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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백고지엔 눈꽃 사람꽃

by 무량화


지난해 일월 초였다.

아침나절, 흰구름 한 필 두른 백록담이 올라오라고 눈짓 보냈다.

채근하지 않아도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주르륵 마음 먼저 달려갔다.

전날 일기는 고르지도 않았을뿐더러 바람 세찬 데다 눈발마저 자욱했다.

올겨울 들어 최고 추운 날씨라기에 온종일 두문불출 방콕모드를 지켰다.

간밤 산간에는 제법 눈 내린 터라 영실까지만 잠깐 다녀올 생각이었다.

당분간 혹한 이어질 거라 예고했기에 중무장을 갖추고 용감히 출발했다.



영실 인근엔 희끗한 눈이 엷게 깔려있을 뿐, 영 기대에 못 미쳤다.

천백고지에서 내리려다가 좀 더 높은 데면 혹시 모르니 한 코스만 더 가자 싶었다.

욕심이 화근, 올라가기는커녕 내리막길 도로가 이어졌다.

내처 달려서 당도한 어리목.

천백고지를 지나치면서부터 눈꽃 희미해졌으며 눈에 띄게 적설량도 낮아져 하차를 서둘렀다.

산간 일기는 변화무쌍하기 이를 데 없어 하늘빛 파랗다가도 금세 잿빛으로 변하며 눈발 흩뿌렸다.

어리목에서 어리둥절 맹해진 채 잠시 엉뚱한 장소에 불시착한 비행체처럼 엉거주춤 서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설기 등반을 계획한 게 아니라서 등산로 대신 길가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기만 했다.

도로변 숲에도 별로 눈이 쌓여있지 않아 어리목에 비해 운치 있던 천백고지로 되돌아갔다.



인파가 몰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차량이 무질서하게 뒤엉켜 복작거리는 눈길로 내려섰다.

바로 앞 나목 가지에 눈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주목 향그런 잎새에도, 시누대 밭에도, 청미래덩굴에도, 잡목 숲 앙상한 가지에도.

만화방창 피는 꽃만 꽃이더냐, 낙화도 꽃이요 눈꽃도 꽃인 것을.

천지사방에 흐드러진 눈꽃을 즐기는 선남선녀뿐인가.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 나들이객이 적잖았다.

눈꽃에 싸인 천백고지 완만한 비탈은 대자연 품속 아이스링크로 변했고.

어린이들은 쌓인 눈으로 이글루인지 터널인지 만들기에 골똘했으며 어린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눈썰매 타며 신나는 동심 까르르 웃음보 터트리자 순백의 눈꽃 하르르 머리 위로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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