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무 Jun 19. 2023

소개팅 에피소드 1


  살면서 딱 네 번의 소개팅을 해봤다. 연인으로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고, 모두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그중에 한 번은 첫 만남조차 안 해서 횟수에 포함해도 될까 의문이 든다. 어떤 경험이든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소개팅 역사의 처음은 엉뚱하고 허무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친한 언니가 나랑 잘 어울릴 것 같은 남자가 있다고 했다. 언니는 그때 파티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디제잉하는 학교 선배라고 했다. 둘 다 또라이 같은 구석이 있으니 잘 맞을 거랬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시끄럽게 CC를 했다가 헤어지고 ‘다시는 남자 안 만나’라고 했지만, 디제잉을 하는 남자라니 멋질 것 같아 수락했다. 

메신저로 먼저 대화를 나눴는데, 생각보다 대화가 잔잔했다. 디제잉하는 사람은 대화도 시끄러울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프로필 사진으로는 얼굴을 짐작할 수 없었다. 여러 장의 사진마다 다른 색의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다 달라 보였다. 나보다 두 살 위였는데 말투나 대화의 주제로만 미루어 보았을 때 그보다 훨씬 많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대면 대화가 전혀 즐겁지 않아 맥이 빠졌다. 게다가 방학이 시작됐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만날 장소가 애매하고 시간도 엇갈렸다. 만약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만났겠지만 둘 다 그 정도의 적극성은 없었다. 결국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다 연락도 뜸해졌고 그렇게 나의 첫 소개팅은 상대의 얼굴도 모른 채 끝났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고 영영 모르고 지나갈 줄 알았던 그를 만나게 된다. 언니가 기획한 파티에서였다. 

마침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던지라 바로 가볼 수 있었다. 건물 옥상에서 디제잉을 하며 간단한 칵테일을 파는 파티였다. 클럽이나 파티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던 나여서 꽤 들떠 있었다. 그때 언니가 지금 디제잉하는 사람이 그 오빠라고 말해줬다. 나는 드디어 내 소개팅 상대의 얼굴을 알게 됐다. 

언니가 그 사람에게도 귀띔을 했는지 디제잉이 끝나고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언니가 서로 소개하자 그는 상당히 해맑게 “하이파이브~~~” 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손을 마주쳤는데, 그 오빠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엄지를 들어 올려주며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언니가 말한 ‘또라이’라는 단어에 적합한 캐릭터인 것만은 분명했다. 얼떨떨하던 중에도 그의 외모가 프로필 사진보다 준수해서 (그 사진들 중 어느 것도 실물과 닮지 않았다) 내심 후회했다. 소개받고 만나지 못한 여자애를 만나 첫인사로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사람과의 데이트가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그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하이파이브를 외치던 그 순간만 또렷하다. 소개팅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그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가 여전히 열정 넘치고 엉뚱하게 살아가고 있을지 문득 궁금하다.          

                                                             


                                                                                                                        2023. 6. 19. 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