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으로 동쪽으로 하냥 달렸다.
물빛 옥색으로 이쁜 바다 행원리 코난해변이나 김녕리 상세기해수욕장이 목적지였다.
하긴 평대리나 세화바다 물빛도 곱다.
도중에 어디든 맘 내키는 데서 내리기로 했다.
남원을 스치고 성산포를 지나고 종달리를 달려가며 마음이 급해졌다.
도로변에 탐스러이 핀 수국 무더기를 보자 문득 내려야 할 곳이 정해졌다.
하도리다.
토끼섬 새하얗게 문주란은 폈을까?
문주란꽃 향기 날리지 않더라도 별방진 성벽 따라 메밀꽃 기다려 주겠지.
자투리 시간을 활용, 배낭 꾸려 길을 나선 까닭은 기막히게 좋은 날씨가 유혹해서다.
마른장마가 계속되는 유월, 요행처럼 파란 하늘이 나타났기 때문.
매일 우중충 심란스러운 기상도, 안개비 내리거나 짙은 해무에 점령당한 서귀포였다.
숫제 날마다 안개 자욱하거나 구물구물 해무가 기어 다니는 터라 제습기가 필수품인 제주섬이다.
어쩌다 더러 옛다! 선심 쓰듯 푸르게 하늘 갠 날은 그 틈새 놓칠세라 쏜살같이 색달이나 일출봉이나 금능으로 내달리곤 했다.
이번 행선지는 좀 멀리 위치한 터라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는데 변덕스러운 새벽하늘이 뒤늦게사 틔이면서 비로소 튕기듯 나선 걸음이다.
해녀박물관 바로 앞전인 하도리 면수동에서 차를 내렸다.
갓 부화한 바다 거북이처럼 일로 직진, 바닷가 향해
마을길 거슬러 빠르게 걸어갔다.
도중 '문주란로'라 쓰인 도로표시판을 보았다.
깊섶에 문주란 포기들이 늘어섰으나 꽃 기별은커녕 새침하니 묵묵부답.
문주란 한 포기만 하얀 꽃대 내비칠 뿐 다들 딴청, 너무 일렀구나 싶어 7월 중순을 기약했다.
후덥지근한 날씨 요량하고는 해풍 선들대며 불어외 걸을만했다.
새파란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해맞이해안로 따라 별방진으로 향했다.
도로변 별방진 성터는 짧은 구간이고 마을과 바투게 맞닿아 있어 볼 게 별로 없다.
전에는 나름 관리가 잘되어 매초롬하던 곳인데 망초만 나부낄 따름이라 황성옛터이듯 황량했다.
지난해 두세 번이나 밭자락 따라 접어들었던 성곽길 눈에 선하건만 도무지 입구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길가 트인 밭담이 보이면 무작정 넘어가기도 했으나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막다른 밭자락이기 일쑤.
저만치에 뻔히 성벽이 보이건만 서로 연결된 길은 끊긴 채였다.
결국 몇 번 헛걸음질 치고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 봤으나 지나는 사람은커녕 개소리조차 없이 집집마다 적요하기만 했다.
마치 세상이 끝장나 생명체 모두가 증발된 듯이.
한침만에 고샅길 지나는 차를 만났기에, 제주 번호판으로 미루어 주민이지 싶어 성곽 입구를 아느냐고 물었다.
젊은 부부는 현지인이 아닌 이주민이라며 별방진 성터 표식이 선 장소만 안다고 했다.
내가 방금 지나온 그곳이다.
하는 수없이 저만치 보이는 성곽만을 겨냥한 채 여기저기 골목을 훑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성곽 입구를 찾긴 찾았지만 작년 그 길은 아니었다.
일단, 성곽 위로 걷게 된 구조 자체가 변해(폐쇄된 듯) 올려다본 성곽 위에는 잡초만 무성히 자랐다.
옛 성곽 저토록 위엄차게 복원하는 데 나랏돈 엄청 퍼부었으련만 불과 서너 해 만에 이 지경으로 방치되다니.ㅉㅉ
성곽 위로 다져진 널찍한 현무암 길에서 사방을 조망해 보기도 하고 아랫녘 밭에서 고구마 심는 모자와 얘기도 나누는 등 제법 한참을 걸어 다닌 길.
봄엔 유채꽃 여름엔 메밀꽃 푸짐하게 가꾸던 산책길에 깔아 둔 야자매트도 마찬가지로 관리가 안돼 나달나달 낡았다.
전엔 메밀꽃길을 오가는 방문객이 제법 있었는데 흔적 끊긴 채 아무도 없어 휘휘하기 조차한 길.
성벽 모퉁이를 돌아가 전에 들어왔던 그 길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마저 겁이 나서 접고는 얼른 되돌아 나와야 했다.
하긴 그나마도 바로 마을과 인접한 곳이기도 하고, 나비 군무에 홀린 데다 뭇 새소리 하도 청량해 잠시 천상계의 신비경에 빠져서 였으리라.
아날로그 세대라서일까, 디지털 기기에 능숙한 세대라도 네비가 있다한들 찾기 쉽지 않은 장소인 게 분명한 이런 길.
아래 사진 역순으로 따라가면 지금 한철인 멋진 메밀꽃과 조우할 수 있는데.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혹시나 누군가에게 요긴한 길 안내가 될만한 주소지를 사진에 담아뒀다.
지게 위에 실려서 고린장 시키러 가는 아들 되돌아갈 길 염려해 솔잎 따서 표시해 둔 노모처럼.
이게 바로 그 노파심이라는 것이리라.ㅎ
시간 여유롭다면 가까운 코난해변 물빛에 취했다 오련만 네시까지는 서귀포에 도착해야 했다.
아쉬움 접고 돌아오는 길, 내내 나비 떼 군무와 해맑은 새소리가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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