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의 잡생각
와이프는
먹는 것을 안 좋아한다.
본인의 말을 빌자면,
세상에서 요리하는 게 가장 싫고,
맛집이라는 곳을 왜 가서 줄을 서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그냥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음식이 와.. 맛있다.. 하며
먹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학교를 가는 아이들에게 해 주는 아침식사는
딱 2가지이다.
시리얼 또는 간장계란비빔밥.
애들이 밥을 잘 안 먹고,
또래보다 작아
매일 밥을 안 먹는다고 화를 내지만,
애들은 “뭐가 있어야 먹지?”라고 반문을 하곤 한다.
나 역시 공감이다.
와이프와 자녀교육과 관련하여
몇 번 언쟁을 하곤 했지만,
그건 단순히 의견 차이에 대한 이야기였을 뿐,
십 수년 동안
진짜 심각하게 내가 와이프에게
폭발한 것은 3~4번 정도인데
모두 ‘음식’과 관련된 일이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주중이야
내가 밖에서 먹고 들어오니 이슈가 없었지만,
주말이 되면
문제가 발생하곤 했는데,
바로..
삼시 세 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은 시리얼 또는 간장계란볶음밥.
점심은 피자, 치킨, 중국집 중 택일하여 배달.
저녁은 8-9시까지 안 먹다가
“모.. 먹어야 하나? 나는 배가 안 고픈데,
애들 뭐 먹이긴 해야 할 것 같고… ”
똑같은 레퍼토리이다.
본인은 배가 안 고프고,
아이들은 먹여야 할 것 같고,
고려대상에 나는 없고.
보통은
그냥 그냥 넘어가지만,
2~3년에 한 번 꼴로
‘이러다 죽을 것 같다.’라는 배고픔이
밀려오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에도 본인은 배가 안 고프다며
식사 준비 생각을 안 하고 있는 와이프를 볼 때,
폭발을 했던 것 같다.
“당신 배 안 고픈 거 알겠어!
근데 그건 당신이고,
다른 사람들은 배고파!
애들도 제때 먹여야 클 거고!
내가 밥을 하라고 해?
요리를 하라고 해?
가정주부면 식사 때가 되면
최소한 어디 배달음식이라도 시켜서
음식은 내놔야지!
점심 12시에 먹었는데,
밤 9시까지
본인 배 안 고프다고
아무 생각도 없다는 게 말이 돼!”
아이들 핑계를 대지만,
속으론 ‘이러다 아사하겠다..’는 느낌을 받으며
화를 냈던 것 같다.
TV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고 하는데..
딱 내가 그런 느낌을 느꼈을 때,
참을 수 없는 화가 났었다.
그때의 와이프는?
‘내가 죽일 년이지..’를 시전 한다.
그리고..
아사 상태의 나는 더 싸울 기력도 없다.
육아휴직 기간,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긍정의 마음으로 충만했던 시기.
더 이상 먹는 것으로 싸울 일은 없다.
요리하기가 취미가 된 나는
학교 가는 아이들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점심은 자전거를 타고 나가,
어딘가에서 때우고 올 수 있고,
저녁은 또 다양한 요리 실력을 뽐내며
만들어 손수 대접하기에,
반찬의 가지 수도 확연히 늘어난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배가 고프면
내가 시켜 먹으면 될 것을,
왜 배달 음식이라도 안 내놓냐고
와이프에게 불같이 화를 냈는지도 모르겠다.
P.S. 와이프도 나의 육아휴직 기간,
부모님 댁에 요리를 해 가며, 실력이 엄청 늘었다.
결혼한 지 십 수년이 지났는데,
기본 반찬 하나 만들면서
막 요리에 흥미를 가진 나에게
레시피를 물어본다는 게 어이가 없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