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 해변길 걸으며

by 무량화


만장굴을 보러 나선 길, 도중에 코스를 바꿔 진빌레 밭담길 지나 월정해변 쪽으로 갔다.

구름 바삐 내달리는 걸 보자 갑자기 바닷가 풍차가 보고 싶었던 거다.

평대리 밭담 이어진 언덕을 넘어서니 풍력발전기가 바로 가까이에서 보였다.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까마귀 날갯짓처럼 슈욱슉~하고 들렸다.

테하차피 바람의 언덕에서는 수천 개의 바람개비가 어지럽게 돌았었지.

도로가에까지 윙윙거리는 소리가 마치 바람 거친 날 전봇대 우는 소리처럼 들렸댔어.

어느 땐, 억지로 울음 참고 참을 때 잇 사이로 삐져나오는 신음 소리와도 같았고.



해변가로 다가서자 바람은 더 기갈 세졌다.

격랑 치는 파도는 흰 포말 얼굴에까지 튕겨댔다.

용암 질퍽하게 흘러내리다 바다를 만나 차츰 식으며 까만 화산암으로 굳은 해안.

군데군데 조붓하게 깔린 모래는 의외로 희고 고왔다.

부산 근교 기장 어촌에서 <풍력발전기 설치 결사반대-어민들 다 죽는다!>란 현수막을 본 적이 있는데 여긴 어땠을까?

어민들 강력 반발을 무슨 수로 무마시키고 앞바다에 저리 당당히 바람개비 돌게 만들었을지.

아무튼 인근 지역이 유난히 거친 바람골 맞긴 맞는 모양이다.

후려치는 해풍 결결이 예리한 가시 같아 무슬림 여인 히잡 쓰듯 머플러로 상반신을 둥둥 감쌌다.



시원스런 바다로 향한 카페들이 해변 따라 죽 들어선 월정마을은 요즘 뜨는 소위 핫플이다.

그 어떤 매력적인 카페 분위기보다도 자연 속을 자유로이 거닐기 즐기는지라, 어느 집이 멋진가엔 관심 별로다.

달 이울다, 란 카페도 있듯 이 마을 이름 월정(月汀)은 '달이 머문 물가'란 의미대로 아주 서정적인 풍광이다.


아마 깜깜한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조명발로도 한몫할 거 같다.

그보다는 물론 밝은 달 비치는 해변에서 파도 소리 듣는 것이 더 그럴싸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바닷가는 수심 얕은 편이라 자녀들을 동반한 가족끼리 물놀이 즐기기 더없이 좋을 듯.


월정리 해변은 토박이들이 흔히 한모살이라고 부른다.


한은 넓다는 뜻, 모살은 모래사장을 의미하는데 기실 월정해변은 자그마한데다 조붓하고 새하얗다.


해안가 백사장이 유난히 하얀 이유는 패각질 모래라서 그러하다고.


모래 알갱이가 조개껍질이나 백산호 등이 부서진 석회질 성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월정리 해변은 일정한 높이의 파도가 연속으로 들어오므로 서핑에 최적지라 서퍼들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서핑 외에 스노클링, 카약 등 수상레포츠 장소로도 맞춤 맞다니 젊은이들 특히 선호하겠다.

여기저기 포토 스폿이 많은데, 아예 바닷가에 자연목으로 짠 프레임을 크게 만들어놓은 곳도 있었다.

모래톱에서 서너 명이 노닐고 있기에 풍경 하나 건지려고 나무 프레임 안에 들어오길 기다렸으나 시간만 축내고 말았다.

그 바람에 물기 뚝뚝 듣는 수채화풍의 구름장 구경만은 실팍지게 잘했다.





해맞이해안로를 따라 김녕해변 방향으로 나아갔다.


점점 인적 뜸해지는 해안 도로변에는 카페는 물론 집도 한채 안 보였으며 ㅇㅇ수산이라 쓰인 거무튀튀한 양식장들만 잇따라 나타났다.


하나같이 규모 큰 건물은 낡고 녹이 슬어 휘휘한 데다 식식대는 기계 소리까지 요란스러웠다.

누아르물 영화를 많이 봐서인지 범죄 냄새가 풍기는 그런 분위기가 연달아 이어졌다.


총 해안선 길이 254km인 제주에는 500여 곳의 양식장이 난립돼 있는 실정이다.


제주바다 빙 둘러 오폐수 콸콸 쏟아내는 양식장 허가는 대체 어떤 작자가 그리도 많이 내줬을까.


육상 양식장 배출수로 인해 중금속에 오염된 연근해, 그에 따라 바다의 황폐화 사막화 불 보듯 뻔한데 제 고향 바다라면 그럴 수 있을까.


양식업자야 환경문제는 뒷전, 밤낮으로 공장 돌려 돈만 벌면 될 테고 여차하면 깔고 앉은 공장부지 처분해도 또 이게 또 돈방석.


직접적 피해 입고 죽어나는 건 바다에다 온 가족 생계를 걸고 살아가는 영세어민뿐이겠다.


불유쾌할 정도로 기분 꿀꿀하게 만드는 양식장 행렬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는 것이, 마치 푹푹 빠지는 모래벌판에서 쫒기는 악몽이라도 꾸는 거 같았다.



걷기에 지질려 택시를 부르려 할 즈음이었다.


바람 거친 데다 마을도 없고 인적 뜸해 으스스하던 중, 제주에너지공사 CFI 에너지관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그제야 비로소 휴우~안도의 숨을 내셨다.


동네가 보이고 처음으로 편의점을 만나자, 희망봉이 바로 저기다! 싶었다.


그곳은 행원리, 낯익은 어등포구였다.


'빛나는 바다 광해'를 쓰며 행적을 훑던 중, 작년에 일부러 찾아왔던 터다.


인조반정으로 내처진 광해가 제주로 유배 오며 처음 닿았던 행원 포구이므로, 이미 오래전부터 어촌마을은 형성돼 있었나 보다.

남루하니 지붕 납작한 촌가를 뒷전에 숨기고, 전면에 내세운 각양각색의 건물들은 외양 꽤나 화려했다.


생각보다 어등포 분위기며 풍광, 파도, 하늘의 빛내림까지 근사하게 따라줘 카페에서 흡족한 기분으로 오래 머물렀다.


다음 마을로는 월정리 해수욕장이 이어서 나오겠지만 해도 기웃해지고 긴장이 풀리며 더 걸을 엄두도 나질 않았다.


석양 무렵이 되면서 무겁던 구름장 걷히며 노을빛 선연해지는 걸 보니 내일 날씨는 화창하겠다.


시간도 늦고 이래저래 아무래도 가까운 산방굴일랑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하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오늘이 아니면 내일 그도 아니면 또 모레...


유유자적 노닐 수 있음 자체가 나이듦의 선물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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