들이 흘렀다. 스승의 날이 되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일 학년이었다. 아이를 마중 나온 엄마들은 교문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께 어떤 선물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나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꿈의 비누를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백화점 일층의 화장품 매장에 가서 그 비누를 샀다. 나를 위해서는 감히 살 수 없었지만 선생님 드릴 거니까 조금 비싸도 괜찮았다. 선물이니까, 선물이 아니라면 누가 이걸 세수하자고 살 수 있을까 싶었다. 이런 건 선물로 받지 않으면 써 볼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작 종이 상자에 든 비누 세 개를 사면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랐다. 자기가 쓸 것도 아니면서.


  얼마가 지난 후에 남대문 시장에 갔다가 또 비누에 발목이 잡혔다. 온갖 종류의 수입 잡화를 취급하는 시장 한 구석에서 나는 용케도 투명한 비누를 발견했던 것이다. 백화점 일층에서 보고 한눈에 반해서 며칠을 끙끙 앓았던 것과 같은 비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같은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었다. 그것만큼 예쁘지는 않았다.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비닐로 싸인 채 한 무더기가 놓여 있었다. 한 개를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향기는 조금 약했지만 역시 좋았다. 물론 오이비누 보다 비쌌으나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파는 비누의 가격보다는 한참 아래였다. 그 비누를 나를 위해 샀다.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복잡한 가게에서 그런 귀한 물건을 찾아낸 자신의 눈썰미가 기특했다. 한 동안 쓰지 않고 아껴 두었다. 화장대 서랍에 넣어두고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서랍을 열어 냄새를 킁킁 맡았다. 눈을 감고 흐뭇해했다.


  드디어 그 비누를 사용해 보기로 한 날, 남편이 욕실에서 나오면서 비누를 바꿨냐고 물었다. 거품도 많고 냄새도 좋다고 싱글거렸다. 향기가 너무 좋아서 그 비누로 머리도 감고 샤워까지 했단다. 잠시 후 욕실에 들어가 봤더니 크기가 거의 반으로 줄어든 비누가 보였다. 게다가 비누접시에 물이 절반쯤 차 있어서 비누가 물에 잠겨 있는 형국이었다. 속이 부글부글했다. 내가 그 비누에 쏟은 마음을 남편이 알리야 없겠지만 속이 상했다. 문을 열고 나와서 욕실을 왜 그리 쓰느냐고 했다. 비누를 함부로 다룬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욕실 사용법에 대해 잔소리를 한 셈이었다. 남편은 잠시 멈칫하는 듯했지만 마음을 상한 모양이었다. 저녁 내내 서먹하고 불편한 시간이 지났다. 비누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비누는 그 정도였던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이유로는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은,
‘고작’이나 ‘겨우’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비누 때문에
그렇게 행복하고 또 화가 날 수 있는
자신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남편에게도 ‘그까짓’ 비누에 대한 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후 한동안 선물을 할 일이 생기면 나는 무조건 백화점 일층의 화장품 코너에 가서 좋아하는 비누를 샀다. 비누를 살 때마다 신이 났다. 으쓱하기조차 했다. 그 투명한 비누를 선물로 받은 여인들이 나처럼 기쁠 것이라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선물할 사람이 남자여도 예외가 없었다. 부인이나 애인에게 선물하라고 하면서 뻔뻔스럽게 안겼다. 나에 관해서라면 투명하고 향기로운 비누가 담긴 작은 종이가방을 받아 들고 집으로 올 수 있다는 사실로 충분히 족했다. 그것들이 금방 남에게 주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작은 한숨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그렇게 우아하고 향기로우며 값비싼 비누를 나를 위해 사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어차피 그 비누들은 내게는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마른 열매로 만든 리스와 먹기에는 너무 딱딱한 크리스마스 과자


  그렇게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을 채웠다. 당장의 쓸모는 없지만 바로 그 때문에 더 갖고 싶었던 잉여의 욕심, 그건 허영이었을지 모르나 여분으로 챙겨두는 비타민제 같은 역할 정도는 물론 했다. 사기에는 뭣하지만 받고 싶은 것. 내가 고른 선물들은 그러니까 선물을 받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고르면서 드러나지 않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은밀함, 그것이야말로 내가 내게 몰래 하는 선물이었다.



  나는 여전히 쓸모없는 것들에 끌린다. 마트에 갈 때마다 새로 출시된 상품들과 햇과일들이 쌓여있는 코너에서 한참씩 머무른다. 이국적인 포장의 버터와 치즈, 짙은 초록의 아보카도와 라즈베리가 담긴 팩 앞에서, 미니당근과 아스파라거스와 껍질콩과 셜롯 앞에서 망설인다.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생소한 식자재들에 마음이 간다. 물론 나의 장보기는 기껏해야 시금치와 콩나물과 대파 한 단을 쥐고 돌아오는 보통의 그것이다. 가끔은 벼르던 미니 양배추, 푸른 잎이 달린 다홍색 미니 당근 묶음, 레몬과 석류와 무지개 토마토를 산다. 포장을 바꿔 출시한 우유, 처음 보는 버터밀크, 용량을 다르게 해서 큼지막하게, 혹은 앙증맞게 나온 요구르트, 인기 있는 캐릭터가 그려진 휴대용 티슈까지 내 욕심의 목록은 길고 길지만 돌아서면 언제나 그랬듯이 잊어버린다. 쓸모없는 것들의 운명이란 으레 그렇기 마련이다.  



  가장 좋은 선물은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바구니 속에 찔러 넣은 꽃 한 다발, 눈이 시리도록 푸른 유리병에 든 탄산수, 이미 여러 번 읽어 줄거리는 물론 외워버리다시피 한 문장들이 곳곳에 산재한 소설의 리커버판, 도무지 사용할 일이 없는 냅킨들이 그렇다. 하나하나 쓸모없는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 보니 그것들이 내게 주는 위안의 힘을 실감한다. 그건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밝히고 싶은 기도이고 볕이 들지 않는 음지까지 데우고 싶은 욕심이며 아무것도 아니라서 더 애틋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비누 한 장이다. 내 장바구니에는 종종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선물들이 담긴다. 나에게 몰래 하는 선물이다.


  어렸을 때의 엄마 생각이 난다. 시장에 가면 돌아오지 않았던 엄마, 아마도 엄마의 장바구니에는 엄마가 엄마에게 몰래 하는 선물들이 담겼을 것이다. 부엌과 마당의 수돗가를 떠난 시간, 작은 지갑과 가벼운 바구니 하나로 보내는 시간 자체가 어쩌면 선물일지도 몰랐을 것이다. 엄마는 미처 깨닫지도 못했던 그 농밀한 선물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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