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초식동물도 육식동물도 아닌 잡식성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이 어떤 종류의 먹이를 즐겨 취하는지를 이르는 게 식성이다.
실제로 새는 곡식과 과일 풀을 쪼아 먹고 작은 벌레나 곤충도 잡아먹는다.
몸통이 큰 새는 심지어 들쥐나 비암까지 먹잇감으로 노렸다가 공격한다.
'자연계의 청소부'라는 시식성(屍食性) 동물인 까마귀나 수리 같은 조류는 어쩐지 게걸스러운 하이에나가 연상된다.
한편 동남아에서는 고기잡이 명수인 가마우지를 훈련시켜 고기를 잡는다.
노끈으로 목이 묶였기에 잡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한 가마우지는 어부 좋은 일만 시키는데, 일본은 잽싸게 이를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받아
중요민속문화재로 등록시켜 놓았다.
조류의 식성이 잡식성임은 애진작에 경험으로 알았다.
어릴 적 우리집 안마당에는 어미닭 품에서 빠져나온 병아리 떼가 양지에서 새싹을 쪼으고 있었다.
온갖 새순들마다 식성에 맞는지 삐약거리며 맛나게 뜯었지만 쑥만은 본숭만숭했다.
봄비라도 내린 다음이라면 기어 나온 지렁이를 사정없이 물고 늘어지는 병아리를 예사로 보았다.
그 먹잇감은 암팡지게 패대기질을 쳐 기절시켜서 먹어치우곤 했다.
병아리 두 마리가 서로 한쪽 끝을 물고 양켠에서 실랑이질할 적도 있었다.
병아리가 부화되면 처음엔 귀한 달걀을 삶아 노른자만 잘게 부수어주다가 차츰 노란 좁쌀에서 싸라기, 나중엔 보리쌀을 모이로 뿌려주었다.
약병아리만 돼도 송사리 메뚜기 개구리까지 부리로 콕 찝어 게눈 감추듯 삼켜버렸다.
식성으로 말하자면 순토종에 촌스럽고도 별난 내 식성이야말로 크루즈여행 내내 빛을 발했으니...ㅠ
샐러드와 과일로 끼니를 때우다시피 했으며, 하루 한번 정찬을 먹고 나면 안 그래도 멀미 비슷한 걸 하기도 했지만 오이피클로 입가심 해야 됐다는.
실하게 맺힌 갓씨 꼬투리와 배추씨 알갱이를 새들이 살뜰히도 쪼아 먹었다.
특히 비교적 자잘한 갓씨는 꼬투리 채로 뜯어 먹혔다.
마른 장다리 줄기 사이로 늦게사 꽃대 올린 자주상추는 씨가 여물지 않아서 제외,
그러나 삼각형으로 각진 데다 가시까지 돋은 시금치씨도 새들의 공격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어렵사리 갈무린 씨앗들과 빨간데 얹힌 게 시금치씨다.
덩달아 키를 세운 실란트로도 하얀 꽃을 잔뜩 피어 올렸다.
씨앗 여물지 않아 새들의 공격 피한 채 아직도 이파리 싱싱한 아욱.
쭉쭉 뻗은 아욱대 아래 기를 못 펴는 자주 상추는 이때껏 꽃대도 못 올렸다.
이곳 기후대가 원산지와 엇비슷하기에 혹시나 하고 치아씨를 뿌렸는데 새싹이 귀엽게 돋아났다.
샐비어 닮은 꽃이 피고 씨앗 여물어 치아씨를 안겨줄지 어떨지 앞으로 계속 지켜볼 일이다.
다시 본론인 새의 식성으로 돌아가서... 뒤뜰 채마밭에 장다리꽃 유채꽃 흐드러지더니 곧이어 즐기마다 씨앗 꼬투리가 실하게 맺혔다.
알이 통통해진 씨앗이 채 익기도 전인데 뭇새들이 몰려와 씨앗주머니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어찌 알았을까? 시각으로도 아닐 테고 후각도 아닌 먹이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일까.
먹거리인 줄 용케도 알고 떼거리로 마구 달겨들어 밭떼기 째로 아예 작살을 내려 드는 동네방네 새떼.
새들이 어찌나 극성스럽게 덤벼드는지 웬만하면 사이좋게 나눠먹자고 배려도 하련만, 하도 알뜰살뜰 쪼아대니 밉쌀스러웠다.
동글하니 작은 배추씨나 무씨는 먹을만하다지만 뿔이 돋은 시금치 씨까지 먹어치우는 데는 어이가 없었다.
당하고만 있을 나도 아니었다.
종묘값 지출 이전, 이미 맛본 달고 부드러운 시금치며 연하고 참한 알타리무 종자를 건지려 새들과 한동안 신경전 벌이며 온갖 수단 동원시켰다.
못 입는 옷가지로 허수아비를 만들어도 보고, 반짝대는 풍선을 사다 띄워도 보고, 얇은 천으로 망을 씌우기도 하고.
하다 하다 안돼 멍이를 텃밭 가까이 데려다 매 놓기도 했다.
그 바람에 딸에게 한 바가지 잔소리만 들었다.
집에서 개를 묶어 키우면 동물학대로 고발당해 멍이를 빼앗기거나 벌금을 문다며, 엄포인지 뭔지를 속사포로 쏟아붓자 엉겁결에 당해 얼떨떨 띵~.
게다가 얼마나 먹겠다고 새랑 싸우냐는 핀잔에, 그깟 씨 종묘상에서 사면될걸 괜한 짓 한다는 지청구까지.
그런데 새들이 입을 대지 않는 씨도 있었다.
먹이에서 제외된 씨는 갓씨처럼 맵싸하거나 향이 짙은 고수나 쑥갓씨앗으로 아마도 식성에 맞지 않는 듯했다.
가장 늦게 씨앗 맺은 아욱씨와 보푸라기에 싸인 상추씨도 건드리지 않았다.
하긴 그즈음엔 앞뜰의 오디가 그들을 유혹했으리라.
제법 달렸던 오디가 여행 며칠 다녀오고 나니 말끔히 털렸다.
무녀리같이 오죽잖은 몇몇 개만 남기고 몽땅 다.
이제 얼마후면 이웃집 살구나무에서 맛있어 죽겠다며 재재거리는 새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살구가 눗누렇게 매달린 가지는 한동안 쉴 새 없이 흔들거릴 테고.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