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헬조선

그들이 우리에게서 이 것만은 앗아갈 수 없을 것이다

by 엽서시

1.

세열수류탄.

K400. 중량 450g. 내장된 폭발물로 컴포지트B 130g. 살상반경 15M. 미군의 M67수류탄과 유사하지만 살상력은 더 뛰어나다.

K413신형수류탄. 중량은 260g으로 보다 경량화되었다. 내장된 폭발물은 컴포지트B 62g. 살상반경 15M.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보다 이전의 수류탄을 더 소형화 및 경량화하였으며 그럼에도 폭발력이나 살상력이 여전한 것이 특징이다.

교관의 목소리는 더위처럼 길었다.

감겨오는 눈을 떴다. 난생 처음 듣고 보는 지식들이 눈망울처럼 감박였다.

2시간을 걸었다. 군장을 지고 수류탄 교장에 도착했을 즘에는 시야가 노랗게 바래있었다.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 ‘하늘이 노랗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미 허옇게 바랜 유격복 위에 또 다시 허연 소금꽃이 번졌다.

엎어, 이 새끼들아.

교장에 군장을 내려놓는 순간 교관이 뇌까렸다. 조교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늘에서 땀을 식히던 훈련생들도 재까닥 대가리를 박았다.

이 새끼들, 정신 안차려?

왜 대가리를 박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아닙니다!

라고 외쳤다. 무엇이 아닌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이 새끼들, 목소리 이것 밖에 안 돼?

라는 말에,

아닙니다!

라고 외쳤다.

이 새끼들, 이거 안 되겠어. 지금 이대로 수류탄 던지면 다 몰살이야. 이 새끼들, 니들은 오늘 훈련 안 해도 돼.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 하나.

정신!

어떤 새끼가 하나라고 외쳤어? 네가 교관이야? 이 새끼들, 아직도 어리바리해가지고. 둘.

통일!

하나.

정신!

하나는 끔찍이도 길었다. 그 하나가 왜 유독 긴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몸뚱이와 모래밭 사이에 웬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대가리를 하늘로 쳐든 채 개미는 모래알과 모래알 사이를 걷고 있었다. 개미에게 있어 갑자기 드리운 그늘은 행운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체중을 견디지 못한 채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땀띠가 돋은 살에 까슬거리던 전투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느껴지는 건 뜨겁게 달아오른 팔이 천천히 삭아드는 것 같다, 이것이 전부였다.

일어서.

끝내 둘은 없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동작이 빠른 새처럼 고개를 쳐들고 일어섰다. 갑자기 일어서는 통에 머리가 흔들렸다. 그러나 나는 발마저 헛디디지는 않았다. 아니, 모든 생각은 사치였다. 단지,

힘들어?

라는 말에,

아닙니다!

라고 외쳤다.

잘 할 수 있나.

잘 할 수 있습니다!

군장 똑바로 정리하는데 5분 준다. 실시.

실시!

그 다음은 피알아이가 있었다.

나중에 논산에서 훈련이 끝날 무렵, 어느 상사가 피알아이의 뜻을 알려주었다. 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사격술 예비 훈련. 사격술 예비 훈련이라는 말을 나는 혼자 곱씹었다.

그 전까지 ‘피나고 알배기고 이 갈린다’는, 교관들의 어처구니없는 해설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해설은 진실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또 전진무의탁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것은, ‘피나고 알배기고 이를 갈아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 순번은 끝이나 다름없었다. 내 순번이 오기까지 나는 구르고 또 굴렀다. 생각은 필요 없었다. 단지,

호 안에 수류탄.

하고 조교가 외치면,

호 안에 수류탄!

외치고 무언가를 발로 차는 시늉을 한 후에,

몸을 날리면 그뿐이었다.

마침내 내 순번이 왔다. 차양이 드리운 곳에서 중사 하나와 조교 하나가 수류탄을 나눠주었다. 검은 원통형 종이곽이 녹색 알을 낳는 것 같았다. 그 알은 차갑고 둥글었다. 나는 그 무게를 손바닥에 쥐었다.

260g이다.

삼겹살 2인분이다. 삼겹살 2인분을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정말 이런 느낌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차갑고 끈적거리는 냉장육과 달리 이것은 또렷하고 분명했다. 손바닥을 지긋이 내리는 260g의 무게는, 그 정확한 원리와 작동방법은 모를지라도, 분명히 나를 죽일 수 있을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1사로,

1사로!

2사로,

2사로!

나는 3사로다.

3사로,

3사로!

나는 꺽꺽 잠기는 목소리를 찢어가며 힘겹게 외쳤다. 내 몸은 컨베이어 벨트에 들어간 냉장육처럼 3사로로 움직였다. 사로 안에는 방탄복을 입은 중사가 있었다.

허그타임.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의심은 순간뿐이었다. ‘통제실’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군인은 없다. 말 그대로, 중사가 나를 안아주었다. 비록 우리 사이에는 방탄복과 군복이 있었지만 살갗과 살갗이 닿는 그 순간이 너무 낯선지 나는 소름이 돋고 말았다.

36.5도를 한 낮의 온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체온으로 느낀다는 것은,

아예 다른 일이었다.

나는 방탄헬멧 그늘 아래 중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땀으로 무른 그의 눈꺼풀 아래에 있는 그 눈동자는, 마치 소나 다른 짐승의 눈동자와 닮아보였다. 순했고, 아마 집에 딸 한 두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선한 눈동자였다.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교관의 그림자는 그 눈동자에 없었다.

안전클립 제거.

안전클립 제거!

우수자는 안전고리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넣고, 좌수자는 왼쪽 엄지손가락을 넣는다. 나머지 손으로 수류탄을 감싸쥔 후, 사과를 쪼개듯 양 손을 벌려 안전고리를 제거한다.

안전핀 제거.

안전핀 제거!

우수자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좌수자는 왼쪽 엄지손가락을 젖혀 안전핀을 제거한다. 이 후 손을 놓게 되면 장약이 격발되어 5초 이내에 수류탄이 폭발하게 된다. 손을 놓으면 수류탄 내부에서 장약이 작동하는 딸깍, 하는 소리가 들리니 정신을 집중할 것.

엄지를 젖혔다. 안전핀이 퉁겨나갔다. 모든 것은 통제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수류탄을 옮겨 쥐고 다른 한 손을 표적을 향해 곧게 뻗었다. 돌아보지 않았지만, 중사의 눈이 내 손에 꽂혀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손에 내 목숨과 그의 목숨을 같이 쥐고 있었다. 그 무게는 260g이었다.

아직 통제실에서는 어떠한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순간 나는 의문이 들었다. 만일 내 엄지가 움직인다면, 중사는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소리를 질러 중사를 재빨리 호 밖으로 내보내는 데 5초는 충분한 시간이리라, 그러고 나면 나는 죽을 것이다, 별다른 고통도 없으리라, 장약이 신관을 다 태우고 나면 62g의 컴포지트B가 터지고, 그 찰나에 나는 절명하리라, 끝이 나리라.

내 엄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후에 이어질 시간은 자명했다. 나는 모든 훈련을 수료하고 이병이 되고 일병이 될 것이었다, 그 후에는 상병이 되고 병장이 되고 제대를 할 것이다, 그 후에는 다시 대학에 복학하고…….

투척!

던지기 전 나는 힐긋 내 옆의 중사를 돌아본 것 같았다. 그의 눈은 하얗고 검은 눈동자는 순박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놓았다. 탈깍, 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나는 목표를 향해 힘차게 오른손을 휘둘렀다. 손아귀를 벗어난 수류탄은 유유히 하늘을 날았다.

호 안에 몸을 웅크렸다.

하나, 둘, 세…….

쾅!

……엣!

어질한 기분이었다.

중사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그는 오늘 아마 십수 명의 훈련병의 어깨를 두드렸을 것이다. 모든 훈련병들은 통제에 잘 따랐을 것이고, 그는 진심으로 잘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외쳤다.

막사로 복귀했다. 다시 군장을 멨다. 2시간을 걸었다. 달아오른 아스팔트는 끔찍하게 뜨거웠다. 군화 안은 더욱 끔찍하리만치 뜨거웠다. 한 낮의 온도가 36도라고 했던가.

나는 모든 훈련을 수료했다. 그리고 이병이 되었다. 이후 일병이 되었고, 상병이 되었다. 그날의 수류탄 훈련 이후 나는 두 발의 실수류탄을 더 던졌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병장이 되었다.


2.

근무지에는 술집이 많지 않았다. 부대 정문에서 택시를 타고 서쪽으로 한 20분쯤 가면 ‘방석집’들이 즐비하다고 했다.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가면 시내가 있었는데, 시내에는 바가 두 곳 있었다. 그중 한 바에는 미군들이 자주 들른다고 했다.

선임들은, 그리고 입이 말랑거리는 후임들은 방석집 이야기를 자주 했다. 자기를 두고 창녀 둘이 싸웠다 했다. 그 중 한 여자가 저 년 보지는 소래포구야, 했단다.

나도 그들처럼 낄낄거렸다. 낄낄거릴 수밖에 없는 곳이었고 낄낄거릴 수밖에 말이었다. 단지,

낄낄, 거릴 뿐이었다.

병장에 진급 하고 휴가를 다녀왔다. 4박5일이었다. 분대장이 하루 일찍 오면 자기가 술을 사겠다며, 어떡할래, 물었다. 친한 분대장이었다. 내가 굳이 하루 일찍 오지 않아도 내게 해꼬지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

예, 감사합니다.

복귀일 전날 저녁에, 도착했다. 나도 분대장도 사복 차림이었다.

야, 너 바 가봤냐.

의외였다. 나는 분대장이 나를 데리고 방석집에 갈 것이라고 내심 짐작했었다.

예, 몇 번 가봤습니다.

그래? 야, 같이 가자. 내가 바를 한 번도 안 가봐서.

우리는 택시를 탔다. 택시는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향했다. 시내에는 두 곳의 바가 있었는데, 분대장은 미군들이 가지 않는 바를 찾았다.

바는 어두컴컴했다. 아직 사람들이 희끔한 저녁 무렵이었다. 우리는 텅 빈 공간을 전세내기라도 한 것처럼 보무도 당당히 걸어갔다. 술집 한 가운데에는 긴 테이블이 있었다. 그 테이블 안쪽에서 바텐더들이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힐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경험이 있는 사람’답게, 분대장에게 샷이니, 마가리따니 주워들은 말을 내뱉었다. 검증되지 않은 말이었지만 검증할 말도 아니었다. 분대장은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고 일부는 적기도 했다. 아마 아는 여자랑 바에 가려나보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야, 시발, 너 대학 어디 다닌댔지?

그가 물었다. 아마 각자 세네 잔 쯤 삼키고 났을 즈음이었다.

네, 그게.

이 새키, 공부 잘했네.

야, 시발, 나도 공부 좀 했어, 고등학교땐, 마.

그는 자신이 왜 어려서 군대에 왔고, 왜 말뚝을 박았는지 구구절절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순간 술은 썼고 술잔은 가벼워졌다. 아무리 입에 가볍게 올려놓아도 가난은 우울하고 묵직하고 끈끈한 것이었다. 그가 그의 가난을 털어놓는 동안 나 역시 나의 가난을 생각했다.

그의 가난도 나의 가난도 구구절절히 늘어놓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어딜가나 있을법한 평범한 가난이었다. 돈이 없어서 사흘을 굶는 가난은 아니었다. 그도, 나도 삼시세끼 제 때 먹었다. 그래서 그의 가난도, 나의 가난도 평범했다. 그러나 어쩌다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껌처럼 질기고 성가신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담임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이유는 머리를 깎지 않아서, 였다. 내 머리를 9mm 바리깡으로 민 게 고작 일주일 전이었다. 그래서 그는, 담임이 머리를 깎으라 했는데 깎지 않고 반항했기 때문에, 로 이유를 바꿨다.

젖혀.

고개를 젖혔다. 그는 뺨을 때리지 않고 목을 때리는 것으로 유명한 선생이었다.

짝.

그러나 내겐 달랐다. 그의 손바닥은 어김없이 목을 빚나가 여지없이 내 뺨을 두들겼다. 나는 내가 맞는 이유가, 내 어머니가, 혹은 내 아버지가 그에게 촌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짐작했다. 뺨을 한 대, 두 대, 세 대……, 맞는 동안 나는 나의 가난을 한 번, 두 번, 세 번……, 생각했다.

나의 가난은 평범했다. 그래서 내게 가난은 비참하고 절망적이라기보다, 지루하고 성가신 것이었다. 언제나 공원 너머 그 곳에 똑같이 서 있는 주공아파트처럼, 가끔 색깔을 달리할 뿐이었다.

꿈을 바꾸고, 옷은 바꾸지 못하고, 조금 더 땀 흘리고, 조금 더 시간이 없을 뿐이었다.

분대장의 가난은 나의 가난보다는 조금 더 질겼다. 그래서 그는 대학에 붙었지만, 대학을 가지 않았다. 대신 군대에 왔다. 말뚝을 박고 부사관이 되었다. 그는 이제 평생 말뚝에 묶인 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우리가 한참 서로의 가난을 주워 넘길 때였다. 문득 우리는 말을 멈췄다. 머리를 높게 묶은 바텐더의 콧소리가 높아졌다.

어머, 오빠 왔네.

‘그놈’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주위는 어느새 사람들로 웅성거렸지만, 빈자리가 없지는 않았다. 그놈이 내 옆에 앉은 것은, 그 자리가 그놈의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놈은 ‘킵’ 해둔 자신의 술을 얘기했다. 바텐더들이 수선거렸다.

그놈은 천천히, 그리고 우아한 동작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과, BMW 로고가 선명한 차키와, 금색 라이터를 꺼냈다.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

퐁,

하는 소리가 그놈의 라이터에서 들리지 않았다면. 분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도 기억을 더듬었다. 입이 말랑한 후임 녀석이 미군에게 지포라이터 하나를 얻어오고 나서 라이터에 대해 사설을 늘어놓았던 게 생각났다.

그래, 뒤-퐁이라 했던가.

퐁,

하고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나도 모를 감정이었다. 학교에서 강의실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묵은 기억들이 일었다. 어느 날 우산을 들고 아버지를 마중나갔을 때, 상계역 2번 출구 앞 구겨진 포장마차 옆에 숨어 흐느끼는 아버지를 보았을 때, 그 새끼한테 뺨을 한 대, 두 대, 세 대…… 맞을 때, 이모들이 다 새로 산 가방을 자랑할 때, 혼자, 관동대학증, 이라고 적힌 가방을 슬그머니 의자 밑으로 내리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 오빠, 미안해, 하고 떠나간 그 애의 소식을 몇 개월 뒤, 야, 걔 강남에서 외제차에서 내리던데? 하고 들었을 때, 한강 뚝섬에서 주머니에 있던 귀고리를 던졌을 때, 나는 후련하기를 바랐지만, 그 것이 채 가라앉기 전에, 검은 그림자들이, 아마 잉어 비슷한 것이었을, 아귀다툼하며 그 것을 채가는 것을 보았을 때, 군대 가기 전 날, 미안하다, 갑자기 들려온 아버지의 목소리, 와 괜찮아요, 하고 내 목을 흘러나오는 낯선 목소리를, 들었을 때,

에도 차마 일지 않았던 감정이었다.

아, 이것은 궁금증이다.

궁금했다. 참을 수 없이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그만,

저기요, 실례지만-.

하고 그놈에게 말을 걸고야 말았다.

순간 테이블 안쪽의 바텐더들과, 분대장이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단지,

실례가 아니라면,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묻고 싶었다.

그놈이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젊었다. 사실 제일 먼저 떠오른 두 글자는 ‘미필’이었다. 그는 내 나이 이상, 혹은 분대장보다 어렸다. 아니, 아니다. 미필이라니. 그는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추었다. 무언가 욱, 올라오는 것을 가라앉혔다. 선한 눈이었다. 피부도 맑고 깨끗했다. 입에도 선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어떤 질문이라도 대답해 줄, 그런 얼굴이었다.

부자는 어떤 기분인가요?

나는 묻고야 말았다.

야, 이 새끼, 사고 치겠네, 정신 안차려?

분대장의 손이 내 뒤통수를 갈겼다. 그놈은 싱긋 웃더니, 다시 돌아앉았다. 끝난 것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단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취한 것처럼 중얼거리고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니, 정말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분대장이 한 잔을 더 시켰다.

야, 이거 마셔라.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고, 이거 마시고, 다 잊자.

무엇이 죄송하고 무엇을 잊으란 것인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단지,

나는 마셨다.

그리고 기억을 잃었다. 그 한 잔이 안전핀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젖혔고,

쾅!

남은 기억은 파편과도 같았다.

바를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남쪽으로 다리를 건너 분대장의 관사에서 잤다. 그는 내게 침대를 양보했고, 나는 중얼거리듯이,

감사합니다.

말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부대 앞에서 해장국집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복귀했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부자로 살면 어떤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 놈은 내게 가난한 것이 어떤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왜 그놈은 그게 궁금하지 않을까.

나는 단지 그 게 궁금했다.


3.


단풍진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나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모두 걷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면서,

오랫동안 서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가는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만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하였습니다.

길은 길에 이어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물으면서.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짝, 짝, 짝, 짝.

박수소리.

여러분도 아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입니다. 자, 아마 이 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시는 분 있으신가요? 아마 없을 겁니다. 다들 화장실에서라도, 한 번 쯤 보셨을 거에요, 그쵸?

하, 하, 하, 하.

웃음소리.

스물세 번 이다.

내가 이 인턴 자리에 앉아 교육을 받기 까지, 떨어진 회사의 수.

스물세 번의 탈락과 스물네 번의 도전 끝에 얻은 것은 왕좌도 아니고, 백작의 성도 아니었으며, 고관대작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철밥통도 아니었으며, 정규직도 아니었다. 그렇다. 내가 얻은 것은 인턴자리였다.

두 손과 두 발로 헤아리고도, 세 번이 더 남는다. 그 숫자를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숨이 막혔다.

양복을 입고 올 필요는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치였고, 입고 올 필요 없다잖아, 면서 아버지는 호기로웠다.

양복을 입지 않은 것은 나 혼자 뿐이었다.

나는 애써 태연했고, 사실, 애쓰지 않아도 태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래서 숨이 막혔다.

직원들의 자리에는 격벽이 있었다. 내 자리에는 아무런 격벽도 없었다. 사무실 한 가운데, 고객들이 오면 앉아서 기다리는 테이블이 내 자리였다. 내 자리는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용무가 있는 고객이 오면, 나는 자리에서 쫓겨나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 하염없이 서성였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A4용지가 든 박스를 날랐다. 비품실은 4층이었는데, 사무실은 8층이었으므로, 그리고 우리는 바쁠 때 괜히 엘리베이터를 사용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므로, 나는 양 손에 A4용지가 든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이런 일은 사실 굳이 스물세 번 씩 떨어지지 않아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했다.

두 얼굴은, 때로는 한 얼굴이었는데, 그 얼굴은 미지근했고, 그 얼굴을 떠올릴 때 마다 나는 무언가, 아니, 무엇도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얼굴만 생각하면 무엇이든 참을 수 있었다.

그래도 힘들 때면 피알아이를 떠올렸다. 그래, 전진무의탁. 내가 배운 것처럼,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것은, 피나고 알배기고 이가 갈리는 것’이었다.

나를 데리고 어디에 가든, 무엇에 쓰든, 나는 참을 수 있었다.

지하철이 끊기고, 택시비를 주지 않아서, 회사 앞 지하철 역 앞에서 졸다가, 편의점에서 산 세면도구로, 간단히 씻고 출근을 하고, 어, 왜 자네는 옷이 똑같애, 하는 말을, 야, 택시 타고 가면 되잖아, 했던 놈의 입에서 들어도,

나는 참을 수 있었다.

때때로 인턴들은 모여 교육을 들었다. 인턴들만 듣는 교육이 있었고, 신입사원들과 같이 듣는 교육이 있었다. 기업가 정신 혹은 회사 이념,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꼼꼼히 필기했고, 하품을 했고, 단지,

졸지는 않았다.

인턴으로 선발된 인원은 총 34명이었다. 이 중에 성적 상위권 10퍼센트는, 정직원으로 선발하겠다고 했다. 그 밑으로 10퍼센트는 이미, 임원과 직원 자녀로 채워져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니 나는 단지,

꼼꼼히 필기하고, 하품을 하면서도, 졸지 않는 수 밖에 없었다.

청년 기업가의 강의가 있었다. 카페로 성공한 청년이라고 했다. 청년이라고 했지만, 강연대에 오른 사람은 여자였다. 나는 내 편견을 탓했다. 강의는 프로스트의 시로 시작했다.

유인물을 다시 보았다. 강의 제목은,

청년 기업가 정신,

-헬조선 성공의 법칙, 흙수저 깨부수기.

였다.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

는 소제목이 밑에 붙어있었다.

프로스트의 시가 끝나기 무섭게, 그 다음부터 숫자들이 즐비했다.

그녀의 카페는 작년 기준 매출액 127억원, 올해 230억원을 전망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기업, 이었다. 그녀가 카페 창업을 결심한 것은, 놀라지 마시라, 21살 때의 일이었다. 주몽이 12살 때 고구려를 건국한 것과 무엇이 다를 성 싶었다. 그 성공의 비결에 놀라 나는 유인물을 빠르게 넘겼다.

그녀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그녀의 창업자본금은, 국가장학생 장학금 1,000만원과 주식처분금 3,000만원, 그리고 21살 까지 뼈빠지게 모은 용돈 3,000만원이었다. 주몽이 알에서 태어난 것과 무엇이 다를 성 싶었지만, 성공의 비결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무려 8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서 사업을 이어나갔단다. 주몽이 엄수(淹水)에 이르러 “나는 해모수와 하백의 자손이다.”고 외치니 자라와 고기들이 다리를 놓아 준 곳과 무엇이 다를 성 싶을 수 밖에 없는, 대목이었고 차라리, 신화에 가까운, 아니, 분명한, 신화였다.

그녀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인을 설득했고, 그리고 2호점을 내면서부터 월 매출이 급등하면서, 이어서 3호점과 4호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드디어 사업은 탄탄대로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자, 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항상 잃지 않았다고 했다. 용기는 꿈에서 비롯하고, 용기가 노력을 만날 때 그 꿈이 현실이 된다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유인물을 구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헬조선, 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피알아이'나 '전진무의탁'과 달랐다. 씹어도 씹어도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나보다 조금 더 가난했던, 그래서 어쩌면 지금쯤, 방탄복을 입고, 어느 수류탄교장 사로에서 어떤 훈련생을 안고 있을, 내 분대장에게 물어본다 하여도 그 역시 헬조선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물론 답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좆 같다는 거 아냐,

답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좆 같은 건 전과 마찬가지 아니냐, 하고 물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 혹은 그에게, 헬조선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사실 열대우림에 사는 개구리에게 열대야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헬조선에 있었다. 아니, 당신들이 무엇이라 부르건 나는 상관치 않으리라. 서류에서만 스물세 번을 떨어졌을 때 나는 헬조선에 있었다. 복학을 했을 때에도, 제대를 했을 때에도, 병장이 되고 상병이 되었을 때에도, 일병, 이병이었을 때도, 모든 훈련을 수료했을 때에도, 그 애에게 주지 못한 팔만 원 귀고리를 한강에 집어 던졌을 때도, 그러다 주저앉아 흐느꼈을 때도, 거실에 누워 잠든 어머니를 보았을 때도, 초등학교 무렵, 우산을 들고 아버지를 마중 나갔을 때, 흐느끼는 아버지를,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질 그 부터 아마 나는 이미 헬조선에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이 헬조선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정자와 난자로 갈라져 있을 때 마저도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헬조선이 무엇인지 모른다. 기회 박탈이 무엇인지 모른다. 흙수저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들은 곤충이 저에게 달린 더듬이나 날개를 익숙해하듯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럼 질문 있으십니까.

강연이, 끝나가고 있었다. 재빨리 손이 올라왔다. 당연하게도, 그들 모두는 인턴이었다. 그것이 어떤 강연이건, 인턴만이 질문을 했다. 질문을 함으로써 우리는 답을 했다고 믿었다.

퐁.

내 머릿속은 한 가지 감정으로 가득했다. 드문 감정이었지만, 낯설지 않은 감정이었다. 알 수 있었다. 아, 궁금증이.
내 시야가 노랗게 바래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도 그쯤이었다. 눈을 깜박이고, 비벼보아도, 세상은 여전히 노랬다. 손에는 260g의 무언가가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손을 들었다.

수류탄을 들지 않은 왼손을, 표적을 향해 쭉 뻗었다.

표적은, 분명했다. 강연자가 나를 지목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어섰다. 이미 안전핀은 튕겨나가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인사팀 직원이 벙 찐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사무실 직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그들의 눈빛은, 그날 수류탄을 든 나를 바라보던 중사의 눈빛과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당신의 헬조선은 니까?

투척. 내 목소리도 아마 꺽꺽거렸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질문은 유유히 소리의 속도로 날았다.

대답 없으시지만, 다시 묻겠습니다. 가난이 어떤 기분인지 아십니까?

강연자가 마이크를 떨어뜨렸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부자는 어떤 기분입니까?

하나, 둘, 을 속으로 헤아렸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내 질문은 적대적이었다. 아무도 이 질문이 왜 적대적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내가 ‘그들’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분명했다. 어느 사격통제관이라도, 내 뒤통수를 수 차례 후려갈겼으리라. 이 강의가 끝나고, 사무실에서 내가 할 일은, 단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중얼거릴 뿐이겠지만, 단지,

나는 궁금했다. 그 뿐이었고, 단지,

내가 표적을 맞추었는지, 그것을 생각했다.

수류탄 훈련에서 우리는 적에게 수류탄을 던지지 않는다. 그저 더러운 물이 가득한, 호수에 떠 있는 파란색 부이, 그 것이 표적이다. 가짜, 인 셈이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수류탄만큼은 진짜다. 내가 던진 수류탄은 물에 가라앉는다. 내 수류탄은 누구도 부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표적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다.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나의 조국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살아 온.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넝마 같은 이 조국.

나의 헬조선.

강연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적이 아니다. 그녀는 표적일 뿐이다. 그리고 아마 내 질문, 수류탄도, 그녀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차라리 자폭에 가까운 것이다. 차라리,
호 안에 수류탄!
이라도 외치고 엎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수류탄을 던졌다. 손 안에 무언가가 부스럭 거렸다. 구겨진 이면지였다.

-헬조선 성공의 법칙, 흙수저 깨부수기.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고,

벌써부터 한숨이 일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것만은, 금수저도, 사격통제관도, 저들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기에.
어째서인지, 눈앞이 부옇게 흐리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문득 그 부연 세상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맺혔다. 미지근한 눈동자였다. 그 얼굴들을 마주하는 순간,

퐁,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들이 나를 잘 했다고 할 것인지, 아니면 나를 원망할 것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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