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크 Aug 26. 2024

17화 억대 연봉자에서 실업자로

이사와의 개운치 않은 첫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괜히 매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조직에서 관리하는 숫자가 괜히 신경 쓰이기도 했다.


회사 소문에 관심이 많은 조직원 중 하나가 내게 말했다.


"새로 온 이사가 대표님한테 저희 조직 이야기를 엄청 많이 한대요. 안 좋은 쪽으로"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회사에서 증거도 없이 그것도 무작정 감정싸움을 해봐야 하등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원들을 긴급하게 소집했다.


"회사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크게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특히 다른 조직과 감정적으로 충돌이 생기는 건 절대 안 됩니다"


기술 파트를 담당하는 임원이 나를 찾아왔다.


"새로 온 이사 어때요?"

"한번 짧게 만나본 게 다여서 잘 모르겠어요"

"어설프게 개발 쪽도 좀 아는 모양인데 대표님한테 저희 조직에 대해 굉장히 안 좋은 소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뭔데 난리죠?"

"아 저도 뭐 저희 조직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했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아니 딱 봐도 새로 들어와서 기존 조직들 흉보면서 자리 잡으려는 건데 너무 하수 같아요. 그러고 마케팅 쪽 힘 실어달라고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저희 회사에 마케팅 전문가들이 없었다 보니 저는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커머스는 마케팅이 필수라서.. 뭐 지켜보시죠"


일에만 매진하던 분위기에서 의미 없는 부분에 신경 쓰게 되는 변화가 달갑지 않았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고 업무를 보고 있는데 마케팅 이사가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에 잠시 뵈었으면 합니다'


어쨌든 본인도 일을 해야 하니 우리 조직과의 협업은 필수였을 것이다. 드디어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대가 되었다. 또 일을 하면서 서로 성과를 내면 초반의 오해가 풀릴 수도 있으니.


"제 욕을 하고 다니신다면서요?"


나의 기대는 이사의 첫마디에 산산이 부서졌다.


"뭔 소리예요?"

"텃세 부리세요? 아까 다른 임원이랑 제가 뭐 자리 잡으려 수 쓴다 그러셨다면서요?"


나도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다.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있겠죠? 전혀 감정 없고 그냥 검증하다는 뜻이니 그분 여기에 부르세요"


잠시 후 이사와 함께 입사한 팀장 하나가 들어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사는 말했다.


"아까 들었다던 말 다시 해봐"


우물쭈물하던 팀장이 말했다.


"아니.. 그게.."

"추궁하려고 모신게 아니니 편히 말씀하세요. 우연히 아까 저희 대화하는 걸 들으신 거 같은데 제가 어떤 말을 했다고 말씀하셨나요?"

"별말씀 안 하셨습니다..."

"제가 마지막에 어떤 말했는지도 들으셨죠?"

"마케팅이랑 커머스 협업이 기대된다고...."


이사의 당황한 표정이 통쾌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면 한마디 덧붙였다. 


"회사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끼리 이런 자리 더 이상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나오고 안에서 고성을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얼마 뒤 기술 담당 이사는 이유 없이 퇴사를 했다.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분위기에서도 업무에는 최선을 다했다. 영업으로 새로운 플랫폼을 확보했고 매출도 조금씩 더 꿈틀대기 시작했다. 내가 늘 경험했던 J 커브의 초입 같았다.


임원회의에서 또 대표는 우리 조직을 칭찬했다. 마케팅 이사의 굳은 표정이 그때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가 나를 호출했다.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케팅 이사가 커머스 조직원 한 명한테 일을 하나 부탁했는데 대뜸 다른 조직의 지시는 받지 않는다 그랬다네요. 아무리 그래도 자기보다 직급 한참 높은 임원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에요? 조직원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충돌을 피하라고 했건만.. 일이 터져버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관리에 신경 쓰겠습니다. 다만 그런 일이 있으면 마케팅 이사가 저에게 먼저 이야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드네요"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해 주세요"


그날 이후 대표의 태도가 묘하게 변했다. 숫자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숫자에 도달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물어봤다. 이미 입사 전 협의한, 목표로 한 기간이 있었기에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달성이 가능해 보인다고, 지금 중요한 시기라고 말을 했지만 대표는 그 시기를 얼마나 앞당길 수 있을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답을 원했다.


기획전 하나가 아쉬운 매출을 기록했다. 늘 잘될 수는 없기에 지금까지도 있었던 일이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대표는 크게 아쉬움을 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가 날 호출했다.


"지금 회사의 판단으로는 현재 브랜드력으로 목표하는 매출을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먼저 누구나 알게 마케팅을 한 뒤에야 판매가 힘을 얻을 것 같습니다. 당분간 커머스 관련 활동을 중지하려고 해요"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불과 2주 전까지 우수한 조직으로 칭찬받았는데 한순간에 쓸모없는 조직 취급이라니.


"일단 조직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다른 조직과 통합하려고 하는데 원하시는 조직 있으시면 우선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갑자기 사형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지만 나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정신을 집중했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반응이 없었다. 슈퍼맨의 힘은 마치 사라지기라도 한 듯 나타나지 않았다.


회사에서 더 이상 끌고 가고 싶지 않다는 조직의 수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모든 조직원들이 안전하게 다른 조직에 안착하는 것을 지켜본 후 나는 퇴사 의사를 밝혔다.


치욕스럽기도 하고 분노가 일기도 했지만 이때 나는 전혀 몰랐다.


이 정도는 몰락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