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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여름마당

by 라문숙


매일 산딸기를 딴다. 아침저녁으로 딸 때도 있다. 아침 식탁에 놓이거나 혹은 딴 자리에서 그대로 입에 털어 넣는다. 어쩌다 사나흘치가 모이면 잼을 만든다. 잼 만들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산딸기 잼만큼 수월한 게 또 있을까. 산딸기와 설탕을 넣고 끓이는 것, 그게 전부다. 포도잼처럼 껍질과 씨를 거를 필요도 없고 사과나 복숭아처럼 색이 변할까 싶어 레몬즙을 넣을 필요도 없다. 걷어낼 거품도 생기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오늘만 해도 저녁 준비하는 옆에서 한 병의 산딸기 잼을 뚝딱 만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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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당에서 거둬들이는 채소나 열매들이 모두 산딸기처럼 예쁘고 갈무리하기 쉬운 것만은 아니다. 오이는 휘어버리기 일쑤고 호박은 조금 자라다가는 떨어져 버린다. 상추나 고수, 파슬리 등은 어느새 자라는 속도가 먹는 속도를 추월하기 일쑤여서 상추 줄기는 나무가 되고 잎이 뻣뻣해진다 싶으면 벌써 꽃봉오리가 맺혀있다. 고수나 파슬리가 아무리 레이스처럼 곱고 하늘하늘한 꽃을 피운다고 해도 식탁에 오를 때를 훌쩍 넘어버린 그것들을 매일 마주하기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일 년 내내 마당이 탐스럽고 싱그럽기를 바라는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며 마당에서 나는 채소들이 반갑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요 몇 해의 그 혹독했던 여름 나기를 다시 되풀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와락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산문에서 박완서가 얘기했듯이 '무공해 채소도 좋지만, 농사 이외의 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전문 농사꾼이 지은 걸 사주는 게 도리일 듯' 싶기도 하나 우리 동네는 그이가 살던 아치울과는 달라 '온갖 과일과 채소 이름을 외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는 채소 장수'가(박완서, 호미) 오기에는 지나치게 높고 길도 좁아서 싱싱한 채소를 구하려면 차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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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굽는 것이 제일 간단하다. 소금과 후추를 뿌려 올리브유에 구운 순무는 달고 즙이 많다. 고수는 남편의 아침 수프에 몇 줄기씩 넣어보기도 했으나 날이 더워지면서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빨라져 결국 감당을 못하고 꽃이 피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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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 완두를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샐러드를 염두에 두고 납작 완두 여섯 알을 심었다. 줄을 매고 덩굴을 올렸는데 처음 하얀 꽃이 피고 작은 꼬투리가 달릴 때는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어여쁘더니 감당 못할 만큼 맹렬하게 자라 어어 하고 바라보는 사이에 세어버렸다. 샐러드로 먹기에는 글렀다 싶어 그대로 놔뒀더니 제법 굵은 콩알을 두어 컵 얻을 수 있어 기뻤다. 얼결에 생긴 완두콩을 해결했다고 마당이 훤해진 건 아니다. 요맘 때는 마당에 나서기만 하면 뽑아버릴 게 없나 둘러보게 된다. 여름이 무르익으면 없으면 못 살 것 같던 꽃들을 뽑고 자르는 게 새로운 취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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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국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꽃눈을 가득 달고 아슬아슬하게 겨울을 난 수국들을 데리고 봄을 넘어가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새로 들인 수국의 꽃을 이듬해에 다시 보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웠다. 작년에 깻잎 수국이란 단어를 배웠다. 잎만 무성하고 꽃이 피지 않는 수국을 일컫는 말이고 그만큼 마당에 심은 수국이 꽃이 피기란 수월하지 않다는 거다. 마당에서도 거뜬히 겨울을 나고 이듬해 꽃을 피우기도 하는 품종이 따로 있다는 걸 알고 바로 구해 심었다. 세숫대야만큼 커다란 보라색 꽃 뭉치다. 꽃이 피어 반갑기는 하되 너무 커서 민망하고 걱정스럽다. 목수국도 겨울을 잘 난다고 해서 몇 그루 심었더니 이 또한 기세가 맹렬하다. 몸에 맞는, 잘 어울리는, 편안하고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는 것보다 마당에 나름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 더 어렵다. 이 여름 호스를 들고 땀을 흘리는 일도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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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은 요즘 이렇다. 잡풀과 채송화, 마가렛이 사이좋게 산다. 손이 덜 가는 마당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아무리 최근 가든 디자인의 경향이 '식물의 자생력'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오경아, 안아주는 정원) 흐른다고 하지만 이 작은 마당을 그렇게 놔뒀다간 나간 집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밑이 빠진 바구니에 잡초와 시든 꽃송이들을 담아 오가느라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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