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먹갈기 좋은날 Sep 30. 2021

오늘의 시, '일상'의 가치

- 소소한 행복에 눈뜨다 

오늘의 시일상의 가치       


   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시는 생각을 간결한 언어로 표현한 글이다. 우리에게 문학작품으로 시를 해석해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고 간결한 언어로 표현했기 때문에 작가의 뜻이 함축적이고 그가 내포하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시가 지어진 시대를 이해해야 했고, 시인이 처한 상황도 알아야 했으며 사용된 단어가 어떤 의미로 표현된 것인지 해석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린이였던 그 때, 초등학교 때라고 한다면 글짓기 시간에 시를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가 시인이 되어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훌륭한 예술품은 작가의 정신이 깃들어있고 그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그 예술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감상자 역시 어떤 시대상황에 있는지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천시되던 예술품이 시대를 지나 재조명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예술에 대한 이해는 이데올로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현재 시는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 오늘날에도 많은 시가 지어지고 있겠지만 예술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그리스 시대 시는 공간이 있어야 했고 관객이 있어야 했으며 낭송과 노래 시연에 걸리는 시간을 투자해 모여야 했다. 동양의 시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 작가는 중국 당대 시인 두보가 있다. 두보의 한시는 많은 예술가들이 읊조리고 되뇌었으며 그림에 들어가는 화제로도 선택했다. 예로 강세황의 <수각산수화>에는 두보가 53세에 지은 시의 일부가 쓰여 있다. 두보의 한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의 한시를 그림에 담고 있는 것이다.

시인들이 시를 짓고 향유하던 방식 중 한 가지는 노래였는데, 이를 시조창이라고 한다. 그리스 시대 시인들이 낭송하던 것과 닮았는데, 이런 모습이 마치 현대에 와서는 가요로 구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가요에 사용되는 가사는 사람의 희ㆍ노ㆍ애ㆍ락을 표현한다. 물론 지금도 시를 짓는 시인들이 있지만, 작사가들도 시인이다. 과거의 시가 가요라는 형태로 발전되어 향유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문학에는 조예가 깊지 못해 시가 어떤 형태로 변모하며 이어져왔는지 보다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작태는 일상, 즉 소소한 것에서 오는 행복이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시라는 것이 문자를 사용해 우리의 생각을 표현한 양식이라는데 근거하여 현대에서 우리의 일상을 기록하는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려한다. 

   우리는 굉장히 빠른 소비가 이루어지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 북, 인스타그램, 틱톡 등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짧고 간결한 표현기술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아주 손쉽게 터치 몇 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된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세상의 변화는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 향유하는 포맷을 통째로 변화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해 사진을 찍어 일상을 기록하고 어플 속 세상에 자신의 일상을 업로드 한다. 짧은글귀로 마음을 표현하고 마음에 드는 게시물에 댓글을 달며, 공감을 갈망한다. 곳곳에 일상을 기록하는 시인들이 존재한다. 

    일상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일기를 써서 하루의 일과를 돌이켜보고 느낀 점을 적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에는 그림과 글이 함께하는 그림일기를 많이 썼을 것이다. 혹은 방학 숙제로 밀린 일기를 몰아쳐 쓰기도 했겠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매일매일은 힘들겠지만 오롯이 혼자만의 사색이 가능한 어떤 순간, 조용히 하루를 기록하고는 할 것이다. 그러니 기록의 도구만 바뀐 것이지 사람들이 일상을 기록하는 행동은 기본적인 욕구 같다.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하면 선사시대 암각화도 사람들의 일상이 기록된 그림이다. 요즘은 일상의 기록을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탑재된 카메라를 사용해 마음에 드는 순간이나 대상을 촬영하여 기록하는 것으로 변화된 것 뿐 이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의 생각을 타이핑하면 하나의 그림(사진)일기가 완성된다. 

   사람들이 공감을 쉽게 이끌어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감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노래도 그렇고 좋은 글귀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시대를 읽어야 하는 눈이 그 어떤 때보다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상을 기록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조선시대 화풍 중 한 가지인 풍속화를 가져와서 설명해본다면 풍속화는 사회풍자와 해학, 에로티시즘 등 서민의 정서를 담는 것을 소재로 삼았다. 김홍도에게 풍속화를 전담시켰을 만큼 풍속화를 인정했던 정조는 자비대령화원에서 풍속화를 그릴 때 “모두 보자마자 껄껄 웃을 만한 그림을 그려라”라고 지시했다. 웃음은 삶에 있어 없어서는 감정표현이다. 하지만 과거 문인들은 웃음보다는 심신수련을 우선했고 아취를 추구했다면 서민들은 감정을 표현하는데 거침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웃음을 유발하는 ‘해학’은 서민문화의 중요한 특징이자 정서다. 

   서민들은 웃음에 각박하지 않았고, 사람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또한 사회 부조리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날카롭게 날을 세워 대항하기 보다는 웃음을 통해 간접적으로 풍자했다. 대표적으로 봉산탈춤만 봐도 신분제도의 부당함을 해학적으로 그려내지 않았나. 

    이러한 풍자와 해학이 요즘에 일반 서민, 즉 대중들 사이에서 인터넷 댓글에 나타나는 드립문화와 농담 등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틈에서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유행한 시가 있다. 바로 하상욱의 시인데, 그는 스스로를 시팔이라고 소개하며 언어유희적 표현을 사용한다. 그의 시에는 삶의 애환과 사회에 대한 해학이 풍성하다. 하상욱의 시 중 하나를 보자. 

     

착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왜 이곳에           -지옥철-      


그의 시는 우리의 삶 속에 담긴 애환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그의 시가 흥미 있는 것은 제목이 뒤에 붙는다는 것인데, 일반적인 구도의 시 형식이 아닐 뿐더러 사람들이 내용을 보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일까 하며 호기심도 자극하게 되고 제목을 보고 나면 무릎을 치며 “아하! 그렇구나! 맞아!” 라고 공감하고 감탄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에게 일상이 중요해지고 그러한 일상을 공유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해진 세상은 서민문화의 부상을 재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시(詩)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데 힘을 싣는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글, 삶의 태도를 관조하는 글, 힘을 실어주는 글들도 동양의 정신을 담아내는 훌륭한 소재가 되지만 서민들의 감정이 거침없이 드러나며 웃음을 선사하는 해학적인 글들도 인정받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리스토텔리스가 비극을 우위에 두고 웃음을 유발하는 희극을 하위로 보았었는데 이 시각이 오늘에 와서 전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06화 '시인'은 누구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