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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Dec 25. 2022

능력이 발현되다

병맛력자 1


“에이, 씨바. 이게 뭐냐고?”

 

 화장실 소변기에 몸이 딱 붙어버린 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너무 강하게 소변기에 몸이 부딪힌 탓에 팔이나 다리 중 어느 한 군데는 부러진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소변을 보다가 급작스레 생긴 일이기에 바지는 소변으로 뒤범벅이다.

다행히도 소변기에 아주 가깝게 몸을 대고 용변을 보다가 발생한 일이라서 이 정도의 통증으로 끝이 났지,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팔이나 다리, 또는 몸 중 어디 하나는 성치 않았을 것이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고, 화장실에서 휴지를 꺼내어 바지를 닦기 시작했다.

 

‘휴우… 이게 무슨 병맛 같은 능력이냐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능력이 처음 발현된 것은 불과 몇 주 전이었다.

 

몇 년 전 건강검진을 통해 전립선 비대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있긴 했지만, 병원에서 권유한 추적관찰을 하라는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아가다, 요새 점점 요실금 증상이 심각해짐을 느끼게 되었다. 분명 소변을 다 보고 잔뇨의 느낌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되었음에도, 지퍼를 올리고 나오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잔뇨가 다리 사이를 타고 내려옴을 느끼게 되었다.


‘헉. 이게 모야?’

 

 처음에는 당혹스러운 마음만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이제 소변이라도 보게 되면 소변기가 아닌 좌변기에 앉아 잔뇨가 남아 있지 않음을 확실히 확인하고서야 바지를 입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행동도 하루 이틀이지, 점점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병원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며, 회사에 들어가기 전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며 핸드폰으로 비뇨기과를 찾아본다.


 나이를 먹어가며 잠이 없어지는지, 9시 출근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회사에 일찍 올 필요가 없음에도 항상 7시 30분이 되면 회사를 출근하는 듯하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핸드폰으로 회사와 가까운 지역의 비뇨기과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비뇨기과 쪽과 유사한 내용이어서 그런지, 케겔운동에 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원활한 성생활을 위한 정력 강화운동이나, 요실금과 같은 증상도 이 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둔화시킬 수 있다는 기사이다.

 

항문에 힘을 주었다, 뺐다를 반복할 것.

한 번에 30번씩, 3 세트.

 

정말 효과가 있을까?

흡연 구역이나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괜히 창피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인터넷에서 알려준 것과 같이 항문에 힘을 주어 본다.

 

‘흡!’

 

순간.

내 몸이 눈 깜빡할 사이도 안 되는 사이 앞으로 밀려남을 느낀다.

 

“허헉! 응?”

 

분명 흡연구역에 서 있던 내가, 흡연구역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음을 발견한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 파악도 되지 않는다.

 

‘응?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제 먹은 술이 덜 깬 건가? 속은 쓰려도 머리는 아프지는 않은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다시 한번 항문에 힘을 주어 본다.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뒤로 밀려나는 듯 느껴지며, 내 몸이 아까보다 10m가량 앞으로 나아가있음을 발견한다.

 

‘이.. 이거 모야?’

 

이제야 꿈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 항문에 힘을 주면, 앞으로 나아가는 건가?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또다시 항문에 힘을 주어 본다.

항문에 힘을 주는 순간, 앞선 두 번의 경험과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내 몸이 순간이동을 하여 앞으로 10m가량 이동한 것이다.

 

‘뭐.. 뭐야? 이거 실화야? 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서.. 설마.. 초능력… 뭐.. 이런 건가?’

 

 무엇인가 대단한 능력이 내 몸에서 발생되었다는 놀라움과 기쁨.

동시에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믿을 수 없는 비현실감.


다시 한번 주변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흡연구역 주변에서 4-5번 이 능력을 시험해 봤다. 항문에 힘을 줄 때마다, 내 몸이 대략 10m 정도 앞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와 같이 투명인간이 되거나, 초인적인 힘이 있거나, 하늘을 날거나 하는 능력이 아닌, 항문에 힘을 줄 때마다 10m씩 앞으로 순간이동하는 능력이라니…

 

‘이… 이 무슨.. 병신 같은 능력이지?’

 

이른 아침, 회사 흡연구역에서 한바탕 난리를 친 후, 일단은 출근을 하고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병신 같지만 그래도 멋지기도 한 이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당장은 모르겠지만, 잘만 이용한다면 어딘가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말도 안 되는 신기한 능력이고, 발휘하기 위해선 병맛 같은 행동을 해야 하지만, 지쳐있는 일상에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에 찬다.

 

 


 


그 이후, 틈틈이 내 능력을 시험해 보기는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살면서 항문에 힘을 주는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용변을 보기 위해 괄약근을 밖으로 힘주는 것이 아닌, 괄약근을 안쪽으로 힘주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능력이 발휘된 이후에는, 나도 모르게 나의 모든 신경이 항문 근육에 집중됨을 느끼게 되었다.

회사에서 자리에 앉아 일을 하거나, 미팅에 들어가 회의를 하거나, 점심 또는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내 신경은 오로지 항문에만 가 있다. 그리고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던 항문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려고 하고, 또 힘을 주었다간 큰일이 나기에 의식적으로 힘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면,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도 모르게 항문에 힘을 줄 때가 발생하곤 하는데, 퇴근 후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한 번 시도해 보던가,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기 위해 편의점을 가는 길에 시도를 해 보던가, 아니면 바로 지금과 같이 소변기에서 용변을 보며 괜한 궁금증에 시도를 하여 낭패를 보던가 할 때이다.

 

 첫 2-3일은 정말이지 가슴이 쿵쾅쿵쾅 뛸 정도로 나의 새로운 능력에 대한 기쁨과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1주, 2주,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그런 기대는 사그라져 갔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항문에 힘을 주면 앞으로 10m 정도 나가는 순간이동을 어디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도 모르게 항문에 힘을 주어 낭패를 보기도 하고, 내 일상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있어 항문만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뇌가 항문과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게 된다.

 

세상 제일 쓸데없는 초능력. 병맛 같은 초능력.

병맛력자라 불러야 하는 건가?

 

2주 차가 지나면서, 이 능력은 더 이상 기쁨에 찬 초능력이 아닌, 세상 제일 쓸데없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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