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의 잡생각
중학교 때 난,
항상 전교 1등이었다.
한 겨울에도 집중을 해야 한다며
찬 물을 대야에 떠 놓고
발을 담그며 공부를 하다 동상에 걸리기도 했는데,
그만큼 무식하게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과학고등학교를
못 가게 하면서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중 3 어느 시점까지는.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여,
중학교를 들어간 어린아이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공부를 하기에 앞서
항상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었다.
(참고로 난 종교는 없다.)
대략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마음을 평화롭게 하며,
‘난 할 수 있다’를 맘 속으로 외치고,
당시 참고서 맨 앞에 있던 문구를
책상 앞에 붙여 두고
매일 10번 이상을 읽었던 것 같다.
“굳고 굳세어라.
우리는 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공상에 젖거나 허송세월을 위해서도.
우리에겐 해야 할 고된 일이 있다.
그리고 져야 할 많은 짐들이.
시련을 비껴 서지 마라.
당당히 맞서라.
이야말로 신의 선물이다.”
너무나 많이 반복해서 읽었기에,
아직까지도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문구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우리에겐 해야 할 고된 일이 있어야 하며,
져야 할 많은 짐들이 있어야 하는지,
(좀 편하게 살면 좋을 것 같은데..)
중학교 참고서에 적힌
혹독한 문구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시절에는 이 글을 보며
나의 나태함을 채찍질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명상 역시,
중 3 어느 시점부터 하지 않게 되었다.
육아휴직 기간.
한강을 나가 매일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이런저런 많은 책들을 섭렵하던 시기.
한강 둔치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많은 생각에 젖곤 했다.
그리고 내 인생의 후반부를 생각하며,
오랜 기간 하지 않았던,
명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라이딩을 하러 나와
20여분쯤 가다 보면,
낮 시간, 사람 하나 없이
나 혼자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중학교 때처럼 거칠고 무모하지는 않지만,
지나 온 내 인생을 뒤돌아 보고,
무엇이 나의 약점이었는지
스스로 엄격하게 찾아보고,
인생의 절반쯤을 산 지금,
내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처음에는 나만의 아지트가 된 공간에 앉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으나,
머릿속의 생각들이 정리가 된 이후부터는
정리된 내 생각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그때 다짐이 다르기는 했지만,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한 번에 2-3개 정도 아이템이었는데,
2-3달 꼴로 약간씩 바뀌었던 거 같다.)
[현재를 행복하게 산다.]
: 확신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다.
[즐거운 일을 한다.]
: 이미 내 것이 아닌 옷을 입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으니,
이제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즐거움을 찾는다.
[가정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다.]
: 결국 나중에 남는 것은
나와 평생을 같이 할 동반자이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고, 잘 되는 사람은 없다.
[실행한다.]
: 백만 가지 상상을 해 봐야,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으면 다 ‘똥’이다.
작은 일이라도 실행해야 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다.]
: 난 다 잘 될 거다. 안되면, 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토이다.)
물론 회사에서
힘들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절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건 1-2년 정도였고,
기본적으로의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기에
이 기간의 명상을 통해
다시 밝은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 이후로
가장 맑고 멀쩡한 정신으로
육아휴직 기간을 보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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