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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6. 2024

추억 아스라이 어려있는 화엄사 홍매

남도 여정 2


간밤에 모처럼 엄마 꿈을 꾸었다.

느닷없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십여년만에 꾼 꿈이기 때문이다.

그간 엄마 꿈은 고작 두어 번이나 꿨을까말까다.

한번 보고 싶어도 어째 꿈길에서라도 좀 찾아와 주지 않는 걸까, 은근 야속해 한 엄마였다.

오랜만에 꾼 꿈이 소중해 얼핏 사라지지 않도록 꿈 내용을 공굴리며 한참을 가만히 누워있었다.

허망한 꿈답게 꿈이란 게 오분 정도만 지나도 희미하게 스러져버리기 때문이다.

꿈에서도 이렇게 누워있었다.

온화한 표정의 엄마가 나에게 이불 깃을 어깨 위로 덮어주던 생생한 느낌, 집이 아니고 호텔 같은 곳이었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느긋한 느낌이 들었다.

꿈은 허무맹랑하기보다 무언가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한 암시 또는 내면의 강렬한 소망을 전해주는 메신저라고 한다.

경험과 지식이 저장된 무의식의 창고 속에서 골라낸 감정, 그중에도 심층 저 깊은 곳에서 걸러진 감정이나 기억의 재편집이 꿈이다.   

허나 굳이 프로이드 식 꿈 분석을 동원하거나 해몽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꿈 분위기상 길몽이라 여겨진다.

아마도 이 꿈은 언니집에 보관되어 있는 엄마 사진 몇 장을 언니가 건네주어서일 게다.

그 가운데 한 장은 아들 대입 합격 소식을 듣고는 하늘 날 듯한 기분으로 엄마 모시고 화엄사에 가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 외에도 화엄사에서는 엄마랑 온 가족이 찍은 사진도 있으며 남편 친구네 가족이랑 찍은 사진도 있었다.



화엄사는 아주 여러 차례 찾은 절이다.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또는 산행 차 화개 쪽으로 지리산을 가면 들리는 화엄사였다.

완전한 깨달음을 뜻하는 화엄이나 어쩐지 장엄, 위엄이란 단어가 겹쳐지며 절로 엄숙 경건해지는 화엄사다.

오랜만에 와보니 담쟁이덩굴 추상화로 그려진 돌담을 한참 돌아야 했던 입구부터 완전히 변해버려 어리둥절해진다.

다만 단청의 호사 입히지 않고도 담담함이 외연스러운 각황전만이 석등 거느리고 옛 모습 그대로라 반가웠다.

정말이지 모퉁이 슬쩍 돌아 기둥이라도 얼싸안고 싶을 만큼 예전 그대로임이 고맙기만 했다.

낯설 정도로 큰 변화를 보인 화엄사이나 그래도 변함없는 석등이며 석탑도 미쁘기 그지없었고.

각황전 뒤편 토종 홑겹 단아한 동백꽃 밀밀한 숲 역시 옛 자태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제철 지났어도 여전 시선 붙드는 홍매화 선물처럼 아직도 기다려 줘 뜻밖의 기쁨이었으며 분분히 날리는 벚꽃잎은 환영의 꽃가루 같았다.

그랬다. 집 나가 오래 떠돌다 귀향한 탕자를 너그러이 품어안은 아버지처럼 화엄사 너른 품은 무한 푸근히 날 감싸 안아줬다.

반가이 달려 나와 초췌해진 탕자의 발에 신발을 신켜주고 귀한 반지를 끼워주는 대신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하얀 벚꽃잎....   

일체유심조라, 갑갑하게 만드는 황사 먼지도 타박 대신 생각 고쳐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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